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안중근 의사, 중국의 원수도 갚아줬다”

화이트보스 2009. 8. 26. 10:49

안중근 의사, 중국의 원수도 갚아줬다”



‘중국인에 비친 안중근 의거’
관훈클럽 내일 세미나


“비록 한인이 자기의 원수를 갚았다고 하지만 역시 우리의 원수를 갚은 것이 아닌가. 우리의 행운이다.”(중국 상하이 민위(우)일보·1909년 10월 29일 사설)

관훈클럽은 올해 안중근 의사(사진) 의거 100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6시 중국 하얼빈() 시 소피텔호텔에서 ‘중국인 눈에 비친 안중근 의사 의거’를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서명훈 하얼빈 시 조선민족사업촉진회 명예회장이 당시 사건을 보도한 중국 신문과 잡지 등 400여 편의 사료를 바탕으로 주제 발표를 한다.

서 명예회장은 미리 배부한 발제문에서 1909년 10월 26일 안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자 중국 언론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한국에서는 안 의사의 의거를 직설적,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보도를 할 수 없었다.

중국 언론은 이토 히로부미가 한중 공동의 적이라는 시각에서 의거 소식을 대서특필했고 의거 과정, 투옥생활, 재판 등을 상세히 전하며 안 의사의 영웅적 애국정신과 동양평화사상을 높이 평가했다. 민위일보는 의거 다음 날인 10월 27일부터 21일 동안 54개의 기사, 사설, 평론을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안 의사의 의거에 대한 중국의 정치 사상계의 평가도 이어졌다. 중국의 근대 민주혁명가이자 사상가인 장타이옌()은 안 의사를 ‘아시아 제일의 의협()’이라고 칭했고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는 “중-조 인민의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공동투쟁은 본세기 초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때부터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안 의사의 의거는 당시 중국인들의 한국을 보는 눈을 바꿔놓았다. 베이징의 정쭝아이궈()보는 ‘한국에 인재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으며 톈진() 다궁()보는 ‘조선이란 나라는 망했다고 할지라도 조선의 인심은 죽지 않았다’는 평론을 실었다.

서 회장은 “당시 안 의사의 의거는 청나라 정부를 뒤집고 민국을 건립하려는 민주혁명당인들에게 ‘살신성인’의 본보기가 됐다”고 말했다. 당대 지식인 뤄난산()은 독립운동가 박은식이 쓴 ‘안중근전’ 서문에서 1911년 신해혁명을 언급하면서 “안 씨의 의거가 우리에게 정신적인 도움을 줬다고도 할 수 있으니 이것 역시 우리들이 감격해 마지않는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적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