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호남·충청 총리론 유감(有感)

화이트보스 2009. 8. 28. 10:27

호남·충청 총리론 유감(有感)

입력 : 2009.08.27 23:18

청와대가 개각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지만 마땅한 총리감을 찾지 못해 고민 중이라고 한다. '쇄신'과 '화합·통합'의 이미지를 갖춘 인물을 찾고 있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해 의도는 좋지만 청와대가 괜히 헛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다. 이미 그런 취지는 퇴색돼 버렸고, 국민도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만큼 그냥 명분 앞세우지 말고 대통령하고 뜻 잘 맞고, 무난하게 내각을 이끌 수 있는 인물 쪽으로 인선 방향을 정하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우선 '쇄신론'을 보자. 여권에서 이 의견이 가장 비등했던 게 지난 4월 재보선 직후다. 한나라당이 참패한 그 선거다. 집권세력을 질책한 국민에게 뭔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정부의 '얼굴'인 총리를 바꾸는 게 해답 중 하나라는 주장이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가. 무려 4개월이다. 그 기간 전직 대통령 두 명의 서거, 미디어법 파동, 쌍용차 사태 등으로 온 나라가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마 지금은 여권 사람들 자신조차도 "우리 안에서 쇄신 파동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이다. 가뜩이나 정치권에 냉소적인 국민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쇄신형 총리'를 찾는다? 뜬금없는 얘기로 들린다.

다음은 '통합·화합론'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통령이 영남 출신이니 총리는 호남 또는 충청 출신으로 임명해서 국민 통합에 보탬이 되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현실을 솔직히 보자. 먼저 충청 총리론이다. 이미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청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내년 지방선거에서 도움을 보려는 정치적 의도"가 읽혀진 지 오래다. 충청권에 기득권이 있는 자유선진당 의원들이 괜히 "충청 총리론은 충청도로 영역을 넓히기 위한 여권의 정략(政略)"이라고 꼬집겠는가. 이렇게 본심이 다 읽힌 마당에 충청 출신 후보를 찾아 총리로 내세운다고 해도 얼마나 통합·화합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호남 총리론도 공감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이 얘기가 나오는 배경은 '영남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상실감은 물론 피해의식까지 갖고 있는 이 지역 사람들을 달래주고 껴안자는 것이다. 따라서 '호남 총리'가 정치적 실효를 거두려면 그가 호남의 '방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역민들에게 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호남을 포용하고 화합하겠다는 정권의 진정성을 호남 사람들이 인정해 줄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 반 대통령과 총리의 관계를 돌이켜보면 호남 총리라고 해서 대통령이 그런 힘과 권한을 주리라고 기대하는 건 어렵다. 이 정부 들어 총리가 헌법상 장관 임명제청권을 제대로 행사했다는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게 대표적인 근거다. 호남 총리가 힘을 갖게 될 경우 다른 지역들의 불만과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결국 '얼굴마담형' 호남 총리로는 호남 사람들을 달랠 수 있는 카드는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통령은 더 이상 출신지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과 호흡 잘 맞고, 잡음 일으키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재상(宰相)'다운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을 고르는 쪽으로 인선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U턴해야 한다. 그게 '실용 정권'의 정체성에도 맞는 일이 아닌가 싶다. 국민을 이끌어가는 대통령의 소신과 결단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