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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한미 FTA에 굼뜬 이유

화이트보스 2009. 9. 2. 11:15

오바마가 한미 FTA에 굼뜬 이유

  • 김석한·미국 변호사

입력 : 2009.09.01 22:42

김석한·미국 변호사

지난 6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화, 기후변화 등 중요한 지정학적 사안에 대해 한국의 위상을 상호평등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양국 간 협력을 돈독히 했다는 점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새로운 무역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동안 (일부에서는 '표류'라고 하는) 한미 FTA는 여전히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한미 FTA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에서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면 무역정책을 새로 수립하고 담당 관리들을 임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런 전례에 비춰보더라도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그 시간이 너무 길다. 오바마 대통령이 조만간 무역 전략에 대한 윤곽을 발표할 것이라고 백악관이 전한 지 벌써 여러 달째다. 그러나 발표가 언제, 어떤 내용으로 열릴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WTO 담당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 농업부문 협상수석 등 중요한 직책들도 공석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움직임이 굼뜬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오바마 행정부의 첫째 관심과 에너지가 건강보험 개혁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개혁 법안통과는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과제이다. 이 때문에 무역 같은 사안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미 행정부는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오바마 대통령의 무역 관련 연설이 오는 9월 G20 정상회담 이전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지만, 건강보험에 대한 논란이 격화되면서 무역 연설이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두 번째로, 오바마 대통령은 무역 정책에서 정치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기반이자, 추가적인 감원과 감봉 위기에 직면해 있는 노조측에서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역 규제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이 시점에 오바마 행정부는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다 동맹국들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은 지난해 경기부양 정책 중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조항 때문에 격렬한 국제적 비난에 시달린 바 있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미 행정부는 지금까지 결단을 못 내리고 있다.

세 번째로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와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무역 정책을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 때 체결된 FTA를 유예시키고, 미국의 무역 정책 전반을 재점검했다. 이 과정에서 미 행정부는 FTA에 관련된 이해 당사자로부터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한미 FTA에 대한 의견청취도 9월 15일까지 진행될 것이다. 행정부는 많은 산업 분야가 참가하길 기대하고 있으며, 일부는 시한 전에 이미 의견을 냈다.

비준의 지연과 의견 청취는 한미 FTA의 장래에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왜냐면 찬반 양측 모두 기존의 합의에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반대 진영은 반대 여론을 집결시켜 비준을 지연시키려 할 것이다. 찬성 진영 또한 합의를 변경하려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미 FTA를 지지하는 미국 오렌지 산업 종사자들은 더 나은 조건으로 한국에 수출할 수 있도록 반영해 달라고 요구한다. 더군다나 미국은 한국이 EU 그리고 인도와 체결하려 하는 자유무역협정을 뜯어보며 혹시 미국에 불리한 것은 없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비준의 지연과 의견 청취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현재의 경제적·정치적 상황과 집권 민주당의 우려 속에서 한미 FTA를 재점검할 자료와 논거를 개발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 한국은 한미 FTA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가 새로운 자료를 수집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 분명 한미 FTA는 미국 내정 문제 속에서 진창에 빠져 있고, 비준의 기회는 아무리 일러야 2010년 초쯤에야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의견을 청취한다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가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행정부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한국도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