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산행 정보 모음

한여름, 지리산 너른 품에...지리종주(2) 2009/08/31 16:16 추천 2 스

화이트보스 2009. 9. 7. 18:27

한여름, 지리산 너른 품에...지리종주(2)   2009/08/31 16:16 추천 2    스크랩 0
http://blog.chosun.com/cha4831/4168904

00.JPG

멀리 반야봉이... 


반야봉 (07:47)
아침햇살은 준족이다.
숨 한번 고르지 않고 태산준령을 타고 넘으니.
초목들이 아침햇살에 반짝인다.
기지개를 켠 초목들은 왕성한 광합성을 위해 해바라기에 들어가고.

 

01[3].JPG

 

골골마다 만물 생성의 원기가 스미는 지리산의 아침,
싱그러움을 폐부 깊숙이 양껏 들이킨다. 무한정 공짜다.

등로를 따라 세워놓은 목책이 주변경관과 썩 잘 어울린다.

저멀리 아스라이 펼쳐진 선경에 걸음 멈춰 넋 놓고 있는데,
구름바다 건너 천왕봉 마고할미께서 어서 오라 손짓한다.  

    

03[2].JPG

 

'마고할미'라?

 

天神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의 女神이다.
'마고'는 지리산에서 수행 중이던 '반야'와 눈이 맞아
천왕봉에 둥지를 틀고 '여보 당신'하는 사이가 됐다.
여덟 딸을 둔 걸로 보아 생산능력도 출중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날, 깨우침에 목말라 하던 반야는
처자식을 남겨 둔 채 홀연히 천왕봉을 등진다. 
구름바다 건너 둔부를 닮은 산마루로 향했다.

그렇게 떠난 반야는 무심하게도 마고가 백발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으니.
 
마고는 나무껍질로 반야의 옷을 만들며 그리움을 달랬다.
야속한 마음도 때때로 고개를 쳐들었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는 여덟 딸 모두를 산 아래 팔도로 내려 보낸뒤
천지간에 홀로 되어 반야의 옷을 품에 안고
눈물짓다가 쓰러져 꿈속을 헤매기 일쑤였다.

 

반야가 저멀리서 손짓하며 다가왔다.
마고는 초목을 헤쳐 달려나가 손을 내밀었다.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님이 아니던가?
그런데 한걸음 다가서면 두걸음씩 물러나니 이 무슨?
   

02[2].JPG

   

그녀 손에 잡힌 것은 교교한 달빛 아래 살랑이는 쇠별꽃이었으니.
하얀 쇠별꽃이 반야 모습으로 보였던 것.

꿈속에서 조차 반야는 마고의 내민 손에서 멀어져만 갔으니
사무친 그리움은 결국 증오심으로 변해 갔다.

  

끝내 마고는 쇠별꽃이 다시는 피지 못하게 씨를 말려 없애버렸다.
나무껍질로 만든 반야의 옷도 갈기갈기 찢어 바람에 날려 버렸다.
마고는 결국, 그리움에 지쳐 명줄 마저 놓고 만다. 

  

나무껍질 옷은 바람에 실려 반야가 수행 중인 산자락 이곳저곳에 흩어졌다.
마고의 애틋함 때문일까, 바람에 날려 온 나무껍질은 풍란으로 변신하여
지금도 반야봉 산기슭에 자생하고 있다는데...보진 못했다^^

   

지리종주길에서 약간 비켜 있는 반야봉에 올랐다가
너스레가 길어졌다. 각설하자.

  

04[2].JPG

 
三道峰 (08:20)
반야봉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산봉, 三道峰(1,550m)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태양은 더욱 기세등등하다.
왼종일 걸어야 하는데, 지레 주눅이 든다.

  
그늘없는 三道峰의 바위면도 이미 후끈 달아 올라 있다.
그러나 햇빛이 강할수록 골바람은 뚜렷한 법,
골바람이 간간히 목덜미를 훌치고 지나 그나마 좀 낫다.

  

전라남북과 경남이 등을 맞댄 삼도봉에 올라
쌍계사로 이어지는 길고 깊은 계곡을 굽어보며 잠시 상념한다. 
아픈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지리산,
사람들 기억 속에선 많은 것이 망각되어지고 희미해져 가는데 
모든 걸 또렷하게 알고 있을 지리산은 말이 없다.
  

05[3].JPG

 
화개재 (08:45)
삼도봉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너른 터가 펼쳐진다. 화개재다.
옛날 경남과 전북 보부상들이 물물교환하던 장터,
너른 터로 보아 한때 번성했겠으나 지금은 생태계 복원을 위해
둘러쳐놓은 목책과 잡풀만이 무성할 뿐.

 

06.JPG

 

진행 방향에서 왼쪽은 뱀사골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이곳 화개재에서 계곡이 끝나는 반선까지 9.2km,
작년 7월, 걸음했던 길고 긴 계곡길이다.
계곡길로 탈출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마음 다잡는다.
다시 팍팍한 숲속 오름길로 들어선다.   

  

07[2].JPG

토끼봉?, 헬리포트 


토끼봉(1,534m) 명선봉(1586.3m)
휴대한 지도를 펼쳐보지 않고선 다음 봉우리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안내 팻말은 지리능선 상의 모든 봉우리를 알려 주진 않는다.
고도계와 지도, 그리고 感으로 판단할 수 밖에.

 

08[1].JPG

  
목구멍이 팍팍해질 정도로 힘겹게 올라선 토끼봉(1,534m)도,
삼각점을 확인 후 지도 펼쳐 감 잡은 명선봉(1586.3m)도 그랬다.
魔의 목계단을 따라 연하천산장으로 내려선다.

  

09[1].JPG

  

연하천대피소 (11:12)
'구름 속에 물줄기가 흐른다'는 연하천(烟霞泉)
사시사철 샘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수량이 넘쳐나는 곳이다.
산꾼도 넘쳐났다. 그늘없는 너른 터에도 발 디딜 틈 없다.

 
잔뜩 허기진 배, 채워야 하는데 도무지 디밀고 앉을 틈바구니가 없다.
줄을 서 수통에 물만 겨우 채운 다음, 좀 더 걸어
연하천대피소를 조금 벗어난 숲속 적당한 곳에 배낭을 내렸다.
간편식으로 허기를 채운 다음, 잠시 나무에 등을 기댄다.

  
배낭 무게에 짓눌린 어깻죽지가 비로소 녹아내린다.
천근만근이던 몸도 이내 상쾌해진다. 숲의 힘이다.

  

10.JPG

  
인디언들은 힘들고 피곤해지면 숲으로 들어가 자신의 친구인
나무에 등을 기댄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나무로부터 원기를 되돌려 받는다고 한다.

숲 속 이곳 저곳에선 지친 종주 산꾼들이 드러눕거나 나무에 등을 기댄채
쪽잠을 자고 있다. 마치 연료를 보충 하듯. 

    

12[1].JPG

저멀리 벽소령대피소가... 

     

벽소령대피소까지 2.4㎞ 남았다는 팻말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 산비탈을 오르내리길 십수번,
도무지 다가설 것 같지 않던 벽소령대피소가 형제바위 저너머로
새둥지처럼 포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형제봉(1,452m) (12:56)
거대한 돌기둥, 형제바위는 당간지주를 빼닮았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바위에 오른 산꾼들의 탄성이 장난 아니다.
엉금엉금 네발로 기어 올라보니 무릉도원이 이러할까.
발아래 펼쳐진 울울창창 지리산경에 홀려 정신이 아득해 온다.

 

P8150091.JPG

  
몸을 던져 광대무변의 산자락에 안기고 싶은...
훨훨 날아 사뿐히 안착할 것만 같은...
그러나 바위벼랑에서 몸을 날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발칙한 상상을 거두고 벽소령대피소를 향해 걸음을 서두른다. <계속>

 

 

................................................................

 

2회로 종칠까 했는데 지리하게 늘어놓다 보니... 한계입니다요^^*
한 꼭지로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하고 3회까지 끌고 가게 생겼으니

식상하더라도 너그럽게 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