訪北 다이빙궈 中특사에 밝혀…
"韓·美·中의 전례없는 대북압박 공조 효과"
정부 고위 당국자 "무슨 조건·절차 내걸지 지켜봐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8일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양자(兩者)와 다자(多者) 회담에 참가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중국 신화통신과 AFP통신 등은 이날 김 위원장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은 비핵화의 목표를 계속 추구할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 문제를 양자(bilateral)와 다자(multilateral) 회담을 통해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후 주석은 이날 다이 국무위원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보낸 친서(親書)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발전을 증진하는 것은 중국의 일관된 목표"라고 강조했다. 또 "중국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북한과 함께 모든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미·북 회담을 고집하던 김 위원장이 양자·다자 회담을 모두 할 의사가 있다고 태도를 바꾼 이유에 대해선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은 한·미 전략이 주효한 것"(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이란 분석이 많다. 미·북 제네바 합의 이후 지난 15년 동안 북핵협상에서 북한은 한·미 공조가 원활치 않은 상황을 이용해 당근만 챙기고 비핵화는 피해가는 수법을 반복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오바마 행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공조가 잘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김정일의 예상과 달리 한·미 공조는 흔들리지 않았다. 중국도 과거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같이 전례 없는 한·미·중 공조가 북한을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어 김 위원장의 '항복'을 받아낸 셈이다. 청와대 당국자는 "지금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라인은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때 북한에 속았던 경험을 한 인물들이 많다"며 "북한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다자' 협상 용의를 곧바로 6자회담 복귀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것이 정부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지난 7월 도발에서 유화 공세로 돌아선 이후 미·북 양자 대화를 끊임없이 요구하면서도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는 태도는 바꾸지 않았다. 이날 김정일이 '6자회담(six party talks)'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다자회담'이라고 한 것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다자'를 '6자'로 볼 근거가 없다"고 했다. "굳이 다자라고 한 걸 보면 한국·일본 등을 배제하고 새로운 협상 틀을 짜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외교 소식통)는 것이다.
이 고위당국자는 "김정일이 아무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한다면 크게 환영할 일이지만 (회담 복귀에) 무슨 조건이나 절차를 내걸지 지켜봐야 한다"는 말도 했다.
반면 "6자회담 불참이란 말을 뒤집어야 하는 상황에서 체면 때문에 '다자'라고 했을 뿐 결국 6자회담에 나올 것"(안보부서 당국자)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고위급 특사에게 김정일이 "양자·다자회담 모두 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며 6자회담에 복귀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김정일에게 시간이 없다는 점도 대화를 서두르게 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김정일은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문을 활짝 열겠다"고 했지만 북한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자신의 건강마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작년 뇌졸중 이후 건강상태가 다소 회복된 요즘 자신의 손으로 대미·대남관계와 후계 문제 등을 정리하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1월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7년 이상 임기가 남아 있는 셈이다. 이명박 정부도 앞으로 3년 반이 남았다. 결국 가장 시간에 쫓기는 입장인 김 위원장이 대화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