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지금 신이 났다
경제가 호전되고 인기도 오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촛불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기분이겠지만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지금 신이 났다. 우선 경제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는 상황이고, 여론조사에서 인기가 회복되고 있으니 신이 날 만하다. 게다가 국제적으로도 한국의 위상과 이 대통령의 외교력이 높아지는 듯해서 아마도 이 대통령으로서는 명실공히 '촛불'의 악몽에서부터 벗어나는 기분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걱정이다. 잘나가는 것은 좋지만 너무 많이, 너무 빨리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해서다. 이 대통령 특유의 자신감에다 발동 걸린 김에 일들을 해치운다는 기업 CEO형 저돌성을 자랑하듯 국가 중대사를 한꺼번에 벌이고 있는 것이다. '촛불'로 허송(虛送)한 1년을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어쩌면 한 정권의 임기(5년)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의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MB정부가 내세운 가장 큰 역사(役事)는 4대강(江) 정비사업이다. 대운하 사업으로부터 축소된 것이지만 23조원이 투입되는 대역사다. 세종시(市) 문제는 전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골치 아픈 유산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도 10조원 이상 퍼부어야 하는 이 정부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매듭지을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대역사다.
MB는 정치권 일부에서 추진되고 있는 개헌을 받아들여 개헌작업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물론 MB로서는 정치권이 요구하는 권력구조 개편 등 거창한(?) 개헌에 찬동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 불합리한 조항들을 정리하는 소극적 개헌을 공론화하고 있지만, 개헌의 문(門)을 열면 'MB의 것'들만 들어간다는 보장이 없다. 차제에 선거구제를 고쳐 선거구를 개편하는 문제는 그것의 민감성에 비추어 개헌 그 자체보다 더 어려운 정치적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행정구역 개편문제도 대단히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다. 앞의 세 문제와 달리 이것은 지역주민의 이해가 크게 걸려 있는 문제여서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상의 과제들은 단기간 내에 밀어붙여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닌 데다 대단한 정치적 폭발성을 지닌 것이어서, 이제 실효적 통치기간이 앞으로 2년 정도 남은 MB정권이 모두 처리한다는 것은 과욕일 수 있다.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재정 면에서도 그렇고, 정치적 능력 면에서도 힘에 부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들 역사(役事) 내지 역사(歷史) 만들기는 하나같이 국민적 공감대를 쉽게 이끌어내기 어려운 이른바 논쟁적 문제(controversial issue)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그러지 않아도 이 대통령의 문제로 소통의 부족과 끼리끼리식(式) 정치 등이 거론되고 있는 터에, 어느 하나 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어내기 힘든 국민적·헌법적·정권적 과제들을, 그것도 하나나 둘도 아니고 4~5개씩 줄줄이 달고 나가는 것이 과연 정권 담당자들의 성실한 모습인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개헌은 권력구조의 개편, 정부구조의 변화 등 그 그릇에 담길 내용만 가지고도 정치세력 간 사활을 건 극한적 싸움을 유발할 것이고, 더 나아가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 과정에서 국민적 대립과 갈등은 증폭될 것이 뻔하다. 이 대통령의 뜻대로 지역문제 해소 등 몇 가지만 개선할 것이라면 국민과 정치권을 두 동강 내는 불길한 일을, 정치적 대립구조가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이 시점에서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세종시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이 정권이 과연 이를 다룰 능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대통령은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이런저런 식으로 수정불가피론을 불 지피더니 마침내 새 총리 후보자를 통해 세종시 후퇴론을 공식 거론하는 이 정권에게서, 많은 사람은 그 논점의 당부당과 상관없이 비겁함을 느끼고 있다. 세종시 문제 하나 정면으로 다룰 용기가 없는 대통령과 정권이 난데없이 일 욕심을 내는 것이 어딘가 미덥지 않은 것이다. 행정구역 개편이나 선거제도 개편 등도 다수 주민과 국회의원 또는 주민들의 대표성과 관련된 문제들이어서 그 원활한 해결들이 쉽지 않을 것이다. 벌써 하남·구리 등지에서 보듯이 한쪽이 찬성하면 다른 쪽이 반대하는 상황이고 자칫 주민들 간의 대립, 갈등, 반목으로까지 이어질 요인들을 안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격언들은 진부할 정도다. 하지만 일을 밀어붙이는 식의 경험에 익숙한 이 대통령으로서 특히 유념할 일이다. 게다가 지금 남북 대치상황에 있는 우리나라는 유독 이념적 대립과 좌우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는 느낌이다. 단순히 정치적 반대, 권력적 투쟁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 사활, 군사적 충돌, 전쟁에 버금가는 사상전이 개입돼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국민을 양분시키는 커다란 쟁점들을 동시다발로 끌어안고 가는 것은 국가안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전히 민주적인 방식보다 목소리와 숫자와 시위로 사태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려는 풍토가 활개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부디 속도를 조절하고 내용들을 조정해서 자칫 국민과 나라를 대립과 싸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잘못을 범(犯)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