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
정운찬 총리 인준안, 野 불참속 국회 통과…
'세종시 원안 수정 논란' 불붙을 듯
'상처' 입은 정운찬, 파워총리의 길 '산 넘어 산'
청문회 거치며 명성 흠집
'중도·서민' 노선 성공땐 한단계 더 도약 가능성
여권내 友軍확보도 관건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28일 국회를 통과했다. 본회의 표결에는 재적의원 290명 중 177명이 참여, 찬성 164표, 반대 9표, 기권 3표, 무효 1표로 인준안을 가결했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 의원 대부분은 정 총리 임명에 반대하는 뜻으로 투표에는 불참했다.정운찬 총리체제가 29일부터 공식 출범하게 되면서 당장 관심은 세종시의 운명에 모이게 됐다. 정 총리는 임명 발표 당일부터 세종시에 대해 "원안 추진은 어려울 것"이라며 이 문제를 공격적으로 제기했다. 청문회 때도 내내 "국가 전체로 봐서 행정적 비효율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신"이라고 했다. '세종시 원안 수정' 문제가 정 총리에 의해 정치·사회적으로 공론화한 것이다. 이날 본회의에서 투표함을 가로막는 등 특히 강하게 반발한 이들이 충청권을 지역구로 한 의원들이었던 건 이런 배경에서였다.
정치권에서는 누구도 '세종시 수정론'을 정 총리의 독자적인 작품이라고 보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사실상 뒤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정 총리의 세종시 수정 발언에 반감을 표시했지만, 청와대는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 참모들은 비공식 자리에서 "정 총리 말이 맞다"며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도 이날 "여론조사 결과 세종시 원안 추진 의견은 28.5%인 반면,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60%에 이르고 있다"고 발표하는 등, 당과 정부와 청와대 내부에서 세종시 수정에 대한 군불 때기가 이어지고 있다.
- ▲ 정운찬 총리 앞에 놓여진 길은 평탄하지 않아 보인다. 세종시 문제에 차기 주자로서의 가치 올리기 등 숙제가 많다. 28일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뒤 정부청사 별관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는 정 총리./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정치권에서는 청와대가 정 총리 취임을 계기로 세종시 논란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총리도 "총리가 되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세종시(로 내려가는 행정부처)에 대한 변경고시를 할 것"이라고 청문회에서 밝힌 바 있다. 물론 최대 관심사는 그 고시가 '원안 고수'가 되느냐 아니면 '원안 축소'가 되느냐이다. 정 총리가 자신의 발언처럼 취임 이후에도 '세종시 총리'로서 승부수를 던지고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 총리의 취임은 여권(與圈)에 또 한 명의 차기 대선주자가 공식으로 등장했다는 정치적 의미도 갖는다. 청문회 과정에서 그의 '상품성'에 적잖이 흠이 갔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대선 후보로서의 잠재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한승수 전 총리는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총리는 내각 운영을 책임지면서 국정을 통할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정 후보자에게 조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운찬 총리'는 행정형이라기보다는 정치형 총리 성격이 더 강하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 말라"고 충고한 것도 그런 점을 의식한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정 총리는 대선 구도에서 '잠룡(潛龍)'으로서의 주가를 인정받아왔다.
특히 그동안 차기 구도에서 박근혜라는 큰 그늘 때문에 숨죽여야 했던 여권 주류 진영으로서는 어렵게 영입한 정 총리를 최대한 활용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나라당 주류 진영에서 "청문회를 거치면서 정 총리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는 의견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정 총리 등장으로 한때 긴장했던 여권 내 다른 후보군 진영에서도 청문회를 거치면서 "이제 정운찬은 대선 후보로는 어려워졌다"는 말도 하고 있다. 정 총리의 강점은 '충청 출신' '서민 중시' '도덕성' '이념적 중도층의 지지'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세종시 문제로 충청 민심과 맞서게 됐고, '기업인 후원금 1000만원' 같은 문제로 도덕성이나 서민 성향도 흠집이 났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정권 참여로 야당 성향 지지자들도 상당수 떨어져 나갈 것이란 관측도 있다.
따라서 정 총리가 재임 중 이런 상처들을 얼마나 잘 치유해 나가느냐에 따라 여권의 차기 구도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 총리가 재임기간 잃었던 점수를 만회하는 데 성공한다면 오히려 대선 후보에 다가가는 데 유리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태근 의원은 "총리직을 수행해가면서 실무 능력을 보여준다면 국민들로부터 가능성을 더 인정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리라 본다"고 했다.
정 총리는 특히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무게를 두고 있는 '중도·서민'을 연결고리로 이 정권에 발을 담갔다. 과거부터 정 총리는 '이념으로는 중도, 서민을 위한 경제'를 주장해왔었다. 이 때문에 정 총리 본인이 하기에 따라 자신의 소신을 자신의 '능력과 성과물'로 가시화시킬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정 총리는 실제 이날 동의안이 통과된 뒤 첫 소감으로 "경제위기 극복과 서민경제 활성화, 국민통합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 총리는 한편으로는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정치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정몽준 대표나 박근혜 전 대표가 여당을 배경으로 그를 견제하려 한다면 마땅히 그에 대응할 우군(友軍)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야권(野圈)으로 몸을 옮기기는 어려워진 정 총리로서는 어떻게든 여권 내의 이런 역학 구도를 돌파해야 한다. 다만 눈앞에 닥친 세종시 문제부터 원만하게 해결한 다음의 일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