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에서 보듯 충무공의 승리는 거북선 때문이 아니었다. 원균의 손에 들어간 거북선이 힘 한번 못 써보고 칠천량 앞바다에 가라앉고 만 것만 봐도 그렇다. 정작 세계에 자랑할 문화유산은 거북선이 아니라 충무공이다. 그 망망대해 수십 미터 아래 뻘층을 뒤져 거북선의 잔해만 찾으면 충무공의 정신이 되살아나는가?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충무공의 호국과 애민 정신이요, 모든 위기를 기회로 돌리는 전략가로서의 정보 장악과 냉정한 상황판단이다. 일본 사람들은 충무공의 전술을 분석하고 연구해서 이미 수십 권의 책이 나왔는데, 우리는 만날 거북선만 찾겠다고 야단이다. 십여년 전 가짜 별황자총통의 국보 지정 소동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1860년 김윤식(金允植·1835~1922)은 '좌수영에 들러(過左水營)'란 시의 5, 6구에서 "어시(魚市)는 떠들썩 저문 성곽 통해 있고, 거북선은 적막하게 빈 언덕에 묶여 있네(魚市喧譁通暮郭, 龜船寂寞繫虛邱)"라고 노래했다. 그 밑에 그가 단 풀이는 이렇다. "충무공이 예전 썼던 귀선(龜船)인데, 지금은 뭍에 놓아두고 쓰지 않는다." 1860년 당시까지 거북선 실물은 멀쩡하니 여수 진남루 좌수영 물가 언덕에 놓여 있었다.
해저유물 탐사에 드는 그 엄청난 비용을 충무공의 전술 전략과 용인술을 포함한 인문학적 연구 지원에 쏟는다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겠는가? 구한말의 문장가 김택영(金澤榮)이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충무공이 거북선 때문에 일본을 깨뜨렸다고 하나, 충무공이 백전백승할 수 있었던 것은 천변만화하는 계책이 신묘했기 때문이지, 어찌 거북선이 한 것이겠는가? 거북선 때문에 이겼다고 한다면 일본 사람들의 정교함으로 어찌 아침에 패배하고는 저녁에 본떠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 말이 옳지 않은가. 발상의 전환이 참으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