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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주왕산 주방골, 그곳엔 신선이 살았을 것이다

화이트보스 2009. 10. 11. 19:38

주방골, 그곳엔 신선이 살았을 것이다

대전사~주왕산~후리메기~주방계곡 당일 산행

몽환적 분위기란 이런 것일까? 산을 마주했을 때 눈에 들어온 기암(旗岩)은 무릉도원 속에 신선이 비파 켜며 앉아 있을 듯싶은 기암(奇岩)이었다.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산등성이를 올랐다. 발아래 두루뭉술한 산릉의 안쪽은 기암절벽이 도열해 있었다. 저렇듯 신비스런 곳에 누가 살까? 서둘러 내려섰다. 수직의 절벽이 양옆에 곧추선 골짜기는 누구도 범접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신선들이나 거닐 수 있는 무릉도원이었다. 불현듯 숨쉬는 것마저 조심스러워졌다. 산그늘이 드리워졌다. 성큼성큼 골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주왕의 그림자였다.


▲ 두루뭉술한 산릉에 바위꽃이 핀 듯 신비로운 풍광을 보여주는 주왕산. 주왕산 남릉상의 전망대.

몽환적 분위기 물씬 자아내는 기암절벽과 산릉
“무슨 텐트가 저렇게 많은 거야? 여름 피서철이 지난 지 십여 일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주왕산(周王山·720.6m) 대전사(大典寺) 들머리에 위치한 상의야영장에는 울긋불긋한 색깔의 대형텐트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피서철이 지나 1년 중 가장 한갓지다는 9월 초이건만 주왕산은 오히려 많은 캠핑객들과 탐승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대전사 가는 길은 딱따구리가 나무 쪼아대는 소리가 흥을 돋우고, 대전사(大典寺) 뒤로 솟구친 기암은 눈길을 붙잡고 놔주려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또렷이 그려져 있는 풍광이지만 기암을 보는 순간 신선경 속의 바위처럼 신비감이 넘쳤다.


수호신인 양 골 입구를 지키고 선 기암이 깃발을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깃발 기자를 쓴 바위로 불리는 것은 주왕(周王)의 전설에서 비롯된다. 마 장군이 이끄는 신라의 토벌대에 쫓긴 주왕이 군사가 많은 것처럼 속이기 위해 암봉에 볏짚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위장했으나 화살이 튕겨 나오는 것을 보고 거짓임을 눈치챈 마 장군의 토벌대가 결국 주왕을 누른 뒤 이 봉 꼭대기에 대장 깃발을 꽂았다고 하여 지금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 장군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을 기리기 위해 이름지었다는 대전사 경내를 가로질러 주방계곡으로 들어섰다. 여름 가뭄에 계곡이 바싹 말랐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골 바닥에는 옥빛 물줄기가 가을 하늘빛까지 끌어 담아 한층 맑고 고운 빛깔을 띠며 용전천을 향해 흘러내리고 있다.


▲ 데크 길을 따라 주왕산 정상을 향하는 최준회씨. 등뒤로 주왕산을 상징하는 기암이 노루귀처럼 앙증맞은 모습으로 솟아 있다.

탄탄대로를 따라 300m쯤 오르자 기암교 앞(제3폭포 3.1km·주왕산 2km). 예서 다리를 건너면 주방계곡을 따라 내원동으로 오르고, 오른쪽 길은 주왕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주왕산 오르는 길은 몇 해 전 찾았을 때와 달리 데크 계단길로 다듬어져 있어 힘은 훨씬 덜 들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 마음을 눈치 챘는지 데크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길로 바뀌고, 숲이 걷히면서 등뒤로 주왕산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났다.


장군봉과 기암을 필두로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주방계곡의 기암절벽과, 푸른 숲을 이고 부드럽게 뻗어나간 금은광이(812.4m)~두수람(923.3m)~먹구등(846.2m) 능선, 그리고 먹구등에서 명동재(875m)와 느즈매기를 거쳐 남으로 유유히 뻗어내린 낙동정맥이 하나의 산군을 이룬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왼쪽 주왕산 바깥으로는 청송의 야트막한 산릉들이 어깨동무한 채 군무를 즐기는 듯 다정스럽게 느껴졌다.


넋을 잃을 만큼 아름답고 신비감 넘치는 조망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겨 능선마루를 지나치자, 이제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을 조금 넘어섰는데 벌써 산 안 깊숙이 들어선 기분이다. 주방천 기암숲이 눈을 홀리는 것은 물론이요, 주왕산 정상에서 가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기운차게 바라보인다. 심산이란 이렇게 조금만 들어서도 깊은가 보다.


사방이 숲에 가려진 정상을 넘어 숲으로 파고드는 가을 바람을 맞으며 칼등고개로 향했다. 살짝 내려앉던 산길은 다시 된비알로 바뀌었다가 또다시 내리막길로 변했다. 갑자기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벌써 찬바람이 불어대는 것인가. 가메봉 서릉을 바라보며 칼등고개에서 주능선을 버리고 지능선을 타고 후리메기로 내려선다.


편안하게 다듬어진 데크 계단길을 따라 내려서는데 오히려 깊은 산중으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기암괴봉과 부드러운 산릉도 숲에 가리고, 파아란 하늘도 숲그늘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숲 그늘 밑에는 새로운 별천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끼가 두텁게 덮인 돌덩이들이 깔리고 짤막한 와폭과 작고 야트막한 소가 반복되는 후리메기 골짜기에는 가을빛을 고스란히 담은 옥빛 물이 졸졸대며 흐르고, 그 개울가에는 등산인들이 앉아 가을을 마음속에 주워 담고 있었다.


“가메봉이나 칼등고개를 향해 후려치기 시작하는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주왕산에는 전설이 깃들지 않은 기암도 없지만 재미있는 지명이 붙은 곳도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전설의 산이라 불리는 것 같습니다.”


산행 전 만난 이상해(청송 솔뫼산악회원)씨가 지명 유래에 대해 귀띔해준 후리메기 삼거리(가메봉 2.6km, 대전사 4.1km, 제3폭포 1.3km)를 지나자 물소리가 제법 커지고, 골짜기는 점점 넓어졌다. 그렇게 10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골이 터지면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방계곡이었다.


▲ (좌)마 장군의 아들을 기리기 위해 이름지었다는 대전사에서 바라본 기암.(우)사위가 숲으로 가려진 주왕산 정상.

전설 속의 산마을 돼버린 내원동은 잡풀만 무성
9월 첫째 주 일요일의 주방계곡은 이른 가을을 즐기려는 탐승객들로 떠들썩했다. 널찍한 탐승로는 물론, 물줄기 옆으로 바짝 붙어 이어지는 제3폭포 전망대길 역시 등산과 탐승 인파로 줄을 잇고 있었다. 물가에서 바라보이는 제3폭포는 2단 와폭 자체도 아름답지만 그 아래 옥빛 물을 찰랑찰랑 담고 있는 널찍한 소의 풍광도 일품이었다.


전망대에 보이는 상단 폭포 또한 감탄스럽기는 매한가지. 바가지로 박박 긁어내 움푹 파인 것 같은 형태의 바위가 장식한 바위협곡 사이로 쏟아진 폭포수는 소에 빠져 잠시 평정을 되찾는 듯하다간 또다시 와폭을 타고 포말을 일으키면서 더욱 넓은 소로 떨어져 내렸다. 역동적이면서도 지극히 정적인 폭포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래도 한번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얼마나 변했는지도 궁금하고.”


3년 전 절골을 타고 가메봉을 넘어 내려섰을 때 목격한 게 내원동 마을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이듬해 마지막 세 가구마저 완전히 철거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닌데도 옛 추억이 그리워 물줄기를 거슬러 올랐다.


제3폭포를 기점으로 골짜기 풍광은 판이해졌다. 주방계곡이 눈을 홀릴 듯 빼어나면서도 요란스런 계곡 풍광의 극치를 자아낸다면 위쪽 큰골은 지극히 평범하고 잔잔한 골짜기의 전형이다. 그런 자연환경 때문일까. 큰골 중류부에 너른 분지를 이룬 내원동은 임진왜란 때 산아래 주민들이 왜적을 피해 숨어든 이후 6·25때에도 여러 가구가 살았고, 2000년대 초 아홉 가구가 살 때는 ‘전기 없는 마을’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다 2005년 국립공원 내 민가 철거 방침에 따라 한 집 한 집 없어져, 이태 전 내원산방을 비롯한 세 가구를 마지막으로 모두 철거되고 말았다.


“허전하네요. 그래도 학교 앞마당에 앉아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사색하는 맛이 좋았는데요.”


▲ (좌)제1폭포 일원의 탐승로를 따르는 등산인들. (우)음습한 분위기 속에서 보석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제2폭포.

내원동에 도착해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묵밭 앞 개울에 발을 담근 채 땀을 식히던 최준회씨는 예전 추억이 떠오르는지 “저기가 학교가 있던 자리죠? 봄엔 산나물이 풍성했고, 가을엔 간혹 송이버섯을 맛볼 수도 있던 곳인데……”하며 아쉬워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이세요?”


내원동 개울가에 앉아 쉬는 사이 수십 명의 등산인들이 큰골을 타고 내려서고 있다. 8시간째 산행이라는 이들은 너구마을에서 금은광이 사거리를 거쳐 두수람~먹구등 능선을 지나 낙동정맥을 따라 느즈매기재까지 뽑은 뒤 큰골로 내려서고 있었다. 금은광이 사거리에서 느즈매기재 구간은 관리소에서 비지정 탐방로로 산행을 금지하고 있지만 새로운 길에 대한 등산인들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는가 보다.


이제 전설 속의 마을이 되어 버린 내원동의 옛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다시 대전사로 돌아선다. 하산길, 주방천은 놀랍다 싶을 만큼 많은 탐방객들로 혼잡스럽다. 그런데도 주방계곡의 풍광은 변함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쓰러질 듯 덮칠 듯 치솟은 기암절벽과 기암괴봉은 갖가지 모습으로 절경을 빚어내고 있었다.


지계곡 바위협곡 끝에 걸린 제2폭포는 골을 막고 선 듯 당당하면서도 음습한 분위기와 더불어 신비감이 넘치고, 내원동을 가르며 흘러내린 물줄기는 수직벽과 오버행 거벽이 협곡을 이룬 골짜기 밑으로 흘러들어 주걱으로 긁어낸 듯 바가지 형태의 웅덩이에 스며드는 듯하다가 찰랑대며 턱을 넘어 와폭(제1폭포)을 타고 흘러내린 다음 골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흘러내리는 게 조화롭기 그지없다.


▲ 주방계곡의 핵심 경관을 이루는 제1폭포 일원. 협곡 아래 기묘한 형상의 바위골을 타고 옥빛 계류가 흘러내리고 있다.

‘주왕과 마 장군의 격전지’ 기암은 바위가 아닌 거대한 산
주왕산은 신화 속의 산답게 전설이 깃들지 않은 기암이 없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하여 석병산(石屛山), 예로부터 선사들이 많이 살았고 난리가 날 때마다 이곳으로 피란 온 사람이 많았다 하여 대둔산(大遁山), 신라 선덕왕의 후손인 무열왕 6대손인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왕위에 등극하지 못하고 이곳에 와 은거하였다 하여 그의 이름인 주왕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등, 산명만으로도 많은 얘기를 떠올리게 하는 산이 주왕산이다.


또한 주왕의 최후 격전지였다는 기암, 주왕이 꿈을 버리지 않고 재기를 꿈꾸며 지내다 마 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주왕굴, 바위 꼭대기에 대궐을 짓고 은신해 지내던 김주원이 물을 끌어올리던 절벽이라는 급수대(汲水臺), 백년회로를 꿈꾸며 백학과 청학 한 쌍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일본인 포수가 백학을 쏘아 잡아 버린 뒤 날마다 슬피 울면서 부근을 배회하다 청학마저 자취를 감추고 보금자리만 남아 있다는 학소대(鶴巢臺) 등등, 전설이 전하지 않는 곳이 없다.


주왕과 김주원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주방천의 기암절벽 중 신비롭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일까, 주방계곡을 따라 걷는 이들은 저마다 골짜기 바닥 풍광을 한 번 바라본 뒤 고개 들어 기암절벽을 바라볼 때는 감탄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이래서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며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 평했나 보다.


떡 찌는 시루처럼 생겼다는 시루봉을 지나면서 골짜기는 한결 수더분해지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수많은 전설을 간직하고 현란한 풍광의 기암절벽을 빠져나온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나 보다. 골짜기를 빠져나가 대전사 경내에 도착해 다시 기암을 바라보았다. 기암은 전설이 아니더라도 그 자체가 어마어마한 ‘山’을 그리고 있었다. 기암은 하나의 바위가 아닌, 한 사내가 대망을 꿈꾸던 거대한 산이었다. 


조망과 핵심 절경지 탐승하는 명코스


대전사~주왕산 정상~주방계곡 코스는 정상에 올라 주왕산 전모를 조망하고 경관의 핵심을 이루는 주방계곡을 탐승한다는 면에서 여러 등산로 중 가장 추천할 만한 코스다.


대전사에서 주방천을 향해 300m쯤 걸어가면 기암교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주왕산 정상으로 오르려면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데크계단길을 따른다. 간간이 나타나는 조망처에서 산세를 즐기며 1시간쯤 능선길을 따르면 사위가 숲으로 둘러싸인 주왕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계속 능선길을 따르면 한 차례 내려섰다 된비알을 올려친 다음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후리메기로 내려서려면 조망이 좋은 칼등바위에서 왼쪽 지능선을 타야 한다. 가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비지정 탐방로이기도 하지만 거의 길이 없는 상태라 들어서지 않는 게 좋다.


골바닥으로 내려선 다음 계곡길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후리메기 삼거리다(제3폭포 1.3km, 가메봉 2.6km). 여기서 오른쪽 사창골 골짜기 길을 따르면 주왕산 최고의 전망대 가메봉으로 오를 수 있다(약 1시간10분).


사창골~가메봉 코스를 따르면 산 한가운데 우뚝 솟은 전망대 같은 가메봉 정상에서 주왕산 산세를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더해지지만 후리메기 삼거리에서 표고차가 500m나 나는 가메봉을 오르려면 특히 체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주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칼등바위 일원에서 어느 정도 산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가메봉까지 이을 필요는 없을 듯싶다. 가메봉을 이을 경우 정상을 넘어 안부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절골, 왼쪽 길을 따르면 내원동으로 내려선다.


후리메기 삼거리에서 완경사 산길을 20분쯤 따르면 주방천 탐승로로 내려선다. 여기서 제3폭포는 오른쪽 방향으로 5분 거리이며, 내원동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200m쯤 내려서다 다리를 건너기 전 왼쪽 길을 따르면 제2폭포 앞으로 다가서고(약 7분), 다리를 건너면 대전사로 향하게 된다(30분). 


대전사~주왕산~주방계곡~대전사 산행은 넉넉잡아 4시간 정도 걸리고, 가메봉~내원동 코스를 잇는다면 6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대전사에서는 문화재관람료를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600원씩 받고 있다.


▲ 칼등고개에서 후리메기로 내려서는 취재팀. 울창한 숲이 심산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 교통
대전사 행 노선버스는 청송에서 다닌다.


청송→주왕산(상의) 시외버스터미널(054-873-2036)에서 약 30분 간격(07:50~17:10) 운행. 25~30분 소요, 요금 1,600원.


서울→청송  동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 ARS·www.ti21.co.kr)에서 1일 6회(06:20, 08:40, 10:20, 11:40, 15:00, 16:30) 출발. 4시간30분 소요, 요금 2만3,200원.


대구→청송  동부시외버스터미널(053-756-0017)에서 40분 간격(05:35~ 19:00) 운행. 2시간 소요, 요금 1만3,200원.


안동→청송(주왕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6회(09:30:45~19:35) 운행. 2시간 소요, 요금 4,700원. 문의 857-8298, 8296.
대전사 입구 상의지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은 상태에서 절골로 하산할 경우,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약 2만5,000원. 삼성택시 054-872-7002.


>> 숙식 (지역번호 054)
상의지구 일원에는 하얀집(873-3798), 고향민박(873-3207), 영목이네민박(873-4182), 24시민박(874-2114), 보문장여관(872-4940), 주왕산장여관(873-5511)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방 한 칸 3만 원선.


대전사 들머리 주방천 물가에 위치한 상의야영장은 선착순으로 운영한다. 오토캠핑용 캐러밴사이트는 7개소이며 전기를 이용하려면 오후 6시30분까지 입장해야 한다. 사용료 어른 2,000원(비수기 1,6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샤워장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400원. 쓰레기는 정량제 봉투를 이용해야 한다.


20리터 400원, 50리터 800원. 주차료 1일 5,000원. 문의 054-873~0014~5, www.npa.or.kr/chuwang.


상의지구 주차장에서 대전사 들머리까지 토속음식을 메뉴로 하는 음식점이 도열해 있다. 내원동에서 16년 동안 살다가 이태 전 상가단지로 내려온 내원산방(054-054-873-3798)은 인기 있는 식당 겸 찻집(2층)이다. 산채정식(1만2,000원), 산채비빔밥(6,000원). 약수백숙(2만5,000원), 토종닭백숙(3만5,000원), 가마솥백숙(5만 원·3시간 전 예약시 가능) 등의 메뉴를 취급한다. 함께 식당으로 운영하는 하얀집 2층에는 방 3개를 갖추고 민박을 친다. 방 한 칸에 3만 원. 산촌미락회 회원인 허윤규씨가 운영하는 남근네식당(873-0193, 874-2114)의 던지기탕(수제비·4,000원)이 별미다. 안동고등어백반 1만 원. 잔치국수 4,000원.


▲ 계류가 와폭을 타고 시원스럽게 슬러내리는 제3폭포.


 / 글 한필석 차장ㅣ사진 정정현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