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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민주 경찰’ 오명 벗고 이젠 편히 눈감으소서…

화이트보스 2009. 10. 14. 06:06

민주 경찰’ 오명 벗고 이젠 편히 눈감으소서…

2009-10-14 02:57 2009-10-14 04:13 여성 | 남성
■ ‘동의대 사건’ 추모비 제막
“가해자는 민주화투사 둔갑, 잘못된 결정 바로잡아야”
유족들 각계에 청원내기로



지난 20년 동안의 굴곡진 삶에 비하면 1시간 남짓한 추모비 제막식은 너무 짧았다. 20년 전에 진작 만들었어야 할 추모비. 그나마 남편이 ‘반()민주 경찰관’이라는 오명을 벗었다는 데 만족했다. 20년 전에 모두 흘려보낸 눈물, 더는 쏟아지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오늘 다시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13일 오전 부산 연제구 연산5동 부산지방경찰청 앞 동백광장에서 열린 ‘5·3 동의대사건 순직 경찰관 추모비 제막식장’. 1989년 5월 3일 동의대 중앙도서관에 감금된 전투경찰을 구하려다 경찰과 전경 7명이 사망한 이 사건에서 신양자 씨(55)는 남편 최동문 경위를 떠나보냈다.

부산의 한 재래시장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 씨는 홀몸으로 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시어머니는 이 사건으로 병을 얻어 3년을 앓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늦게나마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돌 하나를 새로 얹은 기분입니다.” 제막식이 끝날 때까지 신 씨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눈물만 훔쳤다.

고 정영환 경사의 넷째 형인 정유환 씨(50)는 유족대표로 인사말을 했다. 그의 둘째 형은 2002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가해학생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숨졌다. 정 대표는 “지난 정권 동안 유가족들은 지은 죄도 없이 죄인처럼 살아 왔다. 늦게나마 명예회복의 계기가 마련돼 다행이다”라며 눈물 섞인 인사말을 읽어 내려갔다.

제막식에는 강희락 경찰청장과 8명의 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 동료 경찰, 유가족 등 250여 명과 동의대사건 순국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같은 당 이인기 의원도 참석했다.







강 청장은 “그동안 유족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하며 추모비 건립이 동의대사건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모비 건립은 강 청장이 올 5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동의대사건 순국 경찰관 20주년 추도식에서 “역사적 평가가 전도됐는데도 시대 상황을 핑계로 이 사건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점에 용서를 구한다”고 밝히면서 구체화됐다. 검은 돌 7개로 된 추모비는 순직 경찰 7명을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경찰을 뜻하는 참수리 날개를 형상화했다. 추모비 뒷면에는 퇴직 경찰관이 쓴 추모시를 새겼다. 고 최동문 경위, 조덕래 경사, 정영환 경사, 박병환 경사, 모성태 수경, 서원석 수경, 김명화 수경의 이름도 함께 넣었다.

동의대사건 연루학생 71명 중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31명은 징역 2년∼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사면 복권됐다. 또 유죄 확정자를 포함해 46명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돼 1인당 평균 25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반면 신 씨 등 순직 경찰 유족은 가장을 잃은 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전 의원이 동의대사건 민주화 보상 재심을 법적으로 가능하도록 올 3월에 만든 ‘민주화운동 보상 관련 법률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유족들은 “가족은 이미 떠나보냈지만 후손을 위해서라도 민주화운동 결정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추모비 건립을 계기로 각계에 청원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 최재호 사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