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민주 경찰’ 오명 벗고 이젠 편히 눈감으소서…
“가해자는 민주화투사 둔갑, 잘못된 결정 바로잡아야” 유족들 각계에 청원내기로 지난 20년 동안의 굴곡진 삶에 비하면 1시간 남짓한 추모비 제막식은 너무 짧았다. 20년 전에 진작 만들었어야 할 추모비. 그나마 남편이 ‘반(反)민주 경찰관’이라는 오명을 벗었다는 데 만족했다. 20년 전에 모두 흘려보낸 눈물, 더는 쏟아지지 않을 것 같던 눈물이 오늘 다시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13일 오전 부산 연제구 연산5동 부산지방경찰청 앞 동백광장에서 열린 ‘5·3 동의대사건 순직 경찰관 추모비 제막식장’. 1989년 5월 3일 동의대 중앙도서관에 감금된 전투경찰을 구하려다 경찰과 전경 7명이 사망한 이 사건에서 신양자 씨(55)는 남편 최동문 경위를 떠나보냈다. 부산의 한 재래시장에서 작은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신 씨는 홀몸으로 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갔다. 시어머니는 이 사건으로 병을 얻어 3년을 앓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늦게나마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합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돌 하나를 새로 얹은 기분입니다.” 제막식이 끝날 때까지 신 씨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눈물만 훔쳤다. 고 정영환 경사의 넷째 형인 정유환 씨(50)는 유족대표로 인사말을 했다. 그의 둘째 형은 2002년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가해학생들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아 숨졌다. 정 대표는 “지난 정권 동안 유가족들은 지은 죄도 없이 죄인처럼 살아 왔다. 늦게나마 명예회복의 계기가 마련돼 다행이다”라며 눈물 섞인 인사말을 읽어 내려갔다. 제막식에는 강희락 경찰청장과 8명의 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지휘부, 동료 경찰, 유가족 등 250여 명과 동의대사건 순국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같은 당 이인기 의원도 참석했다.
강 청장은 “그동안 유족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하며 추모비 건립이 동의대사건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모비 건립은 강 청장이 올 5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동의대사건 순국 경찰관 20주년 추도식에서 “역사적 평가가 전도됐는데도 시대 상황을 핑계로 이 사건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점에 용서를 구한다”고 밝히면서 구체화됐다. 검은 돌 7개로 된 추모비는 순직 경찰 7명을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경찰을 뜻하는 참수리 날개를 형상화했다. 추모비 뒷면에는 퇴직 경찰관이 쓴 추모시를 새겼다. 고 최동문 경위, 조덕래 경사, 정영환 경사, 박병환 경사, 모성태 수경, 서원석 수경, 김명화 수경의 이름도 함께 넣었다. 동의대사건 연루학생 71명 중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31명은 징역 2년∼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김대중 정부 시절 사면 복권됐다. 또 유죄 확정자를 포함해 46명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돼 1인당 평균 25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반면 신 씨 등 순직 경찰 유족은 가장을 잃은 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전 의원이 동의대사건 민주화 보상 재심을 법적으로 가능하도록 올 3월에 만든 ‘민주화운동 보상 관련 법률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유족들은 “가족은 이미 떠나보냈지만 후손을 위해서라도 민주화운동 결정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추모비 건립을 계기로 각계에 청원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 최재호 사진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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