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2014년 이전’ 합의
하토야마 정권선 “재검토”
미 “오바마 방일 전 결단을”
워싱턴 포스트(WP)는 22일 “일본이 미국 정부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올랐다”고 논평하기도 했다. 미국은 현재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이라크·이란 등 중동 지역 분쟁에다 북한·중국과의 외교적 난제도 풀어내야 할 처지다. 이런 터에 가장 믿었던 일본이 돌연 ‘말썽’을 부리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풀릴지 예단할 수 없지만 기지 문제로 표면화된 미·일 간 갈등은 일본의 아시아 중시 정책 등과 맞물려 미·일 동맹을 한동안 흔들어 댈 전망이다.
◆미국 발목 잡는 하토야마 정권=미국은 한국에 2012년까지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주기로 하는 등 해외 미군 전력을 전면 재조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2006년 이뤄진 미·일 합의에 따라 전국 20여 곳의 기지 통폐합이 진행 중이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의 미·일 갈등은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오키나와 북부 슈와브 기지로 통폐합하는 문제를 놓고 발생했다. 기존 합의에 따르면 2014년까지 기지 이전을 완료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비행장 이전 재검토를 지난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이후 이 기지를 해외로 보내야 한다는 주장은 철회했지만, 민주당 정권은 3년 전 합의 내용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21일 방일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에게 “새 정권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러자 게이츠 장관은 “합의를 지키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며 “다음 달 12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일 이전에 입장을 결정해 달라”는 ‘최후통첩’성 발언을 해 양국 간 긴장 수위는 더 높아졌다.
◆“현실 직시해 결국 타협”=이런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하토야마 총리는 22일 “오바마 방일 전까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되받아쳤다. 이런 자세는 그의 ‘정치 DNA’에 흐르는 ‘대미 독자 노선’과 무관치 않다. 50년대 중반 총리를 지낸 그의 할아버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는 철저한 대미 독립노선을 걸었다. 그의 전임자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 경제 발전에 전념했지만 이치로는 소련과 국교 정상화를 하는 등 ‘미국 종속외교’ 탈피를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이 강력하게 불만을 표출해 오자 하토야마 내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조짐도 보인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연내에 오키나와 내에서 새로운 후보지를 책정하는 방안이 정부 내에서 모색되고 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면 이런 계획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와세다(早稻田)대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俊計) 교수는 “일본에서는 미국 관계가 악화하면 정권 유지가 어려워지므로 한국처럼 결국엔 타협해 미·일 관계가 복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