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세계 각국이 제국주의를 추구하고 모방하면서 이전투구를 벌이던 100년 전, 민족을 넘어 인류 공동체의 평화를 염두에 두었던 선각자이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는 거사 후 법정에서 '이토의 죄(罪)' 15가지를 열거하는 가운데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를 들었다. 이토의 죄가 을사늑약을 통해 한국 외교권을 빼앗고 정미7조약을 통해 내정을 유린한 것만이 아니라 힘으로 이웃 조선을 강제합병하려 함으로써 결국 동양평화를 위협한 것이라고 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날짜를 받고 며칠 남지 않은 생의 마지막 날들을 한국과 중국과 일본이 약육강식을 넘어 공동번영을 모색하는 길을 추구하는 저술에 쏟아부었던 사람이다.
안중근 의사는 미완성 원고인 '동양평화론'을 통해 "대저 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것은 만고의 이치"라고 전제한 뒤 19세기 이후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동아시아를 지키려면 한·중·일 3국이 힘을 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중근 의사는 뤼순에 한·중·일 3국이 참여하는 동양평화회의를 설치할 것, 3국 공동 은행을 만들어 공용 화폐를 발행할 것, 3국의 젊은이로 공동 군대를 편성하고 상대방의 언어를 가르칠 것, 한국과 청나라는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앞서 있던 일본의 지도 아래 상공업 발전을 꾀할 것 등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했다.
안중근 의사의 구상 속에 싹텄던 '동아시아공동체론'이 100년이 흐른 지금도 여물지 못하고 있고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 편찬, 한·중·일 FTA 체결 등이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안중근 의사의 역사를 내다보는 시야(視野)의 광대함과 시대를 선취(先取)하는 예견력(豫見力)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안중근 의사가 100년 전 내놓았던 '동양평화론'의 정신과 제안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에 번영과 평화의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느냐는 한·중·일 3국이 지난 100년의 뼈저린 역사를 통해 얻은 교훈과 그 교훈의 실천 의지에 달려 있다.
50년 전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의 유럽합중국 구상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유럽경제공동체(EC)를 거쳐 유럽연합(EU)이란 열매를 맺었다. 이토 히로부미 100주기인 올해 일본 정부는 기념메달을 만들었고 이토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이 속한 중부우체국에선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100년 전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역사관의 상극(相剋)이란 이런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여태 선각자의 사상으로만 머물러 있는 동아시아의 오늘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