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品格은 국민들이 쓰는 언어의 品格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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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相沃 선생의 詩와 산문을 읽으면 이 분이 한국어를 白瓷처럼 다듬어 간 분이란 느낌이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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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瓷賦(백자부)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불로초(不老草) 돋아나고 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 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드노다.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하도다. *부연(附椽): 처마의 서까래 끝에 덧다는 짧고 네모진 서까래. 지붕의 처마를 위로 들리게 하는 멋을 줌. 우리 문학사에 남을 이 시조는 수년 전에 他界한 艸丁 金相沃 선생의 작품이다. 수년 전 아침 金 선생의 따님, 사위 되시는 金薰庭, 金聲翊씨가 부쳐온 책을 읽다가 白瓷賦(백자부)와 만났다. '불과 얼음의 詩魂-초정 김상옥의 문학세계'(태학사)는 장경렬(서울대학교 인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씨가 편집한 평론집이다. 22명의 시인, 교수들이 썼다. 장경렬 교수의 머리말을 읽으니 白瓷賦가 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릴 때 둘째 聯(연)이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은 이 名作을 온전히 읽지 못한 셈이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국정 교과서 편수관들이 '꽃 아래 빚은 그 술'이 미성년자인 고등학생들에게 술을 권하는 것처럼 이해될까 하여 빼버렸다는 것이다. 위선적 도덕론의 극치라 할까, 여하튼 기 막힌 검열인데, 이 뛰어난 작품을 난도질한 셈이 되어버렸다. 生前에 金相沃 선생은 아마도 자신의 영혼을 부어 만든 그야말로 白瓷 같은 이 완벽한 작품이 토막 난 채 실린 것을 보고는 몸의 일부가 잘려나간 것처럼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이 둘째 聯에 대해서 장경렬 교수는 이렇게 해설한다. <"꽃 아래 빚은 그 술"은 아마도 귀하고도 귀한 술일 것입니다. 시인은 마음 속으로 이 술이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그에게 권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상상합니다. 그것도 "불 속에 구워"냈지만 "얼음 같이 하얀 살결"을 지닌 순결하면서도 "순박"한 "백자"에 담아서 말입니다. (中略). 바로 이런 느낌을 아무리 나이 어린 고등학교 학생일지라도 그때의 저에게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둘째 首(수)를 뺀 채 이 시를 교과서에 수록했던 것은 크나큰 잘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경렬 교수는, "그에게 詩는 곧 도자기였고 도자기는 곧 詩였다"면서 "시는 언어로 빚은 도자기요, 도자기는 흙으로 빚은 詩일 수 있"다는 金相沃 선생의 말을 인용했다. 장경렬 교수는 이어서 "불같이 뜨겁고 열정적인 마음과 얼음같이 맑고 정갈한 눈길이 함께 조화를 이뤄 창조해낸 세계가 바로 艸丁의 詩 세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책 제목을 '불과 얼음의 詩魂'이라고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金相沃 선생의 詩와 산문을 읽으면 이 분이 한국어를 白瓷처럼 다듬어 간 분이란 느낌이 온다. 한국어(漢字語와 한글語)가 한글의 公用化에 의하여 온전하게 기능하게 된 지는 100년 남짓하다. 金相沃 선생은 한자어의 깊은 뜻과 한글어의 감수성을 아우르고 주무르고 이리 저리 휘저으면서 아름답고도 品格 높은 언어를 빚어냈다. 우리가 白瓷賦와 같은 위대한 한국어 문학작품을 갖게 된 것은 金 선생과 같은 소수의 天才가 밤 낮 없이 말을 갈고 닦은 덕분이다. 언어의 品格이 인간과 나라의 品格이고 예술 언어로 빚어낸 정신이 국가와 민족의 魂이다. 요사이 난무하는 저질 언어의 홍수 속에서 金 선생의 말과 글은 등대처럼 빛난다. 金 선생이 이룩한 한국어의 발전이 그 뒤 중단, 또는 후퇴상태인 것은 한글專用에 의하여 한국어가 반신불수 상태로 암호화되어가는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국가의 品格을 지켜가는 것은 민족혼일 터인데 말(言)이 미쳐 날뛰는 세상에서 어떻게 제 정신을 차릴 것인가? 한 가지 처방은 艸丁 金相沃 선생의 詩를 많이 읽음으로써 머리속과 마음을 淨化하는 것이리라. 김상옥 선생의 다른 詩를 몇 개 소개한다. 눈 온 세상 뜰안인 양 포근히도 고요한 날! 저 하늘 푸른 속에 깊숙이 숨었다가 흰 날개 고이 펼치고 춤을 추며 나리네. 헐벗은 가지에도 흐뭇이 꽃이 벌고 보리 어린 이랑 햇솜처럼 덮어주고 오는 철 새로운 봄을 불러오려 하느냐. 깃드는 추녀 끝에 낙수소리 들리거든 참고 견딘 추움 헌옷처럼 벗어두고 우리네 헐린 살림을 다시 가꿔보리라. 아기무덤 우리 아기 고운 아기 자는 무덤은 푸른 잔디 금잔디 곱게 깔리고 다복솔도 동무 짠 동그란 무덤. 아기 혼자 외롭기로 무덤 위에는, 할미꽃 한송이 피어 있지요. 우리 아기 고운 아기 쉬는 무덤은 오리나무 숲속으로 길이 열리고, 시냇물도 흘러가는 금잔디 무덤. 밤이면 아기 혼자 울고 있는지, 이슬방울 풀잎에 젖어 있지요. 우리 아기 고운 아기 노는 무덤은 호랑나비 흰 나비 앉았다 가고, 종달새도 노래하는 양달쪽 무덤. 이봄 한철 다 지나고 겨울이 오면, 소복눈이 내려와서 덮어주지요. - 착한 어린이 기어드는 초막집 토방에 자고, 도톨밥 씨락국도 먹으면 삭고. 개똥밭에 개똥같이 뒹굴고 놀고, 자갈밭에 차돌같이 여물어가는, 우리는 우리 고장 착한 어린이. 박쪼각 사금파리 장난감 하고, 맨발에 웃통 벗고 소꿉질 하고. 말똥밭에 말똥같이 뒹굴고 놀고, 뽈동나무 뽈동같이 여물이 드는, 우리는 우리 고장 착한 어린이. - 봉선화 비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면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나무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玉笛 -신라 3寶의 하나 지그시 눈을 감고 입술을 축이시며 뚫린 구멍마다 임의 손이 움직일 때 그 소리 銀河 흐르듯 서라벌에 퍼지다 끝없이 맑은 소리 千年을 머금은 채 따수히 서린 입김 상기도 남았거니 차라리 외로울망정 뜻을 달리하리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