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헬스케어

서울대병원 외과 간이식수술

화이트보스 2009. 11. 2. 16:19

서울대병원 외과 간이식수술 [중앙일보]

안영철(49·남)씨가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으로 초래된 간경변증 진단을 받은 건 1995년이다. 이후 근처 병원에 다니던 중 2003년 9월, 식도정맥류가 터졌다. 급히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실려와 정맥류를 묶었고, 지난 5월까지 내과에서 같은 방식의 식도정맥 결찰술을 모두 11차례 받았다. 식도정맥류는 혼수·복수와 더불어 간경변증의 3대 합병증이다. 대량 출혈로 즉사하기도 하는 응급상황이다.

안씨는 지난 9월 말엔 고열을 동반한 복막염으로도 고생을 했다. 간부전(肝不全)이 심하게 진행된 상태라 복수도 많이 찼고, 혈액 검사상 혈소판 3만/mL(정상 10만~40만/mL이상), 빌리루빈 8.4㎎/㎗(정상은 1.2㎎/㎗ 이하)일 정도로 혈액 응고나 담즙 배출도 제대로 안 됐다.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아무리 약물 치료를 열심히 받아도 상태는 계속 악화할 것이고, 생명은 바람 앞의 촛불인 상태다. 반복되는 합병증과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는 안씨의 생명을 구해줄 유일한 치료법은 간이식 수술이다. 의료진은 공여자를 찾았다. 다행히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의 간이 이식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부전에 식도정맥류 … 생명 위급한 상황

간이식 수술을 집도할 서경석 교수가 수술직전 안영철씨(환자)와 안국현군(공여자)의 CT사진 및 혈액검사 결과를 최종 점검하고 있다.

10월 23일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외과 서경석 교수팀으로부터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 누운 안씨는 연신 눈물을 글썽이며 “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며 목이 멘다.

수술 방으로 들어온 서 교수는 주변 의료진에게 안씨의 복부 CT 촬영 사진을 가리키며 최종 점검을 한다. “간이 심하게 쪼그라든 거 보이죠? 원래 간 크기의 절반도 안 될 거예요. 주변에 무서울 정도로 굵어져 있는 이 혈관도 많죠? 간 기능이 나빠 지혈이 안 되는 환자가 정맥류까지 이렇게 심하니 간을 떼는 과정에서 출혈이 많을 겁니다. 수혈할 혈액은 충분히 확보돼 있죠? 복수가 심해 장도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네요.”

2 아버지에게 오른쪽 간을 제공한 국현군이 수술6일째 병실에서 환한 모습으로 웃고 있다. 3 적출된 국현군의 건강한 오른쪽 간을 이식하기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이남준 교수가 보존액으로 처리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건너편 수술방에선 8시30분부터 고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 국현(1m77㎝, 67㎏)군이 간을 떼기 위해 이제 막 마취를 마친 상태다. 마취가 잘 됐음을 확인한 전임의는 곧 개복을 한 뒤 국현군의 간을 떼기 좋게 주변 조직으로부터 박리하기 시작했다. 10시, 박리 과정이 끝날 때쯤 서 교수가 들어와 오른쪽 간을 조심스레 뗀다.

“간동맥·문맥·간정맥·담도, 이 네 가지를 잘 보존한 상태로 간을 절제해야 이식할 때, 또 이식한 후에 별 탈이 없어요.” 수술을 하면서도 서 교수는 끊임없이 주위 의료진에게 수술 과정을 설명한다.

12시를 조금 넘겼을 무렵, 드디어 국현군의 오른쪽 간이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이남준 교수는 즉시 간을 차가운 보존액에 옮긴 뒤 문맥에 보존용액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남아 있던 혈액이 간정맥을 통해 나왔다. 이제 국현군의 간 혈관은 혈액 대신 보존액으로 채워졌다.

문맥 연결하자 갈색 간, 서서히 붉은색으로

서 교수가 아들의 간을 절제하는 동안 안씨도 병든 간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때 담관·문맥·간동맥·간정맥 등은 공여자 간과 연결하기 좋게 최대한 길게 남겨두는 게 수술의 핵심이다.

오후 1시, 수술 방을 옮긴 서 교수가 2.5배 현미경을 보면서 이번에는 국현군의 간을 안씨에게 연결하는 수술을 하고 있다.

“제일 먼저 간정맥을 서로 이어야 합니다. 이후 공여자 간의 문맥을 환자의 문맥에 연결해 주면 혈액 순환이 시작돼요.”(서 교수)

실제 서 교수가 국현군의 문맥과 안씨의 문맥을 연결하는 작업을 마치자 보존액 때문에 옅은 갈색 빛을 띠던 간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이제 담즙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할 거예요.”(서 교수)

간동맥은 6배 확대되는 수술현미경을 이용해 연결한다. 이 과정은 서 교수와 자리를 바꾼 이남준 교수가 집도를 시작했다. 간동맥 연결이 끝나고 아버지와 아들의 담도를 연결하는 수술이 끝나자 서 교수는 수술방을 나왔다. 이미 절개된 복막과 근육, 피부를 제대로 연결하고 꿰매주는 일은 남은 의료진의 몫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 사진=신인섭 기자

생체 간이식 수술은
성공률 95% 이상 … 간 공여자 사망 위험 거의 없어


간이식 수술은 말기 간경변증 환자는 물론 간기능이 떨어진 간암 환자가 꺼져가는 생명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다.

뇌사자 간이식은 1967년, 생체 부분 간이식은 1988년 성공했다. 국내에선 뇌사자 간이식은 1988년 서울대병원 김수태 교수가, 생체 부분 간이식술은 1994년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가 처음 성공했다

생체 간이식 수술은 초기엔 크기가 작은 왼쪽 간을 사용해 수술 후 환자 사망률이 20~30%나 됐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엔 오른쪽 간을 이식하면서 수술 성공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지금은 95%를 웃돈다. 지난해 국내 생체 간이식 수술은 725건, 뇌사자 간이식 수술은 233건이 시행됐다.

간암은 대부분 간경변증 말기 환자에게 발생한다. 즉 이식수술 후 암세포 제거는 물론 병든 간도 건강한 간으로 바뀐다. 또 B형 간염 환자의 90%는 간염 바이러스도 없어진다. 하지만 수술 후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하며, 수술 후 암이 재발했을 때 뾰족한 치료법이 없다.

간암 환자 간이식 수술은 간암 크기가 5㎝ 이하, 3㎝ 이하의 암덩어리가 3개 이하일 때 간이식 수술을 받으면 수술 후 4년 생존율은 75% 이상이다. 만일 간암이 없는 말기 간경변증 환자가 간이식 수술을 받으면 5년 생존율은 88%로 올라간다.

자신의 간을 60% 이상 떼어주는 공여자의 경우, 최근엔 사망 위험뿐 아니라 수혈받는 경우도 거의 없다. 단 수술 후 1주일에서 10일은 입원해야 한다. 간이식 수술의 최대 단점은 공여자 부족, 수술 후 면역억제제 평생 복용, 고비용 등을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