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13~14일로 예정된 일본 방문을 앞두고, 미국과 일본 간에 전례 없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취임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미국에 너무 의존해 왔다"며 "대등한 미·일(美·日)관계를 추구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기 때문이다. 지난 29일 일본 의회 답변에서 "미·일동맹의 방향에 대한 포괄적 리뷰(재검토)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하토야마 내각은 오키나와의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를 오키나와 내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로 한 지난 2006년 미·일 합의에 대해서도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집권 민주당 일부에선 후텐마 기지를 아예 일본 밖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아시아 주둔 미군 재편 전략의 기본 틀이 위협받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미·일은 최근 워싱턴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갖는다고 발표해 놓고 이를 취소하는 사태를 빚기까지 했다. 미·일 간의 균열이 응급 외교를 통해 서둘러 봉합할 수 있는 성격 이상의 균열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와 언론은 "일본은 더 이상 과거의 일본이 아니다" "이제 미국의 골칫거리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격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 미·일 동맹을 아시아 전략의 기본 축(軸)으로 삼아왔기 때문에 일본의 이상(異常) 반응에 더욱 신경이 곤두선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하토야마 총리 역시 오바마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확대 방안에 대해 "군사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데 대해서 부정적"이라고 말하는 등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기조(基調)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하토야마와 민주당 내각은 미·일동맹의 수정을 꾀하는 한편, 한·중·일 협력을 축으로 하는 '동(東)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하토야마 총리가 미·일동맹의 중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미·일동맹은 일본 외교의 기축(基軸)"이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5년간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관계로 평가돼 온 미·일동맹이 전환기적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을 하토야마 총리의 '원맨쇼'로만 보기 어렵다. 하토야마 신(新)외교 포석의 배후에는 '미국 일변도 외교'만으로는 '중국의 부상(浮上)'이라는 21세기의 새로운 정세 속에서 일본의 활로(活路)를 개척하기 어렵다는 일본 내의 새로운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하토야마는 지난 8월 "미국 주도의 세계화 시대는 막을 내리고 다극(多極) 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2개의 전쟁에 발이 묶이고, 지난해 발생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미국 주도의 정치·군사·경제적 세계 질서가 동요하고 있다는 정세관(情勢觀))의 표현이다. 사실 일본은 자민당 정권하에서도 미국의 외교 정책이 일본 중시(重視)냐 중국 중시냐에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 그런 일본은 미국에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다음 미국의 대중 정책이 일면(一面) 견제·일면 협력의 양면적(兩面的) 성격에서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 관계로 격상(格上)시켜 세계 문제를 중국과의 G2(주요 2개국) 회담에서 본격 논의하기 시작하자 상당한 외교적 충격을 받았다. 하토야마가 일본 근·현대 외교 전통인 탈아입구(脫亞入歐) 노선을 100년 만에 탈미입아(脫美入亞)로 전환해 보겠다고 시도하는 것은 미국의 패권적 지위 동요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중 정책의 변화에 대한 일본 나름의 선제적(先制的) 대응이란 성격도 갖고 있다.
하토야마의 신외교가 장차 어떤 모습으로 현실화할지, 아니면 일시적 전통 이탈(離脫)을 거쳐 원래의 대미 경사(傾斜) 외교로 되돌아갈지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중국·일본이 미국과 맞물려 형성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도 조만간 크든 작든 변화의 흐름이 밀려들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미래의 한반도 통일까지 대비해야 하는 차원에서도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 각각 어떤 속도로 진행돼 어떤 변화를 동반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전망 아래서 국가 전략을 조율(調律)해 나가야 한다. 지금 한·일해협 건너에서 미·일동맹이 빚어내는 균열음은 유동화(流動化)·다변화(多邊化)·복잡화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 국가전략 수립의 지난(至難)함을 일깨워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흔들리는 미(美)·일(日)동맹을 보며 한반도를 생각한다
입력 : 2009.11.08 22:39 / 수정 : 2009.11.09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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