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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주변 홍수, 저류지(貯溜池)로 막는다

화이트보스 2009. 11. 18. 11:33

순천만 주변 홍수, 저류지(貯溜池)로 막는다

  • 순천=조홍복 기자 powerbok@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

입력 : 2009.11.18 05:46

평상시엔 공원으로 활용하다
집중호우 땐 물 가두는 역할… 농경지 사들여 조성하기로
"상습 침수지역 사라질 것"

지난 7월 7일 전남 순천시 풍덕동 일대 들녘. 진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논으로 굵은 빗방울이 쉴새없이 내리쳤다. 물폭탄을 방불케 하는 폭우였다. 도심을 관통한 뒤 풍덕동과 남정동, 우천동 일대 200만㎡(60만5000평) 들녘을 휘감아 순천만을 향하던 '동천'의 물 높이는 금세 높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 물길로 6㎞ 떨어진 바닷물이 만조로 불어나는 중이었다.

인근 야산과 도심 주택가에서 쏟아져 나온 빗물은 빠져나갈 곳을 못찾고 서울 여의도(850만㎡) 4분의 1 크기 농경지 곳곳에 고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어른 무릎 높이까지 차올랐다. 폭우로 침수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이강전 순천시 재해계 담당은 "평소 폭우로 모인 농경지 물은 높이가 낮은 동천으로 쉽게 흘러가는데, 동천 수위가 폭우로 주변 지표면보다 크게 높아져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홍수를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동천 주변 제방은 이 같은 '고저 역전' 현상에 따른 홍수 피해만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날 순천시에 내린 비의 양은 215.5㎜. 풍덕동과 남정동, 우천동 일대는 동천보다 지대가 낮아 집중호우 때마다 물이 역류하는 상습 침수구역이기도 하다. 올해 두 차례 수해를 겪었다.

저류지로 홍수 막는다

순천시는 17일 "2012년에는 순천만 주변 상습 침수지역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시가 내놓은 카드는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저류지(貯溜池) 공원' 조성이다. 노관규 순천시장이 작년 초 이 공원을 추진했을 때 담당 부처인 국토해양부마저 고개를 갸웃했을 정도다.

양동의 순천만정원박람회 추진단장은 "저류지 공원은 강변에 일정한 면적의 대지를 확보해 이를 평소(연간 360일 가량)에는 공원으로 활용하다가 집중 호우시(연간 5일 가량)에는 홍수 조절용으로 물을 모아두는 공간으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조성 부지는 동천 주변(풍덕·남정·우천동) 농경지 24만5000㎡(7만4100평). 외국에선 농경지 자체를 저류지로 활용하지만, 국내의 경우는 농경지를 매입한 뒤 이를 저류지로 만든다. 사업비 490억원 중 부지매입비만 370억원에 달한다.

저류지 조성 농경지는 평균 1~2m 깊이로 파고 주변 곳곳에 아름드리 나무를 심는다. 저류지로 물이 드나들도록 동천변에 놓인 길이 330m 제방 도로는 높이를 2.1m로 낮춰 잠수교 형태로 만든다. 제방을 낮춰 물길을 놓는 것이다. 그리고 폭우로 넘쳐 들어온 물은 저장고처럼 가둔다. 가령 폭우로 불어난 동천의 본류 수량을 초당 1만㎥에서 1000㎥로 순간적으로 줄여 홍수를 예방하는 방식이다. 이후 저류지가 저장 범위를 넘거나 본류 수위가 낮아지면 동천 하류 쪽에 만든 방수 수문을 열어 물을 내보낸다. 보통 5시간 동안 물을 담아둔다. 예상 담수량은 245만t가량이다. 강재식 정원박람회추진단 기획팀장은 "2012년 5월 여수엑스포 개최 전에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물론 하천정비사업 일환으로 3만㎡(1만평) 미만의 소규모 저류지가 전국 주요 강변과 계곡 주변에 조성돼 있다. 또 '4대강 사업'으로 한강 본류와 지류, 영산강 지류에 각각 1곳씩 강변 저류지 조성이 추진 중이다. 하지만 지자체가 단위 사업으로 이처럼 대규모 생태공원을 갖춘 저류지를 조성키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시가 형성되면서 홍수 예방을 위해 강변에 제방을 쌓았다. 하지만 시간당 100㎜로 내리는 장대비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제방이 노후돼 붕괴 위험이 큰 데다 삽시간에 불어나는 물을 인위적으로 통제할 길이 없어서다. 이 때문에 순간적으로 홍수량을 줄이기 위한 저류지와 유수지(遊水池) 등을 만들고 있다.

물가 언덕인 둔치는 제방 아래에 있어 언제든지 물이 넘칠 수 있다. 한강 둔치의 경우 대규모 공원을 조성해 뒀지만, 홍수 조절용이 아니기 때문에 저류지는 아니다. 저류지는 제방 바깥에 위치, 제방을 넘는 물을 비상시 담는 역할을 한다. 유수지는 저류지와 개념이 비슷하지만, 별도의 수문이 없이 엔진을 단 기계로 물을 바깥으로 빼내는 점이 크게 다르다.

서드스페이스 도시환경연구소 고정희 박사는 "치수 선진국인 독일의 옛 수도 본(Bone)은 아예 라인강변 일부 둑을 없애 저류지만으로 홍수를 예방한다"고 말했다. ㈜삼안 수자원부 노진수 전무는 "일본은 지하 25m까지 땅을 파 거기에다 물을 담고, 그 위를 공원으로 활용하는 저류지도 만들었다"며 "국내에도 복개 저류지가 있지만 규모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순천, 2013년 정원박람회 개최

순천시가 저류지 공원을 추진키로 한 것은 국제정원박람회가 계기가 됐다. 시는 2013년 4월 세계 5대 연안습지 순천만 상류에서 정원을 소재로 국제박람회를 연다. 지난 9월 16일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국제원예생산자협회(AIPH)로부터 개최지로 결정됐다. 저류지 공원은 순천만이 시작하는 대대포구에서 상류 6.3㎞ 지점 152만7000㎡(46만2000평)에 수목원(한국정원), 순천만국제습지센터, 박람회장, 생태마을과 함께 조성한다. 박람회장엔 세계 30여개국의 문화와 전통을 담은 다양한 정원이 들어선다. 순수 박람회장 조성비는 966억원. 예상 관광객은 500만명으로, 시는 1조3000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만1000명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한다.

노관규 시장은 "저류지 공원을 도입한 정원박람회는 꽃박람회와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며 "생태와 도심이 함께 공존하는 미래 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일대 혁신의 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