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아파트라고? 알고 보면 PVC 비닐하우스”
사후관리 전혀 없는 친환경 건축물의 실체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
“우리 아이의 건강한 실내 생활을 생각합니다.” 10월 중순, 서울 한강변에 건설될 예정인 한 유명 브랜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가 문을 열면서 내건 슬로건이다. 이 아파트 건설회사는 미래 투자가치와 함께 친환경 아파트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근거로 아파트 인테리어에 ‘친환경 8대 마감자재’를 사용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친환경 아파트는 이제 대세다. 언제부턴가 친환경은 ‘기본 사양’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파트 이미지 광고만 봐도 ‘자연이 그리는 아파트’ ‘자연과 함께 산다’ 등 직간접적으로 친환경을 강조하는 내용 일색이다. 광고대로라면 요즘 아파트는 매우 깨끗해서 새집증후군이나 실내 공기오염물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말 그럴까? 허울뿐인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 정부는 2002년부터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친환경 건축물을 유도, 촉진하기 위해서다. 현재 친환경건축물 인증기관은 환경부와 국토해양부로부터 업무를 위탁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토지주택연구원과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교육환경연구원, 크레비즈큐엠 4곳. 이들 기관은 △토지 이용 △교통 △에너지 △재료 및 지원 △수자원 △환경오염 △유지관리 △생태환경 △실내 환경 등 9개 평가항목 점수를 합산해 100점 만점 중 85점 이상이면 ‘최우수’, 65점 이상이면 ‘우수’ 등급을 인증해준다. 평가항목 이외에 가산항목에서 추가로 36점을 얻을 수 있어 인증기준의 절반만 만족해도 최우수 인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 건설회사들은 친환경을 내세우면서도 대부분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를 외면하거나 홍보용으로만 활용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4년 동안 친환경건축물 본인증을 받은 아파트는 최우수 2곳과 우수 6곳 등 8곳에 불과하다. 2006년 말 정부가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으면 인센티브(공사비 3% 이내 가산비용 인정 등)를 주겠다고 하자 2007년 13곳(최우수 1, 우수 12), 2008년 49곳(최우수 6, 우수 43), 2009년 6월 말 현재 37곳(최우수 4, 우수 33)으로 조금씩 늘고 있지만 여전히 적은 숫자다. 현재까지 본인증을 받은 아파트는 최우수 13곳, 우수 94곳 등 모두 107곳. “매년 늘고 있다지만 최근 신축 아파트의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건축허가와 사업계획승인 단계에서 ‘예비인증’을 받고, 이를 홍보용으로만 사용한 뒤 ‘본인증’ 절차를 밟지 않는 건설회사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2002년 이후 현재까지 예비인증을 받은 410곳 중 본인증을 받은 곳이 107곳이니 4분의 1 정도만 본인증을 받은 셈이다. 토지주택연구원 서만섭 부장은 “예비인증은 본인증을 전제로 받는 것인데, 예비인증으로 인센티브만 챙기고 본인증을 받지 않는 건 사기나 다름없다”며 “예비인증을 받은 후 건물이 완공되기까지는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2006~2007년 예비인증을 받은 아파트들이 올해 들어서 본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본인증은 당연히 받아야 할 절차라는 얘기. 그러나 예비인증을 받은 아파트 중에 준공검사를 마치고 입주가 완료된 지금까지 본인증을 받지 않은 아파트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음은 건축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분양을 시작하기 전에 친환경 예비인증을 받으면 그만큼 프리미엄이 붙는다. 하지만 실제 시공할 때는 건축설계 원안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 친환경 자재나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첨단 시스템 도입에 따른 비용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본인증 절차를 밟을 때 지불해야 할 인증비용도 부담이다. 건설업체 처지에선 이미 분양이 끝난 아파트에 추가로 투자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나.” 더욱이 이를 관리, 감독할 정부부처나 기관도 없다. 4개 인증기관에서는 해당부처인 환경부나 국토해양부에서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해당부처는 아직 마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정수성 사무관은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에 대해 사후 관리하는 곳이 아직 없다. 이 제도는 국토해양부와 공동으로 운영하는데 최근 4개 인증기관 관계자들과 총괄 관리감독을 위한 별도의 운영기관을 둘지, 4개 인증기관 중 한 곳으로 정할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친환경 인증 아파트의 ‘생얼’ 지난해 8월 서울 송파구 잠실지역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이모(32) 씨는 입주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눈이 침침해 불편함을 느낀다. 이전에 살던 오래된 아파트에서는 없었던 증상이다. 이씨는 새집증후군을 의심한다. 깔끔한 아파트 조경에 쾌적한 실외환경을 보면 달리 의심할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친환경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이씨처럼 새집증후군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다.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은 과연 얼마만큼 친환경 자재로 실내 마감을 했느냐에 쏠린다.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은 아파트가 일반 아파트보다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은 아파트는 얼마나 안전할까. ‘주간동아’는 그동안 친환경건축물 최우수 인증을 받은 아파트 13곳 중 최근 2년 사이에 인증을 받은 아파트 8곳의 마감재를 확인해봤다. 경기도 김포시 H아파트 1~3단지와 성남시 분당구 P아파트와 H아파트 10~12단지, 인천시 연수구 S아파트가 그 대상이다. 아파트의 주요 내장 마감재는 실내표면적의 61%를 차지하는 벽지와 바닥이고, 그 다음이 시트(25%)다. 가구류(싱크대, 신발장, 붙박이장)와 도어류(방문, 섀시), 몰딩류(천장 몰딩, 걸레받이, 문선) 등의 표면은 모두 시트로 이뤄져 있다. 나머지 15% 정도는 페인트와 타일 등이 차지한다. 최근 페인트는 대부분 친환경 수성을 사용하는 추세이고, 시공할 때 어떤 접착제를 사용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코팅 처리된 타일 자체에서는 별다른 공기오염물질이 방출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아파트의 실내 공기오염물질 방출 여부는 실내표면적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벽지와 바닥, 그리고 시트로 어떤 제품을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현재 환경부는 비교적 까다로운 기준을 세워 친환경 건축자재를 대상으로 ‘환경마크’를 부여한다. 제품 원료부터 생산, 유통, 수거, 폐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과정에 걸쳐 인체에 유해한 오염물질이 발생하지 않는 제품에 한해 인증해준다.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는다. 실내 마감재를 환경마크 인증자재로 사용한다면 그만큼 친환경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실제 친환경 최우수 인증 아파트들은 환경마크 인증 자재를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분당 P아파트의 경우 벽지와 바닥재, 시트 모두 ‘환경마크’ 제품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벽지와 바닥재를 시공한 업체는 이미 부도가 나 사라졌고, 시트업체는 중소업체였다. 그렇다면 이 아파트는 어떻게 친환경 아파트로 선정됐을까? P아파트 건설업체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내 마감재에는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실내 공기오염물질 방출량 최소기준치 이상의 제품을 썼다. 하지만 단지 내 설계와 옥상 조경시설, 빗물저장 시스템 등 외부설계를 친환경건축물 기준에 따랐다. 최우수 인증을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유명 건설업체가 건설한 분당 H아파트와 김포 H아파트는 그나마 조금 나았다. 벽지는 ‘환경마크’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바닥재는 대부분 ‘환경마크’ 제품을 사용했다. 시트는 제품명을 밝히지 않아 확인이 어려웠다. 인천 S아파트는 바닥만 ‘환경마크’ 제품을 사용했고, 벽지와 시트는 ‘환경마크’ 제품이 아니었다. 이들 아파트처럼 요즘 가장 많이 사용되는 벽지는 LG벽지와 DID벽지, 대동벽지 등 유명 브랜드 회사에서 제조한 폴리염화비닐(PVC) 실크벽지다. ‘환경마크’ 인증 기준을 보면 프탈레이트가 함유된 PVC 실크벽지는 기본적으로 친환경제품에서 제외된다. 환경유해물질이 많이 방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친환경 종이벽지보다 선호되는 것은 화려한 디자인과 무늬, 그리고 얼룩이 쉽게 지워지는 등 관리가 편리하기 때문. 바닥재의 경우 PVC 비닐장판에서 온돌마루나 강화마루로 전환되는 것이 요즘 추세다. 비닐장판보다 마루가 훨씬 친환경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마루라고 모두 친환경 제품은 아니지만, 이런 변화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선도하고 있다. 다만 간혹 일부 건설업체가 분양가를 올리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친환경 인증 아파트가 이 정도니 일반 아파트나 저가 임대아파트의 수준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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