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단행을 하고난 이후, 사내에 돌기 시작한 소문은 뜻밖에도 그가 원래부터 ‘사내정치의 달인’이었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몸담았던 대기업에서 사장 자리에 오르려고 무슨 짓을 했다느니 하는 식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쉬 사라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런 소문이 돌면서 해당 부처 담당자들의 시선도 변한 듯했고, 국회에 가도 해당 위원회의 보좌진들이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달라진 듯했다. 순전히 실력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는 자긍심이 강한 그로서는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지만, 당장 업무를 하는데 지장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한단 말인가?
시름에 잠겨 있을 그에게 위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요즘 소문 때문에 힘드시죠?’ ‘아니, 소문이 거기까지 났어?’ ‘그럼요. 대한민국이 생각보다 좁다는 거 모르세요?’ 알기야 알지 왜 모르겠어? 다만 그 속도에 놀랄 뿐이지. ‘제가 Tip을 조금 드릴까요?’ ‘뭔 Tip? 내가 웨이터도 아닌데, 허허?’
‘별 건 아니고요. 많은 새 CEO들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답니다. 그게 뭐냐? 자신이 사내정치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거죠. 하지만 그 뿌리를 뽑는 행위부터가 사내정치라는 거 아닙니까?’ ‘아니 지금 내가 사내정치를 하고 있다는 말이야? 나 원래 그런 거 싫어하잖아?’
‘사장님이 정말로 사내정치를 하고 있단 말은 아니고요. 그렇게 비칠 수도 있는 거죠. 사람보다는 제도에 한 번 눈을 돌려보세요. 예를 들자면, 규칙을 강화한다던가 하는...’ 나와 전화를 끊고 나니, 자신이 단행한 인사를 직원들, 특히 당하는 직원들은 사장이 자신만의 새로운 라인을 만들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전화를 끊고 난 다음에도 끌리는 구절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람보다 제도에 눈을 돌리라는 말이었다나? 그때부터 인사팀에 연구를 시킨 결과, 그가 탄생시킨 것이 바로 ‘사내정치윤리규범’이었다.
이름 그대로 비윤리적인 사내정치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인데, 실은 규제보다는 촉진에 더 초점이 맞춰진 규범이다. 다시 말해, 좋은 사내정치에 대해서 보상을 강화하는 내용을 위주로 하면서, 나쁜 사내정치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규범이다.
최근 대기업과 공기업을 중심으로 윤리경영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윤리경영은 주로 부패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기존의 직원윤리규범의 경우에는 너무 추상적이라서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공무원윤리헌장실천강령’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그 일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직장에선 경애와 신의를 -
1.내 직장을 내 집같이 여겨 명랑하고 화목한 근무환경을 조성한다.(명랑한 분위기)
2.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되, 부당한 지시는 소신껏 건의하여 바로 잡도록 노력한다.(상사에 대한 태도)
3.부하의 인격을 존중하여 올바른 건의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잘한 일은 칭찬으로 격려한다.(부하에 대한 태도)
4.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이해와 겸손으로 동료 간의 융화를 도모한다.(동료에 대한 태도)
5.언행의 일치와 약속의 이행으로 서로 믿을 수 있는 공직풍토를 조성한다.(신뢰 풍토)
6.직장 내의 파벌조성을 삼가하며 남을 비방하거나 모함하지 아니한다.(파벌의식 타파)
이 강령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할 분들도 많겠지만, 이것을 처음 작성한 분들의 숭고한 정신까지 폄훼하진 말기 바라며, 대안을 제시해 본다면, 윤리경영의 영역을 사내에서 벌어지는 직원간의 비윤리적 행위로까지 확장하는 동시에, 직원윤리규범에도 구체적으로 규정해서 실행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나선다고 나쁜 사내정치를 완벽하게 해소할 수는 없다. 하지만 회사가 주심이 되어 준다면, 소소하게 개인 간에 벌어지는 나쁜 사내정치의 폐해를 상당히 줄일 수는 있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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