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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기는 경작지…‘기후난민’ 해마다 10만명

화이트보스 2009. 12. 2. 17:11

물에 잠기는 경작지…‘기후난민’ 해마다 10만명

한겨레 | 입력 2009.12.02 10:30 | 수정 2009.12.02 10:50

 
[한겨레] 쫓겨난 농민들 신발 수선·바구니 짜기로 생계


2050년까지 국토 17% 침수·난민 2천만명 우려


"기후변화 책임없는 개도국 빈곤층 피해 떠안아"

오는 7일(현지시각)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릴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인류를 구할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과학자들은 2020년까지 온도 상승을 2도 내에서 막지 못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전세계의 공동과제이지만, 한편으로 선진국과 후진국의 분담 정도, 한 국가의 감축량을 어느 부문에 배당할 것인가와 같은 첨예한 '불평등' 문제를 낳고 있다. 이젠 '기후정의'에 대한 논의 없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란 힘들다. 1990년대부터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홍수' 급증으로 삶의 터전이 물밑으로 가라앉고 농업이 사라지고 있는 빈곤국 방글라데시는 그 낭떠러지에 서 있다.

해수면 높아지는 방글라데시

'새우가 농민들을 몰아내고 있다.'

영국 산업혁명 때 양털을 얻기 위해 경작지를 양 목장으로 바꾸어 농민을 몰아낸 엔클로저 운동과 유사하게,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선 방글라데시에서는 새우가 농민들을 몰아내고 있다. 경작지가 새우양식장으로 바뀌는 것은 기후변화가 이미 산업 변화를 가져올 정도로 인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의미다. 이 변화에는 새우양식장 때문에 농토에서 쫓겨난 농민을 포함한 기후 난민이 자리 잡고 있다.

유엔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는 방글라데시에서 해수면 상승으로 오는 2050년까지 국토의 17%가 침수되고, 약 2000만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자연재해 난민들이 많기는 하나, 이들 역시 전형적인 기후난민으로 고착화하고 있다.

삿키라주 샴나가르 파타칼리 마을의 하란 찬드라 다스(62) 일가는 지난 5월24일 사이클론 아일라에 일가의 집들이 모두 침수당해 다카로 이사가야 했다. 사이클론은 온 마을을 집어삼켰다. 이들 4남매 30여명 일가는 경작지가 새우양식장으로 변한 뒤에도 신발 수선과 바구니 짜기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아일라가 불어닥친 뒤에는 집도 잃고 마을의 경제활동도 중단되어 대도시로 가야만 했다. 다카 생활에 적응 못 한 큰형 하란은 최근 집터에 물이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인만 데리고 고향으로 다시 왔으나, 그에게 지금 생계 수단은 없다. 마을의 경제활동이 모두 중단된 상태에서 그에게 신발과 바구니를 의뢰하는 마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강 건너 보로바리 마을에 살던 동생 니몰(60)은 형보다 먼저 고향으로 돌아와, 집도 복구했으나 결국 다카로 다시 갔다. 생계가 없는 마을에서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카 뚜락 강변의 이스트바우니아의 빈민촌에서는 여동생 쿠코 일가를 포함해 30여명 가까운 일가가 움막 같은 방 두 칸에서 지낸다. 니몰은 한달에 약 1만5000타카(약 24만원)를 벌어들여 고향에 있을 때와 비슷하나, 집세와 대도시의 높은 물가는 구매력을 절반으로 떨어뜨렸다. 니몰은 형 하란도 곧 다카로 다시 올 것으로 알고 있다.

하란 일가의 경우처럼, 자연재해 난민과 기후난민은 이제 동일어가 되고 있다. 실제로 방글라데시 남동쪽 벵골만의 쿠툽디아 섬은 2500㎢의 면적이었는데, 지난 100년 동안 면적의 65%를 상실하고 인구의 60%가 도시로 이주했다. 250개의 강이 흘러 '강의 나라'로 불리는 방글라데시는 총연장 2400㎞ 길이의 강둑이 있다. 이 중 절반인 1200㎞가 매해 하안 침식을 당하며, 10만명의 기후난민을 낳고 있다. 약 3400㎢의 면적이었던 볼라주는 지난 50년 동안 강안 침식으로 약 227㎢의 면적을 잃었다.

방글라데시환경변호사협회의 하피줄 이슬람 칸 변호사는 "가장 책임이 없지만, 가장 피해가 크다"(the least reponsible, but most vulnerable)라는 기후변화에 대한 방글라데시 쪽의 입장을 강조하며, "인간 활동의 결과인 현재 기후 변화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아무 책임이 없는 개발도상국의 빈곤층들이 그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카 삿키라/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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