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와 4대강 개발이라는 국가적 쟁점을 놓고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각자 다른 소신과 처신을 보이고 있다. 자신들의 소속 정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같은 지역'이라는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세종시와 4대강 개발 문제는 잘하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종시 문제와 관련한 충청권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은 '충청'이라는 한마디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정부의 세종시 수정 방침에 반발해 지사직을 사퇴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충청 지역의 정서와 분위기를 깊이 고민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충남 지역 16개 시장·군수들도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모두 세종시 수정 방침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대전광역시 5개 구청장도 마찬가지다.
반면 정우택 충북지사는 사퇴 문제에 대해 이 지사와 생각이 다르고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충북 12개 시장·군수들 중 청주·충주·제천 시장 등도 세종시 원안 추진에 목숨을 걸 일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충북의 세종시 원안 추진 찬성 비율은 67.1%이다. 충남(68.4%)이나 대전(74.5%)과 마찬가지로 원안 찬성, 즉 수정안 반대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역 민심과 다른 의견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는 최근 '4대강 살리기 희망 선포식'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사업의 성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4대강 개발에 대해 민주당은 결사 저지를 다짐하고 있다. 호남지역 여론도 4대강 중 광주·전남을 흐르는 영산강 개발을 빼고는 반대가 압도적이다. 두 사람은 이 발언으로 민주당 안팎에서 곤욕을 치렀다.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이처럼 여러 가지 목소리를 내는 데는 정파와 지역에 따른 개인적 이해타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주민 대표'로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냐 하는 나름대로의 고민과 철학도 큰 이유가 됐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역 여론이나 민심의 충실한 대변을 우선할 것이냐, 국가나 지역에 보다 큰 이익이 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독자적 판단을 우선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 대표, 주민 대표가 이 둘 중 어느 쪽 입장을 택해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이들이 그저 여론의 눈치나 살피고 여론에 이끌려만 다녀서는 곤란하다. 자칫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인기 영합주의(포퓰리즘)에 빠질 수 있다. 반대로 무슨 일이든 지나치게 자신의 소신만 강조하면 독선과 독단에 빠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이다. 일반 대중들의 욕망과 욕구를 잘 살피면서도 나라의 앞날을 생각할 줄 아는 균형 감각 말이다. 세종시나 4대강 개발 같은, 말 그대로 국가의 백년대계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들 문제를 둘러싼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서로 다른 소신과 처신은 우리 사회가 그런 균형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이자 진통일 수도 있다. 그들뿐 아니라 국민들도 이들의 언행을 보면서 과연 바람직한 민주적 지도자란 무엇일까 하는 문제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렇게만 된다면 세종시와 4대강 개발 문제는 숱한 논란과 혼란, 아귀다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민주주의 의식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소중한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완구·박광태' 케이스 연구
입력 : 2009.12.04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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