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께.
지난달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의 한미연구소가 발표한 미 상·하원의 한반도 관련 법안 분석 결과를 보고받았는지요? 1월 이후 111회 미 의회에 제출된 법안 중 한반도 관련은 총 15개입니다. 이 중 북한 관련이 상원에서 4개, 하원에서 8개 발의됐습니다.
이 법안의 공통점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4월 대포동 미사일, 5월 핵실험 전후로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지요. 특히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것과 관련한 법안이 많습니다. 상원에서는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는 데 기여한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Brownback) 의원이 테러지원국 재지정 발의에 앞장섰습니다. 하원에서는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외교위원장을 맡게 될 일레나 로스레티넨(Ros-Lehtinen) 의원이 주도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존 케리(Kerry) 상원 외교위원장이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필요한지를 국무부가 검토해서 보고해 달라는 법안을 제출·통과시켰습니다.
이렇듯 미국 정치권에 여야 간 약간의 입장 차는 있지만, 대북 불신감은 일치돼 있다고 보입니다. 2008년 10월 테러지원국 해제를 챙긴 후, 핵 프로그램 검증 약속을 번복해 버린 북한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미 의회를 취재할 때마다 비핵화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시킨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는 의회뿐만 아니라 미 언론과 전문가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조지 W 부시(Bush) 전 행정부에서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탓하곤 했습니다. 당시 북한에 대한 강경 대응보다 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폈던 대표적인 매체가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타임스였습니다. 하지만 올해 오바마 행정부의 제재(制裁)를 앞세운 단호한 대응에 이 매체들은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한반도 문제 분석을 업(業)으로 하는 전문가 중에서도 북한과의 무조건 대화를 내세우는 이들의 목소리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올해 북한 외무성은 미국의 일치된 여론과 오바마 행정부의 내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실책을 범했습니다. 지난 8월에는 유엔주재 북한 대표부의 김명길 공사가 오바마 대통령과는 관계가 소원해진 빌 리처드슨(Richardson) 뉴멕시코 주지사를 찾아가서 '북미대화'를 요청하는 실수를 저지르더군요. 오바마 대통령은 상무장관직을 수락했다가 철회해서 그를 당황케 한 리처드슨 주지사에게 실망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 관계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참 답답하네. 북측은 신문도 제대로 안 보나. 리처드슨 주지사가 무슨 영향력이 있다고…."
미국에 대한 상황분석보다 북한의 입장을 앞세워서 벌어진 이런 해프닝이 8일 평양 땅을 밟은 스티븐 보즈워스(Bosworth)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와의 만남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국이 6자회담 내에서만 미북 간 현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빈말이 아닙니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Kelly) 당시 국무부 차관보의 평양 방문 때처럼 괜히 위세를 과시하거나,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만약 그런 결과가 나오면, 오바마 행정부는 당신의 발언을 대북 제재를 더 강화하는 이유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화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취해진 조치가 북한 내부를 더 동요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잘 보필하는 길인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강석주가 보즈워스 만날 때 숙지사항
입력 : 2009.12.09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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