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경쟁력강화위원장
핵심 경제 정책으로 보폭 넓혀갈 듯…
"정책 주도가 아닌 조정·보완이 내 역할"
세계경제 불확실성 커… 한국 최악상황 대비해야… "예측 틀려 바보 됐으면…"
인터뷰=윤영신 경제부장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의 보폭이 내년부터 상당히 넓어질 것 같다. 올해는 우측통행과 인감증명 축소, 로마자 표기법 개선 등 낙후된 제도를 고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내년에는 경제정책 전반으로 영역을 확대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기업투자' '일자리 창출' '서비스 규제개혁'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과제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윤진식 청와대 정책실장도 챙기는 분야다. 올해 8월 말 경제특보를 겸임하게 된 강만수 위원장이 내년부터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보다는 '경제특보'로서 더 많이 뛰겠다는 뜻이다. 강 특보는 14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우선적으로 내수확충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개혁과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14일 이명박 대통령이 민생현장을 방문할 때 입고 다니는 것과 같은 감청색 점퍼를 입고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외국 학자들의 견해가 실린 외신 보도를 들어 보이며 세계경제가 더블딥(double dip·경기가 반짝 상승한 후에 다시 침체하는 현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서울 광화문 KT빌딩 12층 집무실에서 만난 강 특보는 감청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이 대통령이 민생현장을 방문할 때 주로 입는 점퍼와 같은 색깔이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대통령 경제특보라는 두 가지 직함을 갖고 있는데, 어떤 직함을 앞세워주길 원하나.
"겸직인데…. 위원장 겸 경제특보보다는 경제특보 겸 위원장이라 불러주면 좋을 것 같다. "
―정부 당국이나 일부 연구소에선 내년에 5% 안팎 성장 가능성을 얘기하는데 특보께서는 더블딥(double dip·경기가 반짝 상승한 후에 다시 침체하는 현상) 가능성을 지금도 언급하고 있다. 세계 경제뿐 아니라 국내 경제도 더블딥을 겪을 것으로 보는가.
"세계 경제는 최악의 국면은 벗어났지만 아직 본격적인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세계 경제가 비관적이면 우리가 좋아질 수 없다. 우리나라의 대외 의존도(무역비중)는 지난해 92%로 올랐고, 수출의존도는 45%를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경제의 더블딥 등 대외 불안요소는 우리 수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강 특보는 내년에 한국 경제에 더블딥이 올 것이라는 표현은 직접 쓰지 않았다. 더블딥이 없을 것이란 정부 당국과 이견이 있음을 부각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국 미국 등 세계 경제가 더블딥을 겪으면 한국도 더블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더블딥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세계적인 싱크탱크라는 IMF(국제통화기금)도 올해 경제예측을 12번이나 수정했다. 그만큼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악을 전제로 해서 정책을 펴나가는 게 맞지 않겠는가. 낙관을 전제로 정책을 펼쳐서는 안되며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내가 더블딥을 얘기하는 것은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하버드대의 마틴 펠트스타인,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등 최근 경제예측이 정확했던 많은 경제학자들이 내년 하반기 이후 더블딥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블딥을 예측하는 근거는 크게 4가지다. 먼저 금융부문이 계속 위축될 것이란 점이다. 미국의 상업용 빌딩이나 소형은행이 파산하고 있고 금융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둘째는 실업이 증가해서 소비가 줄어들 것이란 점이고, 셋째는 경기위축으로 투자가 부진하다는 것이다. 넷째는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이 대규모 재정투입에 나서 내년 하반기부터는 재정여력이 거의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미국을 대체할 소비시장이 현재로선 없다. 중국은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등 사회안전망이 정비된 후라야 국민이 어느 정도 소비를 해줄텐데 적어도 5년 이내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경쟁력강화위원장으로서 올해 크고 작은 제도개선에 주력했다. 내년에 하고싶은 일은 무엇인가.
"우선적으로 내수확충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개혁과제들을 적극 추진할 생각이다.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 일본의 한 경제학자는 일본의 자동차 산업이 아직 경쟁력이 있지만 조만간 한국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있고, 한국도 빠르면 10년 내에 중국의 추격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이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금 등에서 중국과 경쟁이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료와 관광, 교육, 문화 등 서비스산업에서 규모를 키우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들 산업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인 내수확충과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의료·교육 서비스 규제완화는 선임 경제부처인 기획재정부가 핵심 과제로 추진해왔으나 다른 부처나 이해 관계자 집단의 반발에 부딪혀 진전을 보지 못해왔다.
―내수 기반 확충과 일자리 창출은 현재 한국경제의 핵심 어젠다이다. 경제특보 겸 위원장으로서 이 부분을 챙기게 되면 정부 당국이나 청와대 정책실과의 역할이 상충되는 건 아닌가.
"경우에 따라서는 경쟁력강화위원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부처간 이해조정을 통해 내수확충과 일자리 창출 등에 나설 것이다. (나는) 보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내년에는 정부보다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민간 위원(전체 위원 30명 중 28명)들의 역할을 확대할 계획이다."
―일자리 창출, 내수 활성화, 규제완화는 수년간 이루지 못한 힘든 과제다. 묘안이 있는가.
"법 규정에는 문제가 없지만 개인이나 기업 등 개별적인 사정을 보면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주문이 쏟아져 공장을 넓히려고 하는데 공장입지 규제에 묶여 있거나, 주변에 고속도로가 들어와 자투리땅이 되어버린 농지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풀어주고 싶어도 산림법, 농지법, 수도권규제 관련법이 가로막아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 수년간 규제완화조치를 해주어도 국민들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별구제 특례법(가칭)'을 만들려고 한다. 기업으로 따지면 규제특례법이다."
―다른 법과 상충되는 문제점이 있고, 반대 의견이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반대 의견이 있지만 최근 용역을 의뢰한 공법학회에서 가능하다는 중간 보고를 해 왔다. 법 위에 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견해도 있으나,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 즉 특별법이 우선된다는 해석으로 보면 가능하다고 한다. 특정한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개별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규제에 대한 특별법을 만들어 규제를 풀어줄 수 있다. 일종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다. 소위 맞춤형 규제완화가 될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가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구체적인 절차는 언제,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준(準)사법적인 공정한 절차에 의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집행기구가 필요하며 여기에서 객관적으로 풀면 된다. 잘만 운용하면 민간 차원의 자생적인 투자를 일으킬 수 있고,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연말까지 공법학회에서 용역결과가 오면 '개별구제 특례법 제정'을 추진해 (내년부터)개별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개인이나 기업을 구제해 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겠다."
―정부가 지난 10일 밝힌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서 우리 경제는 내년에 5% 성장한다고 발표했다. 내년도 우리 경제를 어떻게 보는가.
"내년 5% 성장이란 숫자는 올해 낮은 성장에 대한 반등, 즉 기저효과(base effect)가 크다고 봐야 한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연평균으로 계산해 보면 2%대에 머무른다. 재정(財政)효과와 환율효과를 제외하고 서민과 기업이 느끼는 민간 부문의 체감경기는 마이너스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
강 특보는 항상 외부 강연 등을 할 때 "(더블딥 가능성 등 비관적인)내 예측이 틀려 내가 바보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자신의 비관론이 틀려 우리 경제가 나아지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