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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NK지식인연대 미디어부장)의 최근 북한 정세 증언 |
조갑제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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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돈만 주면 김정일 모가지도 따다 줄 수 있어요”
오늘도 저희가 새로운 소식을 홈페이지에 올려놨습니다.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어제 6일까지 북한이 화폐개혁을 끝냈습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북한 당국이 그만큼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북한의 돈이 지금 다 어디 있느냐? 거의가 시장에 있습니다. 북한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과 일반 주민들이 돈을 다 갖고 있습니다. 북한이 92년도에 화폐개혁을 할 당시엔 200원만 바꿔줬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17년 전)엔 북한 주민들이 화폐개혁을 환영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 돈이 너무 낡았기 때문입니다.
북한 돈이 얼마나 낡았냐면, 여기(남한)에서 쓰는 휴지조각 정도로 낡았었습니다. 돈이 세 조각, 네 조각으로 나뉘어 이것을 풀로 붙여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17년 전 화폐개혁 당시에는 새로운 돈을 쓸 수 있어 반겼습니다. 92년도에는 장사(시장)가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화폐개혁을 해도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그 영향력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당·간부도 그렇고 공무원도 일반 학생도 군인도 누구든지 장마당에 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장마당(시장)에 물건보다 사람이 더 많았던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90년대 초)가 북한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돼 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북한 당국이 아무리 통제하고 싶어도 배급을 줄 수 없기 때문에 통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10년 동안 지속되다 보니 북한 시장에 나가 꾸준히 장사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돈을 모으게 됐습니다.
북한 당국이 2002년 7·1경제조치를 취하면서 구역을 정하여 시장을 합법화시켰습니다. 자릿세를 받는 방식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어느 정도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어느 정도 돈과 재산을 모으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하게 되니 화폐개혁을 갑자기 해버렸습니다.
어제 들어온 소식통에 의하면 평양에서 도매로 백승담배(군용담배)를 사 신의주로 넘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북한 돈 800만 원을 高利貸金業者(고리대금업자)에게서 빌린 후 3시간 만에 화폐개혁이 이뤄지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아 결국 자살을 시도했었습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5층에서 뛰어내렸는데, 다리만 부러지고 다른 곳은 괜찮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저기서 소요사태가 일어난다는 소식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이러한 반발을 막기 위해 한 달 치 배급을 줬다고 합니다.
일반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군대 또한 의식이 변하고 있습니다. 북한 군대에는 "국경경비대에 가려면 북한 돈으로 1500달러를 내야 하고, 호위국이나 더 좋은 곳으로 가려면 북한 돈 3000달러를 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비싼 돈을 내서 군대에 가는 이유는, 일단 국경경비대에 가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밀수를 하든 뭐를 하든 입대시 1500달러를 냈으면 제대할 때는 적어도 만 달러는 벌어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든 힘 있고 빽 있는 자녀들은 국경경비대 같은 곳으로 갑니다. 제가 군부 쪽에서 일했기에 군부대의 생각 변화를 알고 있습니다. 과거 군대는 조국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영예를 갖고 10년 동안 복무 했는데 이제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군대의 사정이 어려우니 그런 생각은 없고 돈 버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외화벌이를 하면서 겪은 일입니다. 저희 회사 근처에 7총국 산하 외화벌이사업소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저희 회사에 와 1년 기한으로 2만 달러를 빌려갔습니다. 그런데도 갚지 않자 직원들을 보내 갚으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는 특무부대(특수부대) 중대장을 이용했습니다.
중대장에게 “2만 달러를 받아오면 그 중 2000 달러를 주겠다”고 하니 중대장은 “알았다”고 했습니다. 중대장이 그 날 저녁 병사 20명을 데리고 그 사업소 사장 집으로 가 그 사장의 차와 재산을 다 몰수했습니다. 그 후 사장이 겁을 먹고 저희에게 빌려간 돈 2만 달러를 갚고 저희는 몰수한 차와 재산을 돌려줬습니다. 북한 군대도 돈만 주면 해결사 역할도 하고 뭐든 합니다.
또 일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자신들이 아는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 “우리 차 들어가니 잘 협조 해 달라”며 에스코트까지 부탁했습니다. 덕분에 아무런 검문검색도 받지 않고 무사히 일을 끝냈습니다. 북한 군인들도 10년 동안 청춘을 바쳐 남는 게 없는 것을 알고 제대 후 어떻게 살지에 대한 생각으로 의식이 변화했습니다. 북한 군인들은 ‘지금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것인가?’에 몰두돼 있습니다. 제가 私席(사석)에서 군 간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군 간부들이 “형님, 돈만 주면 김정일 모가지도 따다 줄 수 있어요”라고 합니다.
그것을 다시 기술이 좋은 함흥 약학대학의 실험공장으로 옮겨 3차 가공을 통해 순도가 높은 마약을 만듭니다. 제가 잘 아는 친구들과 교수들이 거기서 마약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마약을 외화벌이사업 하는 제게 맡겨 중국에다 팔아달라고 부탁도 했습니다. 그래서 갈 때마다 10kg, 20kg을 가방에 담아오기도 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마약 통제(단속)를 심하게 하면 자신들이 제조 기술을 알기에 집에서 기구를 마련해 마약을 제조합니다.
북한의 중견급 간부들이 모이면 “우리(북한)가 이렇게 가면 침몰하는 타이타닉호가 된다”라고 합니다. 북한에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돌아서 북한 주민들이 ‘타이타닉’이 뭔지를 압니다. 북한을 걱정하는 북한 사람(간부, 주민)들은 김정일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북한에선 북한이 그렇게 잘 못됐다는 것을 간부들조차 알고 있으면 왜 개혁·개방을 못하고 폭동을 일으키지 못하느냐?”라고 합니다. 여기(남한)는 反旗(반기)를 들면 그렇게 써줄 언론이라도 있지만 그곳(북한)은 한 마디라도 하면 바로 잡혀서 수용소로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갑니다. 하루아침에 혁명이 일어나 북한 정권이 뒤집어지면 몰라도 남한식의 민주화 운동이나 폭동은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방송(인민의 소리 방송)이 북한 주민들의 마음에 가장 와 닿습니다. 제가 KBS의 사회개혁방송도 들어보고, 일본의 NHK 한국말 방송, 연변 조선어 방송 등 많은 것들을 들어봤지만, 제일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인민의 소리 방송’이었습니다.
그 인민의 소리 방송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탈북자 출신들도 많이 출연하고 남한의 유명한 분들이 많이 나와 북한체제의 불합리성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고 어떤 것이 민주주의인가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듣고 저희의 생각이 바뀌게 됐습니다. 저희 친구들끼리 모여 結社(결사)도 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라디오를 들으며 “남한이 민주화를 했으니 민주화 투사들에게 가서 노하우를 전수받아 우리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친구 세 명과 탈북을 했습니다. 당시 노무현 정권 시절이었는데, 중국으로 넘어가 한국 영사관에 가니 영사가 “무슨 꿈같은 이야기를 하고 게시냐”고 했습니다. 그때 “아 이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실망을 하고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공학도였기에 이곳(남한)에서 다른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북한에서 라디오를 들어 사상이 변했고,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제가 여기서 3년간 자유북한방송 일을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외부세계의 정보를 북한으로 들여보내는 것’과 ‘북한 내 親韓(친한)세력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한때 韓流(한류) 열풍이라고 해 마치 일부사람들이 지난 10년간의 남북교류의 업적으로 돌리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북교류 전부터 북한 주민들이 중국을 통해서 남한 영화나 미국 영화, 홍콩 영화를 봤습니다. 그것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꾸준히 더 들어갔을 뿐이지, 그 이전부터 韓流(한류)는 존재했습니다. 절대로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남북교류를 통한 화해협력을 통해 한류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과거 남한의 국정원이 했던 對北(대북)공작을 다시 시작한다면 분명히 북한을 내부에서 와해시킬 수 있는 조직들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고, 북한의 변화가 하루 빨리 다가올 수 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러한 것들을 안 하기 때문에 북한에 있는 주민들이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도 同調(동조)세력이 없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못 하고 있습니다. 간부들도 일어나고 싶은데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은 열악합니다. 감옥에서 獄死(옥사)해도 시체를 돌려주지 않습니다. 당과 국가에 죄를 저질렀는데, 죄를 씻지 못하고 죽었다며 더 큰 죄로 봅니다. 북한에서 제 친구가 공개 총살당했는데, 시체를 찾지 못하였다가 경찰에게 물어본 후 시체를 찾아 산에 다시 묻어줬습니다.
여기(남한)에는 막연한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평양에 2박3일 관광코스로 다녀와 북한이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하는 자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트럭에 실어 북한에 보내 체험을 하게 해야 합니다. 제가 남한에 와서 좌절을 느꼈을 때가 지난 해 광우병 운운하면서 촛불시위 할 때였습니다.
사실 두려운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5만 명 정도가 모여 깃발을 들고 서 있어 위압감을 느꼈습니다. 저희가 집회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며 야유를 퍼붓고 우리를 향해 ‘개××’, ‘배신자 ××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항상 하는 이야기지만 그런 사람들은 트럭에 실어 북한에 다 보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몇 달만 옥수수죽의 통강냉이를 먹으면서 김정일의 정치가 얼마나 혹독하고 가혹한지 경험해봐야 남한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인지 알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지만, 1년, 2년 지나 3년 정도 되면 자아 정체성을 찾고 남한과 북한에 대한 비교를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엔 자신의 가족들이 피해를 볼까 봐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목소리를 내고, ‘내 권리는 내가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현재 남한에 탈북자들이 1만7000여 명 정도 왔고, 탈북자 단체도 30여개 됩니다. 저희는 생각하기를 앞으로 10만 명 정도 더 오고, 북한의 고위층들도 탈북하고, 국회의원도 탈북자 중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탈북할 때 지도 한 장을 들고 왔습니다. 베트남을 거쳐 캄보디아를 통해 왔습니다. “탈북할 당시 나에게 정보를 알려주었다면 내가 좀더 편하게 왔을 텐데”라는 생각에 한이 맺혀 지금은 제가 인권단체와 교회를 통해 탈북자들을 직접 데려오는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중개인이 다른 일 때문에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바람에 이 계획이 무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북한군대를 탈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된 무장병력이 탈북하면 북한정권에 큰 타격이 되고, 남한 내 좌파들의 기도 꺾일 것입니다. 더 많은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모습이 북한에 대하여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좋다는 것을 자연히 선전하는 것입니다.
저희(탈북자, 북한주민)들은 라디오(對北(대북)방송)를 들으면서도 “저기(남한)에 간 사람들(탈북자)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에 대해 항상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최근 탈북하신 어떤 분은 북한에서 라디오로 극동방송을 5년 동안 매일 들었다고 합니다. 이 분이 원래 기독교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고 상관도 없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극동방송을 왜 들었냐면, 극동방송 맨 끝에 10분간 탈북자 코너가 있는데, 이 10분짜리 코너를 듣기 위해 극동방송 2시간을 다 들었답니다. 이 분은 방송을 들었고 결국 기독교인이 돼 탈북을 했고 지금 남한에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북한 정권에 대항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역이 탈북하는 것입니다. 탈북자를 북한에서 남한으로 데려오는데 500만 원이 듭니다. 함흥에서 출발해 중국에서 서류를 고치고 비행기를 타 남한에 도착하니 보름이 걸렸습니다. 500만 원을 주니 국경경비대 중대장, 정치지도원, 소대장들이 모두 고무바지를 입고 이 탈북자를 고무보트에 이고 중국까지 데려다 줬습니다. 중국에 넘어오니 중국 안전부 차가 대기를 하고 있었고, 이 차를 차고 대련으로 와 남한으로 들어왔습니다. 돈만 주면 북한은 군인이든 당·간부든 누구든지 다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해야 합니다. 탈북자 단체들이 이러한 활동을 하고 있으니, 이들을 지원해준다면 새로운 뉴스거리로 북한을 깜짝 놀래 킬 수 있는 것들을 만들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오늘과 같이 세계 10위권의 강국으로 만든 여기 계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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