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前총리·곽영욱씨 만남에 정세균 대표 동석
丁대표측 "문제될 발언 없어" 검찰 "수사 확대 단서없다"…
곽씨, 석탄공사 사장 탈락후 한전 계열사 사장에 선임
곽영욱(구속) 전 대한통운 사장이 2006년 12월20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인사청탁을 하는 자리에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강동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 함께 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건 파문이 커지고 있다.정 대표가 당시 공기업 사장 인사 추천권을 가진 산업자원부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공기업 사장 자리를 노리던 곽 전 사장의 로비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현재로선 수사를 확대할 단서가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총리 공관에 왜 모였나
검찰은 우선 2006년 12월 20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오찬 형식으로 이뤄진 '4자 모임'의 성격을 주시하고 있다. 당시 곽 전 사장은 2005년 6월 대한통운 사장에서 물러난 뒤 1년여간 별다른 직장이 없던 상태였다. 곽 전 사장은 여성단체 후원을 계기로 1998년부터 알고 지내온 한 전 총리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놀고 있어 답답하니 공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검찰은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의 부탁을 받고 이 모임을 주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전 장관은 곽 전 사장의 고교 2년 선배이고, 정 대표는 당시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인사청탁을 했던 대한석탄공사 사장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산업자원부 장관이었다. 공기업 사장 자리는 주무 장관이 일부 추천권을 행사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때의 상황이다. 당시는 노무현 정부가 1년여 임기를 남기고 있을 때여서 공기업 사장·감사 자리를 놓고 막판 자리다툼이 치열할 때였다. 민주당 관계자도 "그때는 정권 말기여서 공기업 사장 자리에 누구를 보내느냐를 놓고 정권 실세들 간에 경쟁이 치열했다"고 했다.
실제로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부탁한 석탄공사 사장 자리는 정선 군수 출신의 김원창씨에게 돌아갔는데, 이를 놓고 당시 여권 실세이던 L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렇다고 곽 전 사장의 로비 자체가 불발된 것은 아니라고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당시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를 만난 8일 뒤인 2006년 12월 28일 열린 석탄공사 사장추천위원회에서 6배수 후보군에 올랐으며, 이듬해 1월 3배수 후보에 들었다. 또 곽 전 사장이 석탄공사 사장 경쟁에선 탈락했지만 곧바로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사장으로 갔기 때문에 곽 전 사장은 결국 '성공한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곽 전 사장 인사 로비 더 있나
검찰은 한 전 총리가 총리 공관에서 "곽 전 사장을 도와주자"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당시 모임의 성격상 정 대표가 곽 전 사장 인사 로비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최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이원걸 한국전력 전 사장도 정 대표가 장관 시절 함께 일했던 산자부 2차관 출신이다. 한전은 곽 전 사장이 2007년 사장으로 취임한 한국남동발전의 모(母)회사다.
그러나 검찰은 현재 한 전 총리 외에 '제3의 인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정 대표가 총리공관 모임 이후 9일 뒤에 산자부 장관직을 그만두고 열린우리당으로 복귀했고, 곽 전 사장으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은 단서나 인사에 관여한 구체적 정황을 포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대표측도 "당시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영향력이 없었다"며 관련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도 "그날 오찬에선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의 발언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곽 전 사장이 당시 공기업 사장이 되기 위해 자신과 끈이 닿는 정치인이나 같은 고교 출신 인사들에게 적극적으로 로비한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인물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곽 전 사장은 공기업 사장이 되도록 도와달라는 명목으로 자신과 같은 고교 출신인 아주경제신문 대표 곽영길씨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가 포착된 상태다.
새로운 로비 혐의가 포착되지 않더라도 당시 총리 공관에서의 모임은 금품 수수 혐의를 부인하는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한 증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공기업 사장 로비를 하는 기업인을 주무부처 장관 등이 배석한 총리 공관 오찬 자리에 부른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적어도 정 대표는 검찰이 한 전 총리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한 뒤에는 법정 증인으로 나와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법조계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