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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았던 시진핑 방한 막전막후

화이트보스 2009. 12. 27. 10:53

말 많았던 시진핑 방한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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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2.22 15:18 / 수정 : 2009.12.27 09:54

류우익 껄끄러운 데뷔전
방한 한 달 안남기고 “일정 당기자” ‘MB식 불도저 외교’에 중국 발끈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8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사람(류우익)을 바꾸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지난 12월 16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이뤄진 시진핑(習近平·56) 중국 국가부주석의 방한을 둘러싸고 한·중 양국 외교가에서 뒷말이 끊이질 않고 있다. 무엇보다 베이징 외교가는 한국 정부에 대해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다. 베이징 외교가와 중화권 언론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외교’를 뜻하는 ‘투이투지(推土機·불도저) 외교’라는 단어가 새로 등장했다. 중화권 소식에 정통한 싱가포르 연합조보(聯合早報)는 지난 12월 10일 ‘한국의 일방적인 (시진핑 부주석) 방한 일정 조정 선포가 중국의 불만을 유발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겨냥해 한국 정부의 외교적 결례를 지적했다. 이 기사는 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명박 정부가 한·중 양국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한다며 최근 주중 한국대사(류우익)를 교체하는 등 적지 않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하지만 이런 외교 예절상의 착오를 범한다면 사람(人)과 말(馬)을 다시 바꾸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라며 한국 정부를 질타했다. 심지어 이 신문은 지난 9월 이 대통령 방미 당시 한·미 외교당국 간에 불거졌던 북핵 관련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타결 방안)’ 논란 때 “아무개(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모른다고 하면 그게 어때서?”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도 상기시키며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외교에서 ‘불도저식 행태’를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꼬집기까지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부주석(왼쪽)과 악수를 나누는 류우익 신임 주중대사. / photo 연합뉴스
16일이냐, 17일이냐 막후 협상

싱가포르 연합조보의 지적처럼 한·중 외교당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상당한 줄다리기를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양국 외교당국이 시 부주석의 방한 일자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지난 12월 16일 밤 9시30분쯤 한국을 찾은 시 부주석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16일이 아닌 17일 방한키로 예정돼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17일 조찬 회동도 당초 일정에는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정상회의 참석차 17일 오전 출국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17일 오후에나 청와대에 도착할 것으로 보이는 시 부주석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대통령의 기후변화 정상회의 참석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17일 기후변화 정상회의 기조연설이 예정돼 있어 일정 조정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12년 퇴임 예정인 후진타오 주석의 뒤를 이을 것으로 유력시되는 ‘차기 권력’ 시진핑 부주석과의 회동 기회를 무산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진핑 부주석은 한국을 찾기 전 방문한 일본에서는 아키히토(明仁) 일왕,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 등 일본 측 최고 지도층을 모두 만나기로 돼 있었다. 시 부주석이 한국에서만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릴 경우 “시 부주석과 중국의 불만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염려가 괜한 걱정이 아닌 상황이었다. 결국 청와대에서는 고민 끝에 이명박 대통령과 시 부주석과의 면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시진핑 부주석의 예정된 방한 일정을 하루 정도 앞당겨 줄 것”을 중국 측에 긴급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청와대가 갑작스럽게 일정 변경을 밀어붙이면서 문제가 커졌다. 특히 한·중 외교당국 간 협의가 끝나지도 않은 시점인 12월 6일 청와대 측이 이동관 홍보수석 이름으로 “시진핑 부주석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일정조율을 거쳐 (17일이 아닌)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방한키로 했다”며 언론에 발표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중국 측에서는 시진핑 부주석의 최종 일정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국 외교당국에서는 청와대의 이 같은 언론발표에 ‘발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12월 6일 청와대가 언론을 통해 시 부주석의 방한 일정을 공표한 후에도 주한 중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아직 중국 외교부에서 공표하지 않았다”며 “(시 부주석의) 일정이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 정부의 이같은 ‘불편한’ 입장이 알려지자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중화권 언론에서 한·중 양국 정부의 ‘미묘한 입장 차이’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언론통제를 받는 중국 본토 언론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지만 중화권 언론은 구미가 당기는 취재거리였다. 예컨대 중화권 소식에 정통한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청와대의 시진핑 부주석 방한 일정 발표 후에 실은 기사에서 “아직 (시진핑 부주석의) 방한 일정을 협의 중에 있다”는 한국 외교부 관리의 말을 끌어낸 후 “이는 한국 청와대 측의 일방적인 ‘선포’에 불과하며 외교상 ‘착오’라고 말할 수 있다”며 청와대의 일방적인 일정 발표를 비판했다. 특히 이 신문은 “한국 측 보도는 마치 시진핑 부주석이 일정조정에 즐겁게 응한 것처럼 돼 있는데 우리는 이 같은 보도에 불만을 느낀다”는 중국 측 관계자의 말을 싣기도 했다. 청와대가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수’를 쳐 일정을 기정사실화시키는 ‘언론 플레이’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뉘앙스였다.

‘2박3일’ ‘3박4일’ 막판 혼선도

이명박 대통령과 류우익 주중대사(위) / photo 조선일보 DB
실제 대다수 전문가들도 중국 측의 불만과 관련 “한국 측의 일정조정이 국제 외교상의 보편적 관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대개 국가간 최고위급 회담은 최소 수개월, 길게는 수년 전부터 양국 간의 긴밀한 조율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 부주석의 이번 방한은 12월 14일부터 22일까지 △일본 △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 4개국을 9일간 순방하는 일정의 일부분이었다. 한국에서의 체류 일정을 갑자기 변경할 경우 다른 순방국과의 외교·의전 일정도 연쇄적으로 조정해야만 하기 때문에 중국으로선 갑작스런 일정 변경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중화권 언론들이 “청와대의 일방적인 발표로 시진핑 부주석의 출국일정이 뒤죽박죽됐다”는 격한 표현까지 쏟아낸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작용했다. 결국 한·중 양국은 막후 줄다리기 끝에 “시진핑 부주석의 방한 일정을 17일서 16일로 하루 앞당기되 16일 밤 늦게 도착한다”는 선에서 결론을 내렸다.

시진핑 부주석의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을 둘러싼 중국 측의 격한 반응에 외교통상부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 중국과와의전을 책임진 의전총괄과는 12월 6일 청와대의 방한 일정 발표 후에도 시진핑 방한 일정에 대해 ‘보안상 문제’를 거론하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외교통상부는 결국 청와대 발표 4일 뒤인 12월 10일 오후 4시쯤에서야 대변인 명의로 “시진핑 부주석이 16일(수)~19일(토) 3박4일간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이 역시 같은날 중국 외교부 장위(姜瑜) 대변인이 기자 브리핑을 통해 공식 발표한 ‘16일(수)~18일(금) 2박3일 일정’과는 하루 차이가 나는 것이어서 관계자들을 의아하게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중 외교당국간 제대로 된 일정협의가 있기는 한 것인가”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모 신문은 한 지면에서 시 부주석의 방한 일정을 ‘2박3일’ ‘3박4일’로 섞어쓰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국빈급 대우’ 효과는?

일정 조정을 밀어붙인 청와대도 중국 외교가와 현지 언론의 예상치 못한 반발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측은 당초 “2012년 퇴임예정인 후진타오 주석의 뒤를 이을 것으로 유력시되는 시진핑 부주석의 방한 기간 중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스킨십 외교를 통해 이명박 정부 초기 불거졌던 ‘미국에 비해 중국을 경시한다’는 중국 측의 염려를 불식시킨다”는 구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청와대는 시진핑 부주석의 방한 기간 중 아직 베이징 대사관에 부임도 하기 전인 대통령의 최측근 류우익 신임 주중대사가 시 부주석을 ‘영예수행(밀착수행)’하도록 조치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준비해 왔다. 실제 류우익 대사는 지난 12월 16일 밤 시진핑 부주석이 서울공항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해 서울-경주-부산으로 이어지는 3박4일 일정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하지만 일정조율 과정에서 마찰이 발생하면서 이런 극진한 대접이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가져올지 의문스러운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이번 해프닝으로 인해 오는 12월 28일 중국 베이징 현지 공관에 부임할 예정인 류우익(柳佑益·59) 신임 주중대사의 부담이 커졌다는 말도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복심(腹心)’으로 불려온 류우익 주중대사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부임한 역대 8명의 주중대사 가운데 현직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류우익 대사는 지난 12월 10일 장따밍(姜大明) 산둥(山東)성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을 때 배석하긴 했지만 특별한 주목을 끌진 못했다. 사실상 이번 ‘밀착수행’이 대학교수 출신 대사의 첫 번째 외교무대 데뷔전이었다. 하지만 류 대사 역시 방한 일정조율 문제로 데뷔 무대의 스타일을 구겨버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류우익 대사가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 외교’에 옆구리를 들이받혔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방한 일정 일본까지 ‘불똥’

한국 때문에 일정 줄어든 일본 “불쾌하다”

시진핑 부주석의 방한 일정을 하루 앞당겨달라는 청와대의 갑작스런 요청은 시 부주석의 일본 방문 일정 조율에도 문제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부주석의 이번 일본 방문은 자민당 몰락과 민주당 정권교체 후 이뤄진 첫 번째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문이라는 점에서 중국과 일본 모두 큰 기대를 보인 행사였다.

일단 중국 입장에서 시 부주석의 방일은 지난 12월 10일 일본 집권 민주당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67) 간사장의 방중에 대한 일종의 답방 성격도 있어 결코 소홀히 하기 힘들었다. 중국 외교부도 “4개국 가운데 일본에 가장 관심을 두고있다”는 성명을 낼 정도였다. 하지만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시 부주석의 방한 일정을 하루 앞당기기 위해서는 당초 17일까지 예정된 일본 체류기간을 하루 줄이는 대신 한국에서의 일정을 늘려야 했기 때문에 난감해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칫 “한국에 비해 일본을 홀대한다”는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 공군기지 이전문제로 미국과 외교적 마찰을 벌이고 있는 일본 정부도 이번 시 부주석의 방일 일정에 각별한 신경을 써왔다.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내각에 압력을 가해 ‘접견 1개월 전 일정을 잡아야 한다’는 궁내청(宮內廳·일왕가의 사무를 관장하는 부서) 관례를 깨뜨리는 무리수까지 둬가며 시 부주석과 아키히토 일왕의 접견일정까지 잡아둔 터였다. 때문에 일본 측도 청와대의 일방적인 일정 변경 요청에 상당한 불쾌감을 나타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시진핑 부주석의 일본 체류 일정은 3박4일에서 2박3일로 줄고, 한국 체류 일정은 2박3일에서 3박4일로 늘었지만 중국은 시진핑 부주석이 일본에서 가능한 늦게 출발해 한국에서 아침부터 강행군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해 당초 예정됐던 양국에서의 일정은 모두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