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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피아골 vs 고등어 회.. :p , 피아골산장 지리산 Korea Nov 3 2007

화이트보스 2009. 12. 27. 14:28

지리산 피아골 vs 고등어 회.. :p , 피아골산장 지리산 Korea Nov 3 2007
신영건  호수.피터 님의 블로그 더보기
입력 : 2009.12.27 02:24

결국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앞으로도 결코 다시 반복될 것 같지 않은 음식기행 이었다..

 

한국의 아주 오래된 절의 분위기를 느끼려 떠난 초겨울의 지리산.

쌍계사에의 늦단풍을 감상하고 마침 노고단으로 향하는 구례의 시내버스가 올라오고 있어

노고단까지만 보고 서울로 올라가자.. 며 시작된 여정이었다.

 

그런데.. 승객이 몇 사람 없었던 초 저녁의 버스 안에는 엄청난 배낭을 짊어 진 전문 산악인인듯한 이가 있었으니..

난 그의 산악인 차림새가 좋았고, 그는 내 카메라가 마음에 들었던 지라..

이리저리 말이 오갔고.. 시간이 있으시면 노고단 일몰을 보고 가시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서울로 급히 올라갈 일이 없었고.. 노을감상과 산장에서의 하룻밤이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러마고 했는데..

 

결국 전혀 예상치 않았던 2박3일의 지리산에서의 특별한 맛의 기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많은 노을을 봐 왔지만 천여 미터나 되는 고지에서의 석양은 너무나 아름답고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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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을 해 놓지 않았던 노고단 산장에 대기표를 받아 기다리면서

난 그 산악인 친구와 이제 방금 화엄사 루트를 통해 걸어 올라온 또 다른 전문 산악인과 함께

그들이 싸짊어지고 온 음식으로 식사를 하게 된다.

 

그들은 별 것 아니라는 듯 하나 하나 준비해논 것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는데..

낙지 볶음, 등심 한우 소고기, 달걀, 2 리터 막소주 그리고 온갖 양념 재료..

등반시 간단한 먹거리와는 전혀 거리가 먼, 집에서도 준비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워낙 힘든 산행을 주말 내내 해야 되는 전문인들이라 역시 준비해온 음식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 같으면 그저 그래뉼라 바 한두개와 쵸코릿, 미숫가루.. 정도의 전투식량을 생각했을 텐데..

어쨓거나.. 와우!! 어떻게 이런 걸 다 짊어지고 왔냐고.. 찬사를 쏟아 붓고는 신나게 먹고 마셨는데..

높은 산의 공기가 워낙 좋아서인지 막소주를 마셔대도 취기가 별로 오르지 않았다.

 

http://petersbonappetit.blogspot.com/2009/02/what-fabulous-dinning-on-top-of.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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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이 어찌나 좋은지.. 마치 중국집 주방의 가마솥 기름을 끓일 기세였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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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내리는 겨울 밤 지리산 산장에서 맛보는 낙지 볶음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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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밤 늦도록 지리산 이야기며, 인생 이야기 그리고 그저 재미난 이야기들에 껄껄거리며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먼저 만난 이는 사업을 하다 좀 어려웠을때 부터 지리산을 찾았었고, 내일 밤 피아골 대피소에서 왕년의 산장지기들이 모이는 날이라며 거길 간다 했다. 그 지루하고 힘든 화엄사 길을 방금 올라온 이는 금호에 근무하는 직장인으로 주말엔 거의 지리산에서 살다시피 하는 멋진 산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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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용 등심 한우에 굵은 소금까지.. 지리산 노고단 산장에서의 스테이크라니!

사실 산 꼭대기에서 이럼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좀 웃기고 기괴(ridiculous & wierd)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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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짱한 정신으로 다음 날 아침 일어난 우리는 광주에서 올라온 산 사나이와는 작별을 고하고..

산장지기들의 모임이 열린다는 피아골 산장으로 임걸령을 지나가게 되는데..

지리산 능선을 호젓하게 걷는 것 자체가 그리 신선하고 신날 수 없었다.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81850&menuId=-1&listType=3&from=&to=&curPage=2&logId=436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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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날이 어둑해지기 직전 도착한 피아골 대피소에서는

산장을 지키고 있던 젊은 산장지기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깊은 산골의 대피소에 어울리는 라면으로 환영 식사를 나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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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캄캄하게 저물고, 분주한 전화소리가 오가더니 

아무개 양반이 여수에서 횟감을 짊어지고 오고있다는 전갈이 왔고..

젊은 산장지기는 긴장한 표정으로 마중을 나갔다.

보통 이들이 나가는 마중이란.. 달도 안뜬 야밤에 수킬로의 산길을 의미한다.

그리고 돌아 올때엔 수십 킬로의 짐을 짊어지고 와야 하는것..

엄두를 내기 힘든 산사람들의 생활 패턴이었다.

 

젊은 산장지기의 엄호하에 도착한 이는 소위 여수형님이라 부르는 이였다.

이곳에서 산장지기고 했고 여수에서 오랜동안 횟집을 하고 있다 했다.

그리고 산장지기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면 이렇게 횟감을 통채로 짊어지고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고등어 두마리 였다.

 

한참 영하로 떨어진 피아골 계곡을 올라오면서 고등어는 적당히 차가워 져 있었고

그의 익숙한 회 다듬는 솜씨로 곧 회가 준비되었고..

그 사이, 우리 젊은 산장지기와 그 친구는 제대로된 양념장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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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들은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어느 횟집 주방이 아니었다.

바로 지리산 계곡 중에서도 깊고 깊은 곳 중의 하나인 피아골 계곡의 끝 자락

그리고 임걸령을 오르는 가파른 길의 바로 시작지점 에 위치한 

피아골 대피소 겸 산장에서의 광경인 것이다.

 

이 광경에 속으론 웃음이 나오면서도, 다들 어찌나 진지하던지..

큰형님이 직접 메고 오신 싱싱한 고등어가 회로 쳐진다는 사실이 아마도 신성하기까지 했을 지 모른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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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의 수행이라도 하듯.. 낙엽이 떨어지는 듯한 슥삭거림의 칼질 소리만 묘한 여운을 남기면서..

마치 무슨 비밀스런 종교 회합같은 분위기의 정적속에서 치루어진 횟상..

드디어 준비가 끝나고.. 다들 선채로 한점, 한점.. 그 오묘한 맛을 오물거리며 즐기느데..

 

역시.. 이맛이야!!

죽이네..

맛있다!!

 

지리산 깊은 골의 정적을 깨며 지르는 탄성.. 그리고 벌겋게 달아오르는 막소주 먹은 가슴들..

 

이리하여 도데체 상상해볼 수 없었던 겨울밤 깊은 산골짝에서의 회 잔치가 막을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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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소주에 다들 얼굴이 달아오른 모습들이.. 너무 근엄하기도 하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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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꼭 먹고 말리라는 결연한 의지의 표출인 것 같기도 하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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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 왁자지껄한 소리에 보니..

또 다른 일행들이 대구에서 당도했는데.. 이들이 가져온 음식은 오리!! 였다..

 

맙소사.. 이젠 오리까지..

대구에서 사업을 하며 이곳 산장지기들과 꽤 친분이 있는듯한 이가 직접 요리를 했는데..

지금은 무슨 맛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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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산을 타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술이 어찌나 센지..

그 막소주를 마구 마셔도 별로 취하는 것 같지도 않고..

대구의 오리 팀은 실컷 마시고 나서는 그 추운 임걸령 능선에서 비박을 하겠다며

새벽녁에 산장을 나서기까지 했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 서리가 잔뜩 낀 침낭을 들고선.. 잘 잤다며.. 터덜 터덜 내려온 것이다.. 허걱..

우리의 결론은 일정 해발 고도 이상이 되면 몸에 아주 좋은 이온의 농도가 높아 어쩌구 저쩌구.. ㅎㅎ

 

해서..

 

산장지기였던 사람들의 모임에 예상치 않게 내가 끼어든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그 2박 3일간의 전혀 예상을 허락하지 않았던 음식들의 퍼레이드가 끝나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키워드만 다시 정리하면..

.. 낙지볶음-한우등심-고등어회-오리로스구이... ㅋㅋㅋ

 

오늘 쯤 운 좋은 누군가는 아마 재작년의 나처럼 2009년 년말 산장지기 모임 쯤에서

예상치 않은 음식들을 앞에 놓고 표정관리하고 있을 듯..

 

지리산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