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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제일봉 1,010m

화이트보스 2010. 1. 8. 15:01

남산제일봉 1,010m

사방팔방 뻥 뚫린 기암 전시장
가야산국립공원이 숨겨둔 또 다른 보물산
합천은 몰라도 누구나 다 아는 해인사, 그 맞은편에 위치한 남산제일봉(南山第一峯)은 가야산국립공원에 속한 산이다. 국립공원 내에는 가야산을 비롯해 두리봉, 깃대봉, 별유산, 단지봉, 매화산, 오봉산, 가산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산봉우리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남산제일봉은 가야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산세를 가졌다. 특히 봄의 진달래와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 가을의 단풍에 겨울이면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설경이 기가 막혀 계절에 관계없이 늘 매력적이다.

산골짜기를 헤집고 흐르는 홍류동 계곡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가야산이 우뚝 솟았고, 그 남쪽에 솟은 남산제일봉을 가리켜 일부에서는 가야남산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남산제일봉을 매화산(954.1m)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매화산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1.5km에 위치한 산을 일컫는 게 정확하다. 불가에서는 천불산(千佛山)이라 이른다. ‘천 개의 불상이 산을 뒤덮고 있는 형상과 같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천 개의 불상과 같은 기암괴석의 바위군이 산 곳곳에 널브러져 있어 흡사 수석의 야외 전시장으로 착각할 정도다.

▲ (위) 단지봉을 거쳐 고운암 또는 의상봉으로 잇는 능선 갈림길에서 바라보는 남산제일봉의 모습은 흡사 금관을 닮았다고 하여 금관봉이라고도 부른다. (아래) <삼국사기> ‘열전’에 최치원이 즐겨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청량사의 대웅전과 삼층석탑, 석등.

이 산에는 해마다 오월 단옷날이면 해인사 스님들이 산정에 소금단지를 묻는다. 풍수지리적으로 해인사 남쪽에 있는 남산제일봉이 화산(火山)이기 때문에, 정면대립한 해인사로 그 화기(火氣)가 날아들어 불이 자주 났다는 것. 남산제일봉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소금을 담은 다섯 개의 항아리를 오방(五方)에 걸쳐 파묻고 있으며, 그 이후로 해인사에는 큰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火)을 묻는다(埋)’는 뜻의 매화산(埋火山)이란 이름도 여기서 연유한다는 것이다.

산자락에는 신라 말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고운 최치원 선생이 남긴 자취가 곳곳에 전설로 남아 있다. 해인사가 자리한 치인리마을도 고운의 이름인 치원에서 유래했다. 치인리 서편에 치인골이라는 골짜기가 있고, 그 끝자락에 선생이 말년에 초막을 지어 가족과 함께 기거했다고 전해지는 고운암(孤雲庵)이 있다. 농산정(籠山亭)은 후대 사람들이 고운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선생이 은거했다는 홍류동천 계류를 끼고 세운 정자다.

그동안 청량사에서 정상까지는 출입을 통제해왔다. 먼저 해인사 측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2007년 4월부터 출입을 막아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사무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간의 이유야 어찌 되었든 2년 6개월 만에 다시 개방된 남산제일봉을 찾았다. 산행은 구원리 버스정류장에서 청량사~통새미골~주능선~정상~돼지골~해인사관광호텔 주차장~치인리 집단시설지구를 지나 해인사를 둘러보는 것이다.

산행 들머리인 구원리 버스정류장에서 청량사까지는 약 2km로 40분 이상 걸어야 한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15분이면 이정표(남산제일봉 3.5km)와 안내판이 서 있는 갈림길. 길은 다시 좁은 콘크리트 포장로다. 경사가 가파른 도로를 따라 청량동 마을을 벗어나 저수지를 만나고,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징수하는 매표소.

푸른 노송과 낙엽을 털어낸 아름드리 수목이 숲을 이룬 산길로 올라 ‘천불산 청량사’라는 표석을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삼국사기> ‘열전’에 최치원이 즐겨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이 절집은 고풍스런 멋은 없지만 깔끔하고 조용하다. 설영루를 지나 대웅전으로 오른다.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65호)이 안치돼 있는 대웅전 앞마당에는 삼층석탑(보물 제266호)과 석등(보물 제253호)이 원래의 모습대로 남아 있다. 병풍을 두른 듯한 남산제일봉 자락의 기암절벽을 등지고 앉은 대웅전의 석가여래좌상, 석탑, 석등은 남향으로 일직선을 이룬다. 전망이 툭 트인 마당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압권이다.

▲ 급경사의 산비탈에 돌계단과 통나무로 된 주능선까지의 등산로.
절집에서 되돌아 나오면 절 앞 공터의 청량사 안내판에 탐방로 입구라 적혀 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숲속으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등산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울창한 숲길이다. 완만하던 산길은 곧이어 급경사의 산비탈에 돌계단과 통나무로 된 계단길의 연속. 청량사를 떠나 30분이 지날 무렵 올라선 주능선에는 이정표(인초정 0.3km, 남산제일봉 0.5km)가 반갑게 맞이한다. 인초정은 본래 민초정(民草井)으로 한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요, 왼팔로 불렸던 김동영(1936~1991년) 전 국회의원의 아호를 딴 샘터로 알려져 있다. 민초는 하늘로 가고 민초정의 흔적도 찾을 수 없고, 그 이름마저 변질돼 버렸으니 세월이 무상하기만 할 뿐이다.

주능선에서 왼편 90도 각도로 꺾어 능선길로 오른다. 곧장 만나는 전망데크에 서면 맞은편 눈앞에 펼쳐지는 가야산 일대를 거리낌 없이 감상할 수 있다. 가야산에 들면 가야산의 전체를 볼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가야산은, 그 풍치는 물론 속살마저도 숨김없이 마음껏 들여다볼 수 있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으며 주변 풍광을 즐기며 여유 있게 산행하더라도 1시간 반이면 족하다.

잠시 소나무 숲길을 지나면 이제부터 이 산이 가진 산세와 기암괴석의 바위군이 서서히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각기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변하는 바위들은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제각각의 자리에서 흩어짐이 없는 바위는 인물상, 부부상, 동물상, 탑상 등 그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이런 황홀경에 취하다 보면 자칫 발걸음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등로도 매우 까다롭다. 때로는 암릉을 타기도 하고, 암릉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돌기도 하고, 바위틈으로 계속되는 철계단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잔설이 녹아 얼어붙는 겨울철 산행은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상봉을 바라보며 암릉을 지나 경사가 심한 철계단을 오른다. 중간중간 급경사의 목재계단과 돌계단도 통과하게 된다. 상봉까지 바위로 이어지는 능선의 굴곡은 발레리나의 몸짓처럼 심오하고 리드미컬하다. 상봉이 빤히 보이는 마지막 봉우리에 서면 주변의 조망 반경이 더욱 넓어진다. 오른편으로 성주 고령의 낮은 산들과 인가들, 멀리 비슬산군과 대구광역시 일부가 보이기도 한다. 왼편으로 잠시 내려서서 거대한 바위 옆을 돌면 상봉으로 오르는 철계단이 시작된다. 가파른 계단길로 쉬엄쉬엄 올라서면 남산제일봉의 정수리.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치인주차장 3.7km, 청량사 1.9km)가 대신하지만 단번에 정상임을 알 수 있다. 마천루처럼 솟은 암봉 위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기 때문이다.

▲ (위)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 앞에서 바라보이는 남산제일봉은 해인사의 화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소금단지를 묻는 풍습이 있다. (아래) 주능선 전망 데크에 서면 가야산의 풍치는 물론 속살마저도 숨김이 없어 마음껏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산정은 그야말로 사방팔방을 훤히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다. 발아래 홍류동 계곡은 물론이고 해인사 뒤편의 가야산에서 서북 방향으로 뻗는 능선상의 두리봉·목통령·좌일곡령, 그 뒤로 덕유산·남덕유산·금원산·기백산·황석산·거망산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 그 앞쪽 왼편으로 단지봉·남산깃대봉·작은 가야산·의상봉·장군봉·비계산이 남쪽으로 이어지고, 멀리 88고속도로 합천터널 너머로 상봉에 철탑을 이고 있는 오도산과 두무산·숙성산 등 합천·거창·함양의 산을 비롯해 대구권의 산도 볼 수 있어 좋다. 이렇게 시야를 방해하는 그 어떤 장애물 하나 없이 넓게 볼 수 있는 내륙의 산은 드문 편이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반대편 철계단. 철계단을 내려서면 산길은 90도 꺾어져 오른편 산사면으로 접어들어 목재계단길이다. 산길이 꺾어지는 맞은편 능선은 단지봉을 거쳐 고운암 또는 의상봉으로 잇는 종주길(아쉽게도 현재는 비법정 탐방로)이다. 이 갈림길에서 바라보는  남산제일봉의 모습이 흡사 금관을 닮았다고 하여 금관봉이라고도 불린다는 것. 계속되는 계단길은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다. 특히 이 산은 인위적으로 설치한 계단길이 많아 옥에 티 같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계단길이 끝나면 곧이어 이정표(치인주차장 2.4km, 정상 0.7km)가 서 있는 오봉산 안부에 이른다. 다시 왼편 계곡으로 부드럽게 연결되는 산길은 오르던 능선길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정상까지의 오름길이 사위가 조망되는 날카로운 바위와 벼랑으로 이뤄진 골산이라면, 하산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고즈넉한 숲길로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정상에서 내려서며 계곡을 두 차례 건너 40분 정도면 치밭골과 만나는 합수점이다. 이제 산길은 아름드리 수목 사이로 나 있는 널찍하고 편안한 길이다. 곧장 내려서면 해인관광호텔 앞에 닿고, 버스정류장까지는 다시 10분이면 충분하다.

애초 산행 계획은 남산제일봉에 올랐다가 단지봉을 거쳐 고운암으로 하산하려고 했으나 단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통제된 비법정 탐방로여서 돼지골로 하산했다. 때문에 산행시간이 단축돼 모처럼 해인사를 꼼꼼하고 넉넉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해인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절이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국보 3점 외에도 많은 불교문화재를 갖고 있다. 특히 사명대사의 은거지였던 홍제암, 성철 종정이 머물렀던 백련암 등이 유명하다. 산내 암자까지 둘러보려면 하루 해도 모자란다. 해인사만 둘러본다고 해도 오가는 시간에 답사까지 1시간 반 이상이 소요된다.

▲ (위) 오를수록 주변 조망의 반경은 넓어져 성주 고령의 낮은 산들과 인가들, 멀리 비슬산군과 대구광역시 일부가 보이기도 한다. (아래) 암릉으로 이뤄진 등로는 잔설이 녹아 얼어붙는 겨울철 산행에 특히 주위를 기울여야 하겠다.

산행길잡이

남산제일봉 산행은 청량사 기점, 치인리 집단시설지구 기점, 농산정 기점, 고운암 기점, 단지봉을 거치는 종주코스 등 다양한 등산로가 있지만 지금은 청량사~정상~치인리 집단시설지구를 잇는 코스 하나만 제외하고는 모두 비법정 탐방로로 통제하고 있다. 이는 해인사 측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소통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웃한 가야산 역시 사정은 비슷한 실정이어서 다양한 코스를 연결하는 산행을 즐겨온 산꾼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구원리 버스정류장~청량사~통새미골~주능선~남산제일봉~돼지골~해인사관광호텔 주차장~치인리 집단시설지구 (4시간 소요)

교통

남산제일봉은 합천군에 소재하고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시 다양한 경유지를 선택할 수 있다. 먼저 기차나 시외버스, 고속버스를 이용해 대구를 거쳐 대구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해인사행을 타는 것이 제일 편리하다. 또 고령이나 합천을 경유하는 방법도 있다. 청량사를 들머리로 할 경우에는 경유지인 대구나 고령, 합천에서 해인사행을 타고 가야면 구원리 청량사 입구에서 하차하면 된다. 해인사에서 인근으로 이동할 때는 택시 이용이 편리하다. 해인사 개인택시(011-804-7262), 해인사 콜택시(011-512-9702)가 있다.

서울→고령 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1일 5회(10:08~16:45) 운행
대구→해인사 서부터미널(ARS 1577-8301)에서 40분 간격(06:40~20:00) 운행   
고령→해인사 고령시외버스터미널(054-954-4455)에서 30~40분 간격(07:15~20:30) 운행
합천→해인사 합천시외버스터미널(055-931-4456)에서 1시간 간격(07:30~18:50) 운행

숙식(지역번호 055)

산행 들머리인 청량사 입구인 청량동마을에서는 민박만 가능하다. 가야면소재지는 숙식이 용이하지만 해인사 입구의 치인리 집단시설지구가 편리하다. 이곳에는 호텔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다양한 먹거리집들이 있어 좋다. 청량사를 산행들머리로 할 경우 가야면소재지나 해인사 집단시설지구 두 곳 모두 이동시 버스 또는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해인사관광호텔(933-2000)은 지하 200m 암반층에서 뽑아 올린 지하수를 사우나와 객실에 공급하기 때문에 산행 후 사우나만 하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외에 해인사 앞 21세기모텔(933-0427), 국일장(931-9000) 등을 비롯해 깔끔한 숙박시설이 많다. 먹거리집으로는 고바우식당(931-7311), 향원식당(932-7575), 부산식당(932-7385) 등에서 된장찌개부터 산채정식까지 다양하다.



/ 글·사진  황계복 전 부산산악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