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역사를 보면 東아시아 외교·안보 틀이 흔들릴 때마다
한반도가 화(禍)를 입었다
최근 미·일·중 힘의 균형에 심상치 않은 변화 시작됐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올해도 여행 스케줄의 맨 앞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올려놓았었다. 작년 2월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한국·일본·중국을 찾은 데 이어 2년 연속 아태 순방을 계획했던 것이다. 유럽부터 찾아가던 역대 국무장관들과 달리 아시아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 클린턴은 "외교의 절반은 존재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중간 기착지인 하와이 도착 직후 터진 아이티 대지진 때문에 호주·뉴질랜드 등 아태 순방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그는 하와이 이스트웨스트(East-West) 센터 연설에서 아시아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미국이 아시아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앞으로 계속 머물기 위해 돌아왔다"고 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도 최근 "미국은 아시아에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상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19세기 후반 이후 아시아를 떠난 적이 없다. 그런데 왜 미국 외교·국방장관이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그 답을 찾으려면 일본 열도 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 섬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 55년 전 오키나와는 비극의 땅이었다. 1945년 4월 1일부터 시작된 83일간의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2000여명, 일본군 11만여명이 전사했고, 15만명가량의 오키나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비극의 섬 오키나와는 그 후 55년간 미·일 동맹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미군은 1972년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줄 때까지 직접 관할했고, 지금도 주일미군 기지의 74%가량이 이 섬에 있다. 최근 미국과 일본이 이전 문제를 놓고 충돌하고 있는 미 해병대 비행장이 위치한 후텐마 기지도 그중 하나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투입되는 신속기동군 역할도 맡고 있어 한반도 안보와도 직결돼 있다.
미군 기지가 있는 곳에선 현지 주민들과의 마찰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미군 비행과 안전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은 10년에 걸친 협상 끝에 2006년 후텐마 기지를 같은 오키나와의 슈워브 기지 부근으로 옮기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집권한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은 이 합의의 전면 재검토를 내걸었고 미군 기지들을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는 방안까지 들고 나왔다.
'설마'했던 워싱턴은 격분했다. 작년 말 워싱턴에선 미·일 동맹의 먼 앞날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릇을 고쳐 놓아야 한다는 강경론이 힘을 얻었다. 백악관 아주국장을 지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하토야마 내각을 한국의 노무현 정권에 비유하면서 "뚜렷한 전략과 대안도 없이 미·일 동맹을 흔드는 것은 일본 안보는 물론 경제에까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지일파들이 "기지 이전 문제 하나 때문에 미·일 동맹을 잃을 순 없다"고 맞섰다. 오바마 대통령이 주창한 '소프트파워'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후텐마보다 미국을 더 자극한 게 하토야마가 제안한 '동아시아 공동체'와 '동아시아 정상회의' 구상이다. 미국을 이런 모임에서 아예 빼 버리는 데 일본이 앞장섰기 때문이다. 클린턴과 게이츠가 "미국은 아시아로 돌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없는 아시아, 아시아 없는 미국'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후텐마에서 터져나온 미·일 동맹의 파열음이 한순간 스쳐가는 바람으로 끝날지, 아니면 55년간 유지돼온 동아시아 외교·안보의 틀 전체를 흔드는 태풍으로 변할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동아시아에서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미·일 동맹이 흔들리는가 하면, 20세기 전반기 내내 전쟁을 치렀던 중국과 일본이 합동 군사 훈련에 합의했다. 동아시아에서 이는 모든 변화의 진앙을 찾아가면 세계 패권까지 넘볼 만큼 성장한 중국이란 존재와 맞닥뜨리게 된다.
과거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틀이 흔들릴 때마다 크고 작은 변란을 겪었다. 중국 왕조가 바뀌거나, 일본이 새 질서를 찾겠다고 나서면 한반도가 제일 앞줄에서 그 격랑에 부딪혀야 했던 것이다. 격변의 시기마다 이 땅의 위정자들은 국제 정세에 눈과 귀를 닫은 채 '우물 안 정치'로 허송하면서 화(禍)를 키웠다. 세종시 논란 등에서 드러난 우리 정치의 수준을 보면 그런 과거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