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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도 못 알아듣는 중국어 안내 '불친절 한국'

화이트보스 2010. 1. 20. 15:48

중국인도 못 알아듣는 중국어 안내 '불친절 한국'

입력 : 2010.01.18 23:17 / 수정 : 2010.01.19 04:00

'中 관광객 1000만 시대' 열겠다는데, 뭘 믿고…
中 관광객들 불만 가득
작년 2조넘게 쓰고 갔는데 관광객 전문 식당엔 中 간자체 메뉴 준비 안돼
시티투어 하려 찾았더니 전부 英·日語 가이드 뿐

"첸팡다오잔스 동국대학입구잔."(이번 역은 동대입구역입니다.)

중국인 유학생 탕잉(唐瑛·26)씨는 얼마 전, 지하철의 중국어 방송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역'이나 '…역입니다' 등은 중국말이었지만, 정작 역 이름인 '동국대학입구'는 한국말이었다. 탕잉씨는 "중국인용 관광안내 책자에 적힌 표기(東��大�U·둥궈다쉐)와는 다르다"며 "아마 관광객이었다면 안내 방송 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관광공사는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중화권 관광객 수를 지난해보다 36만명 증가한 230만명으로 늘리겠다고 했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2020년까지 중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화권 관광객은 194만명으로 전체 관광객(780만명)의 4분의 1, 일본(305만명)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지난해 쓰고 간 돈은 약 23억달러(약 2조5829억원). 그러나 한국을 찾은 이들 관광객은 "한국이 중국 관광객을 배려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중국 상하이(上海) 출신 탕잉(사진 오른쪽)씨가 친구와 함께 지하철 남부터미널역에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중국어 지하철 안내도와 역 안내 표지판을 비교하며 당황해 하고 있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추천 식당에 중국어 메뉴가 없다

중국 관광객들로부터 불만이 큰 것 중의 하나가 식당 문제. 지난달 말 유학생 류샹란(柳香蘭·20)씨와 함께 '2009~2010 한국관광공사 외래관광객 전문식당'으로 지정된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을 찾았다. "손님의 99%가 중국인 관광객"이라는 뷔페 전문 식당에 들어서자 기념품 판매대에 크게 적힌 '賣的便宜不講价(마이더피엔이부장자·깎아주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뷔페를 먹겠다"고 하자, 식당 종업원은 "오늘 단체 예약이 취소돼서 불가능하니 불고기전골을 먹으라"고 했다. 약 2분 후 불고기전골과 반찬 4가지가 나왔다. 버섯전골에선 머리카락이 나왔고, 테이블에서 보이는 주방에서는 종업원들이 양상추를 씻지도 않고 잘라 요리에 넣는 게 보였다. 류씨가 중국어로 종업원에게 "전골에 무엇이 들어갔나요"라고 묻자 종업원은 "국물이 모자라면 더 주겠다"고 했다. 류씨는 "요즘은 베이징 뒷골목에서도 이런 식당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관광공사가 지정한 서울 소재 외래관광객 전문식당 60곳에 전화로 확인한 결과 중국어 간자체 메뉴가 준비된 곳은 11곳(한자 메뉴 포함하면 28곳)에 불과했고, 관광공사 중국인용 홈페이지에 등재된 서울 74개 식당 중엔 6곳(한자 포함 10곳)에만 중국인을 위한 메뉴판이 준비돼 있었다. 서울 명동서 만난 중국인 관광객 천웨이(陳偉·36)씨는 "며칠 전 한식집에 갔다가 중국어가 통하지 않아 영어 설명만 보고 아무 음식이나 시켰다"며 "먹어 보니 너무 매워 몇 숟갈 먹고 남겼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외국어 소통 능력을 고려해 외국인 관광객 전문식당을 지정하지만 외국어 메뉴판 소유 여부가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티투어버스 중국어는 1명 뿐

이번엔 류씨에게 서울시티버스를 탑승해 보게 했다. 버스 출발 전, 가이드가 경복궁·중앙박물관 등 주요 관광 코스를 영어와 일어로 안내했다. 류씨가 가이드에게 "경복궁은 몇 시까지 합니까?"라고 묻자 가이드는 중국어 안내책자를 던지듯 건네주더니 뒤돌아 가버렸다. 시티투어버스의 통역가이드는 10명으로 대부분 영어와 일본어가 가능하지만 중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이달 채용된 한 명뿐이다.

관광가이드인 관광통역안내사 중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가이드는 턱없이 부족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가장 최근 수치"라며 내놓은 가이드 관련 수치는 2008년 12월 기준. 이에 따르면 관광통역안내사(1만6261명) 중 중국어 가능자는 2719명으로, 일본어 8460명, 영어 4649명에 비해 매우 적다.

하나투어 정기윤 홍보팀장은 "관광통역 자격증 규정이 까다로워 합법적으로 일하는 관광가이드 수가 적다"며 "중국인 가이드는 대부분 불법으로 일하는 조선족"이라고 했다. "중국인 관광객 수요에 맞추려면 자격증 기준을 낮춰 가이드 수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인 "지하철 방송 이해 안돼"

중국어 안내 방송을 하는 지하철역은 서울메트로(1~4호선) 19개, 서울도시철도(5~8호선) 13개로 모두 26개(지난해 12월 현재·중복 역 6개)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인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지가 중국인 10명에게 '첸팡다오잔스 동국대학입구잔'이라는 내용의 3호선 동대입구역 안내 방송을 들려주고, 노선도에서 역을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10명 중 정답자는 2명. 관광객 장서우신(張守昕·60)씨는 "중국어 안내가 시끄럽기만 하고 도움은 안 된다"며 "승강장에 내린 후에는 아예 중국어 정보가 없으니 어떻게 길을 찾겠느냐"고 했다.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는 제메이(潔梅·35)씨는 "방송 알아듣는 게 어려워 숙소에서 받은 일본어 노선도에 적힌 역 번호를 보고 대충 길을 찾는다"며 "이 역(명동역) 이름도 잘 몰라 노선도에 적힌 '424' 지역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같은 역을 두고도 노선별로 안내가 다르다. 4·6호선 환승역인 삼각지(표기 三角地)역의 경우, 4호선에선 '삼각지'로, 6호선에선 '싼자오디'로 발음한다. 1·3·5호선 환승역인 종로3가(鐘路3街)역도 3호선 안내는 '종로삼가', 5호선은 '중루싼제'다.

◆문제 있는 여행사 난립

숙박비를 줄이기 위해 주요 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진 여관에 여행객을 재우고, 싸구려 음식을 먹이는 저질 여행사 문제도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 한국방문의 해 위원회 곽상섭 팀장은 "여행사는 등록제라 제재를 해도 이름만 바꿔 다시 문을 여는데, 9000여개의 여행사를 전부 다 통제할 수도 없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 중국팀 박정하 팀장은 "정부가 여행사의 상품 개발을 지원하는 우수 상품 인증제 실시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관광학과 이연택 교수는 "현재 세계 31위인 우리 관광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현재의 포괄적인 정책보다는 구체적 모범 사례를 발굴, 육성하는 편이 빠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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