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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지진 현장 구호에서 돌아본 대한민국 모습

화이트보스 2010. 1. 23. 21:56

아이티 지진 현장 구호에서 돌아본 대한민국

입력 : 2010.01.22 23:08

지진 참사로 숨진 사람들의 시신이 아직도 콘크리트에 깔려 있고 매분(每分) 매시간(每時間) 응급 중환자들이 쏟아지는 아이티에서 각국이 경쟁하듯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지진 발생 48시간 만에 컨테이너 30개를 비행기로 날라와 이동형 종합병원을 세웠다. 20여명의 의료진도 함께 도착했다. 이 병원은 수술실·중환자실·회복실뿐 아니라 24시간 수술이 가능한 대형 발전기와 오염된 물을 정수하는 시설까지 갖췄다. 미국·프랑스·노르웨이 등 8개국도 각기 종합병원을 조립해 첨단 통신장비로 현장 구조팀과 교신하며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 곁에서 한국 구호팀 의사 대여섯 명이 천막을 치고 환자를 맞고 있다. 골절환자에겐 부목을 대주고 찢긴 피부를 꿰매주고 내과 질환에 약을 주는 수준이다. 그것도 정부가 아니라 대학병원과 민간 단체가 급히 만든 의료진이다. 정부 산하 119구조대는 지진 발생 닷새가 지나서야 현지에 도착했다. 정부는 구호금 100만달러로 할 일을 다한 듯하다 세계의 눈길이 22개국 28개 구조대가 벌이는 생존자 찾기 경쟁에 쏟아지자 뒤늦게 구조대 파견을 결정했다. 정부 늑장 대응으로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우리 구조대는 이미 다른 나라 구조대가 훑고 간 자리에서 생존자는 한명도 못 구한 채 시신 수습에만 매달려 왔다.

우리 의료진은 2005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2007년 파키스탄 지진에 이어 아이티에서도 삽으로 배수구를 파면서 천막 진료소를 세우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일본·호주·독일 등은 구호팀 1진을 항공기 편으로 보내고 이어 군함에 트럭과 중장비를 싣고 가 이동식 종합병원을 세웠다. 일본은 48시간 안에 해외 재난지역에 의료진을 보내기 위해 공항에 늘 병원 조립세트와 의료기기와 약품을 놔두고 있다. 일본이 '구호 선진국'으로 꼽히는 것은 이렇게 체계적이고 치밀한 정부 차원 구호체제 덕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격(國格)에 맞는 구호외교'를 지시하자 정부는 아이티 지원액을 100만달러에서 1200만달러로 늘렸다. 그러나 늘어난 지원금을 제대로 사용할 인력과 기구를 함께 보낼 형편이 안 된다. 외교부는 "대사관이 없는 아이티에 임시출장소를 세우고 한동안 3명을 파견할 예정"이라고 한다. 참사 현장은 시시각각 달라지는데 아직도 '예정'이니 구호팀이 제대로 가동할 때면 상황은 다른 국면으로 바뀔지 모른다.

나라의 품격을 돈만으로 높일 순 없다. 세계 13위 경제대국에 G20 의장국이 됐다지만 경제력과 인도주의 활동이 결합한 '스마트 파워'로 보면 선진국 그림자도 못 밟는 수준이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 순위는 세계 33위, OECD 회원국 법질서 준수는 27위로 최하위권이다. 지난 연말 감사원 조사에서 140개 시민단체가 500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는 많지만 제대로 회비를 걷는 곳은 극히 드문 한국 시민사회의 외화내빈(外華內貧) 현상 때문이다. 이번 아이티 재난 구호 현장을 통해 과연 우리가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나라다운 품격과 수준과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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