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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인신공격 다음 피해자는?

화이트보스 2010. 1. 25. 11:34

인터넷 인신공격 다음 피해자는?

 
2010-01-25 03:00 2010-01-25 03:00 여성 | 남성



20대 남녀가 지하철 5호선 객차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기사가 여러 매체에 실렸다. 2006년 2월 15일 일이다. 고아로 자란 남자가 형편이 어려워 자신들이 처음 만난 5호선에서 예식을 올렸다는 내용이다. 이 기사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웨딩회사는 무료로 결혼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7000여 명의 누리꾼은 성금을 보내겠다고 서명했다. 이 결혼식에 대한 유일한 증거는 인터넷에 떠돌던 1분 남짓 되는 동영상이었다. 이 결혼식은 대학의 연극학도들이 연출한 상황극으로 다음 날 드러났다. 시민의 허탈감은 컸다. 연출을 맡은 학생은 속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성금을 약속한 누리꾼의 상처는 치유될 수 없었다.

살인 날조… 짝사랑 여인 음해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2일에는 여성 시위 참가자가 목이 졸려 사망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전투경찰이 시위 참가자를 체포하다 발생한 사건이라고 했다. 현장에 있던 시위대뿐 아니라 이 글을 접한 시민은 모두 흥분했다. 시간이 지나자 다행히 사망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날조된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했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시위대를 충동하려고 올린 글이라면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안이지만 추적이 불가능했다.

지난해 12월 24일에는 장애인 남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억울한 사연’이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왔다. 짝사랑하던 여성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자신을 폭행하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그는 이 글에서 상대 여성의 대학과 학과 등 인적사항을 모두 공개해 신분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조만간 실명을 밝히는 탄원서를 여성이 다니는 학교 앞에 뿌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썼다. 누리꾼은 여성을 공격하는 댓글을 달며 관심을 확산시켰다. 글의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 여성에 따르면 이 남자는 장애인이 아니다. 폭행사건도 사실이 아니었다.

인터넷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이자 매체로 자리 잡았다. 최근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이란 사태에서 목격한 트위터의 위력이나 아이티 지진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하는 속보 능력은 어느 매체도 견주기 어려운 인터넷의 영향력을 입증한다. 문제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매체가 행사하던 게이트키핑 기능이 개개인 누리꾼의 책임으로 전환되는 사실이다. 공공영역에서 소통되는 정보에 대한 제도적 거름 장치가 거의 소멸됐음을 뜻한다.

가짜 결혼식 동영상이나 날조된 공권력 살인사건, 그리고 짝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인신공격 글이 짧은 시간 안에 수천 명에게 노출됐던 우리 사회의 경험은 인터넷의 이런 특성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사례였다. 중국에서 혐한론을 퍼뜨리는 글이 확산된 경로도 인터넷이었던 점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폭넓은 자정 노력이 없으면 인터넷은 통제 불가능한 흉기로 변질할 위험을 언제나 내포한다.

정보규범 등 제도적 거름장치 급해

해결책은 두 갈래로 모색해야 한다. 하나는 선진국이 1970년대부터 제도화했듯이 공정정보규범(fair information practice)을 보편화하는 일이다. 이 규범에는 정부의 역할과 포털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허위 사실의 게시나 부당한 인신공격, 부적절한 개인정보의 노출을 규제할 장치가 마련된다. 두 번째 해결책은 누리꾼 개개인의 교양을 높이는 일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민 개개인이 품격을 지키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초중등학교 교과과정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도입하는 일도 시급하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