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쌀이 3배 더 값싼 탓… 국산쌀 쓰면 150원 올라
막걸리 폭발적 열풍도 국내 농가엔 도움 안돼
최근 '국민 술' 대접을 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막걸리의 90% 이상이 국산쌀이 아닌 수입쌀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막걸리 시장의 확대가 우리 쌀 농가에는 정작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수입쌀로 만든 막걸리가 '전통 한국술' 이미지를 띠고 버젓이 수출까지 해왔다.
특히, 막걸리는 주세(酒稅)가 5%밖에 안돼, 약주(주세 30%), 소주(72%), 맥주(72%) 등 다른 술에 비해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수입쌀이 국산의 3분의 1 가격'이라는 이유로 막걸리업체 대부분이 국산 쌀을 외면해왔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수입쌀 막걸리에 왜 열광했을까? 수입쌀로 만든 줄 몰랐기 때문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막걸리 병의 성분 표시란에는 '원산지 표시'가 돼 있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수입쌀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막걸리 원료에도 원산지를 표시하도록 할 예정이다.
- ▲ 오랫동안 소외받았다가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부활한 막걸리. 그러나 시중에 팔리는 막걸리에는 원료 원산지 표시가 없다. 그래서 국산 막걸리를 외국쌀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유통 막걸리, '전통술' 인정 못받아
막걸리는 수백 년을 이어온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술이다. 그러나 정작 시중에 나와있는 막걸리의 99% 이상은 정부로부터 '전통술' 인정을 받지 못했다.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전통술' 인정을 받으려면 100% 국산쌀(이 중 50%는 직접생산)로 만들어야 하지만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킨 업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통술 인정을 받을 경우 현행 주세(5%)의 절반(2.5%)을 감면해 준다. 농식품부 식품유통정책관실 김종실 서기관은 "현재 전국에 780여개 막걸리 제조업체(면허취득 기준)들이 있지만, 이중 정부로부터 전통술 인정을 받은 업체는 15개 업체뿐"이라고 말했다. 전통술로 인정 받은 막걸리가 전체 중 1% 안팎이라는 설명이다.
농식품부는 작년 한 해 동안 막걸리용으로 쓰인 쌀과 밀이 3만5000t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중 쌀 2만5000t 중 수입쌀은 1만8000t, 국산쌀이 7000t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작년 한 해 막걸리 원료로 쓰인 쌀이 약 6만t에 달하며, 이 중 수입 쌀이 90%를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의 군소 막걸리 양조업체가 500개가 훨씬 넘어 정부에서도 정확한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막걸리 업체들이 사용하는 수입쌀은 정부가 쌀시장의 전면개방을 유예하기 위해 1995년부터 미국·중국 등으로부터 들여오고 있는 의무수입물량(MMA) 쌀이다. 막걸리 업체들이 수입쌀을 직접 수입해온 것은 아니지만, 수입쌀 막걸리 시장의 확대는 결과적으로 외국 쌀농가에 보탬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국산쌀로 만들어도 제조원가 큰 차이 없다
막걸리 업체들이 그동안 우리 쌀을 외면해온 이유는 가격 때문이었다. 수입쌀이 훨씬 싸다. 실제로 작년 기준으로 수입쌀(공급가 기준)과 국산쌀 가격 차이는 약 3배에 달했다. 그러나 막걸리 한 병에 드는 생산원가 중 원재료인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10~20% 정도밖에 안된다. 국산쌀로 대체하더라도 생산원가 상승분은 병당(750mL, 알코올 6도 기준) 150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의 원가상승은 현재의 이윤에서 흡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 가격을 올리더라도 병당 생산원가 상승분(150원 안팎) 정도만 반영할 경우 소비자들의 가격저항도 거세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산쌀을 사용하면 우리 농가에 직접적인 혜택이 돌아간다. 수입쌀 대신 우리 쌀로 막걸리를 만들 경우 병당 200원 정도를 쌀농가에게 안겨주는 것으로 파악됐다.
- ▲ 국내 쌀 막걸리는 90% 이상이 수입쌀로 만들지만 막걸리 회사들은 대부분 원산지 표 시를 하지 않는다. 국내 한 유명 탁주의 원료표시도‘백미 90%’라고만 되어 있다.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국산쌀 막걸리, 시동 걸렸다
전통술인 막걸리만큼은 국산쌀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최근 일고 있다. 국내 막걸리 시장의 절반 정도 점유율을 갖고 있는 서울탁주협회(장수막걸리, 월매막걸리)는 지난해 12월 8일부터 '월매 막걸리' 원료를 수입쌀에서 100% 국산쌀로 대체했다. 농식품부와 손잡고 서울탁주를 비롯해 34개 업체들이 같은 시기에 한시적으로 국산쌀 막걸리(막걸리 누보)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
서울탁주협회 이동수 회장은 "처음엔 3개월만 국산쌀을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수출 비중이 높은 월매 막걸리는 계속 국산쌀로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탁주는 충청도 진천에 대규모 막걸리 공장을 만들고, 이곳에서 만드는 월매 막걸리의 경우 100% 국산쌀을 쓰기로 했다. 월매막걸리는 수입쌀에서 국산쌀로 원료를 바꾸면서 출고가가 200원 정도 올렸다. 생산원가 상승분만 소비자 가격에 반영한 셈이다.
이동수 회장은 "시장의 반응을 지켜본 뒤 장수 막걸리도 국산쌀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오는 11월에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는 우리 쌀로 만든 장수막걸리를 공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산사춘 등 약주로 유명한 배상면주가 역시 이달부터 기존 수입쌀 막걸리보다 '150원' 비싼 국산쌀 막걸리를 내놓기 시작했다. 국산쌀 사용 생산원가만큼만 가격을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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