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1938년 부산 출생
1966년 서울대 약학과 졸업
1973년 서울대 약학박사
11, 12, 15, 16대 국회의원
1990 과학기술처 장관
1996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장
1998 한나라당 정책의장
2001 국회정보통신과학기술위원장
2004 대한변리사회장
지하철 4호선 서울대공원역에서 내려 5번출구를 향해 걷는다. 국립과천과학관이라는 안내판을 뒤로 하며 출구 계단을 오른다. 5번출구를 나가는 순간, 기자는 흠칫 놀랐다. 눈앞에 거대한 비행체가 이륙을 하기 위해 땅을 박차는 듯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2008년 개관한 국립과천과학관이다.
서울 창경궁 옆에 있는 국립서울과학관을 가본 사람들은 그 규모에 적잖게 실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GDP 세계 12위 대한민국이라는 위상과 여러모로 걸맞지 않다고 느꼈을 법하다. 하지만 국립과천과학관은 일단 외관과 규모에서부터 자부심을 갖게 한다.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스소니언 과학관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국립과천과학관은 2001년 4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과학의 날’ 대통령 치사에서 건립을 약속한 뒤 관련 법을 만들어 2008년 10월 완공, 11월에 공식 개관했다. 태어난 지 돌을 갓 넘겼다. 그래선가 규모와 시설에 비해 전시물 콘텐츠는 아직 크게 미흡한 수준이다. 정부는 2009년 10월, 2대 국립과천과학관장에 이상희(李祥羲) 전 과학기술처 장관을 임명했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과학대통령’을 내걸고 출마했던 인물 이상희(71). 서울대 약학박사, 대한변리사회장, 한국과학발명재단 이사장, 한국우주소년단 총재, 과학기술처 장관, 그리고 전직 4선 의원. 현존 인물 중 이상희 관장만큼 과학기술과 발명특허 분야에서 풍부한 경륜을 쌓은 인물은 찾기 어렵다. 그런 그가 2급자리인 국립과천과학관장직을 수락했기에 언론에선 이례적 인사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12월 18일 오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실에서 이상희 관장과 마주 앉았다. 그는 과학관장에 취임하기 직전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을 비롯해 LA, 샌프란시스코, 러시아, 프랑스의 과학박물관을 둘러보았다고 했다.
선진국의 과학관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 “과학기술에서 앞서 있는 나라들의 과학박물관을 보면서 우리 과학관의 정체성을 어떻게 잡아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본 것처럼 아무리 투자해도 한국이 금메달을 딸 수 없는 종목이 있다. 과학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강점이 있는 분야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 어느 종목에 집중투자해야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한국인의 특성에 비춰 어떤 산업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고 보나. “게임산업이 밝다고 본다. 앞으로는 모든 치료 프로그램도 게임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마약중독치료게임, 치매치료게임, 시력향상게임 등 메디게임이 발달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이 관장은 과학기술 발전과 관련 우려되는 팩트가 있다고 했다.
“OECD 국제학생평가의 과학흥미도 조사에서 한국은 전체 57개국 중 55위를 기록했다. 사실상 꼴찌를 차지한 것이다.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1.22명이다. 21세기는 지적창의성 경쟁시대인데 과학 흥미도가 없다는 것은 큰 걱정이다. 한국 사회가 계속 인구가 줄고 과학 흥미도가 감소한다면 지식기반사회에서 우리가 설 자리가 있겠는가.”
왜 과학흥미도가 꼴찌를 기록했다고 보나. “주입식 교육의 결과다. 청소년기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형화된 입시교육이 이런 궁금증과 호기심을 죽이고 있다. 창의성은 궁금증과 호기심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
전시관을 둘러보니 전시 콘텐츠 면에서 보강해야 할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강보(襁褓)에 싸인 1개월짜리 갓난아기를 받아서 키우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4부(府)에서 쌓은 경륜을 100% 써먹으라고 나를 이 자리에 보낸 것 아닌가.”
사실이 그렇다. 일반인들 중에는 국립과천과학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기자 역시 이상희 관장의 취임을 계기로 과천에 국립과학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젖먹이나 다름 없는 국립과천과학관은 이상희라는 최고의 유모를 만난 셈이다.
- ▲ 국립과천과학관 전경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앞으로 과천과학관을 어떻게 만들어갈 생각인가. “지역구 의원으로 지역구를 관리하면서 얻은 지혜가 있다. 아무리 좋은 얘기도 재미가 없으면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과학을 주제로 얘기를 할 때도 여성에게는 영재교육이나 피부미용과 연결시켜 얘기를 해야만 듣는다. 반대로 남성에게는 정력과 연결시켜서 과학 얘기를 해야 한다. 과학관도 마찬가지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게끔 재미있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두 번 와서 만족 못하고 아이들이 또 찾아오게 된다.”
‘재미있는 과학관’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설명도 쉽고 재미있게 해야 한다. 학생들을 안내하는 직원들 유니폼도 바꿀 필요가 있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컬러와 디자인으로 바꿔야 한다. 또 과학기술 발달사(史)를 설명하면서 특정 과학기술의 발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설명해야만 한다. 어떤 전쟁에서 이겼고, 발명자가 특허를 내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기술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이 흥미를 느낀다.”
아직 과천과학관이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릴 것인가. “최근 히트한 영화 중에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가 있다. 나는 ‘과학관이 살아있다’란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그래서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과학관이 살아있다’라는 주제의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공모할 계획이다. 한국교총과 공동주최로 시나리오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장관상, 과학계원로상 등을 만들어 포상할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과천과학관이 초중고 학생들에게 알려지게 될 것이다. ‘과학관이 살아있다’란 영화가 만들어지면 과학관을 찾는 초중고생들이 늘어나고 과학관에서 꿈을 키우게 될 것이다.”
이 관장은 이와 관련, 흥미로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 관장은 4선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여러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공통점을 두 가지 발견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자격으로 만나자고 하면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과학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당내 경선에 나간 적이 있다고 하니까 그들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먼저 그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순진하다는 점이었다. 어떤 면에서 애들처럼 보였다. 다른 하나는 사물과 현상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노벨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1918 ~1988). 원폭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는 파인만은 일반인들에게 과학을 명료하고 쉽게 설명하는 재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양자전기역학-빛과 물길에 관한 이상한 이론’도 그가 설명한 글을 읽어보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다.
2009년 국립과천과학관의 예산은 197억원. 2010년 예산은 전년 대비 150억원이 증액된 347억원을 신청해 놓고 있는 상태다. 문을 연 지 1년여밖에 안 된 과학관에서 증액된 예산을 배정받는다면 전적으로 4선 의원인 이 관장의 영향력 덕분일 것이다. 예결위원 2회, 국회상임위원장, 대통령과학기술자문위원장 등의 경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국회교육과학 위원과 예산결산위원들을 대상으로 예산증액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문자메시지를 꾸준히 보냈다.
“국립과천과학관 출산비용은 최선진국 수준. 그러나 육아비용은 아프리카 수준!”
과학계중진모임은 최근 자체적으로 한국과학을 발전시킨 3인에 박정희 전 대통령, 최형섭 전 과기처 장관, 이상희 전 과기처 장관을 선정했다. 평생을 과학기술 분야에 매진해온 이 관장으로서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 지금 젊은 세대는 박정희 대통령과 최형섭 장관의 관계를 모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과학기술의 토대를 마련했다. 3공화국 시절 최형섭 박사는 최장수 과학기술처 장관이었다. 최형섭 박사는 회고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마치 본인이 과기처 장관이고, 장관이었던 자신은 비서실장인 듯했다고 비유했다. 그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과학기술을 챙겼다는 의미다. 과학정치는 박정희, 과학행정은 최형섭, 과학입법은 이상희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 관장과 최형섭 박사의 인연은 어떻게 되나. “내가 정치할 때 후원회장으로 최형섭 박사님을 모셨다. 최형섭 박사님은 ‘정치자금을 모아줄 능력도 없는 나에게 왜 후원회장을 맡기냐’고 했지만 나는 ‘정신적 지주로서 최형섭 선배님을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최형섭 박사님은 응용과학 분야에서, 나는 기초과학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이 관장이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은 장관 시절 기초과학연구진흥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주식회사, 대학은 중앙연구소, 기업은 생산영업부서, 정부는 기획관리부서’라는 게 그의 지론. 대학이 중앙연구소 역할을 하려면 특허와 논문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법률이 기초과학연구진흥법. 전국 대학에 있는 SRC(과학연구센터)와 ERC(공학연구센터)는 이 법안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과학의 대중화 작업에 걸림돌이 뭐라고 보나. “과학은 차갑다는 이미지가 있다. 과학에 인간과 감성의 옷을 입혀야 한다. 과학을 따뜻하고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 삶의 질 향상과 웰빙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3F가 필요하다. Female, Feeling, Fiction이 3F다. 여기서 Fiction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과에서 뛰어난 학생들이 대부분 의대를 지원하고 나머지 학생들이 공대를 지원하는 게 현실이다. “이공계 출신에 대한 사회적 푸대접 때문인데, 앞으로는 의사 직업도 어려워질 것이다. 수술도 지능로봇이 다하는 날이 온다. 암 진단시약이 나와 의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게 불가피하다. 의료 쪽은 뛰어난 창의성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다. 사실 의료 쪽은 슈바이처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 가야 한다. 마음이 따뜻하고 꼼꼼한 사람들이 가야 훌륭한 의사가 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과학기술부가 교육부로 흡수통합되었다. 과학기술인 입장에서 보면 과학기술에 대한 홀대로 보일 수 있다. “유아초등교육은 지역 특성에 따라 지자체 교육위원회에 맡기고, 고등교육은 지식경제 분야에 들어가니 시장경제에 맡기자는 차원에서 합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않은데. “현실에선 교육만 있고 과학기술은 없어졌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현실적인 교육 문제가 워낙 절박하다보니 과학기술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연구원들의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대덕연구단지의 과학기술자들에게는 생모가 사라지고 (다른 집에) 양자·양녀로 들어간 듯한 분위기가 있다. 의기소침해 있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갓난아기와 같다. 선진국일수록 과학기술은 신생아처럼 정부 주도로 육성하고 키우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평소 창조적 두뇌입국을 강조해왔는데 과학관장으로서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뭔가. “대한민국은 머리 외에는 살길이 없는 나라다. 부존자원이 많은가, 땅덩어리가 넓은가. 창조적 두뇌입국만이 살길이다. 창조적 두뇌개발의 밑거름이 되는 게 과천과학관의 역할이고 미래비전이라고 본다.”
/ 조성관 편집위원 mapl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