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大使)는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을 받기 직전인 2009년 1월 북한문제 전문가들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여기서 보즈워스 대사 일행은 북한의 고위 당국자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핵문제 해법은 3단계(폐쇄·불능화·폐기)가 아닌 4단계로 구성된다. 폐쇄·무력화(불능화)·폐기·제거가 그것이다.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의 대가는 2·13 합의에 명기한 대로 '100만t'의 경제 지원이다. 핵시설 폐기를 위해서는 경수로를 지어줘야 한다. 마지막 단계인 핵무기 제거를 위해서는 한·미동맹 폐기를 통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종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보즈워스 대사는 "한·미동맹 폐기와 같은 상황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북한은 그러나 2010년 1월 11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문제의 기본 당사자들인 조·미(북·미) 사이의 신뢰를 조성하자면 적대관계의 근원인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부터 체결되어야 할 것이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조선반도에 일찍이 공고한 평화체제가 수립되었더라면 핵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핵문제의 본질이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에 있음을 강조했다. 보즈워스의 방북 때 예견된 대로 공고한 평화체제란 북·미 평화협정 체결과 이에 따른 제반 조치, 즉 한·미동맹의 근본적 변화에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북한의 평화체제 공세는 근래의 일이 아니다. 북한이 1994년 4월 대미(對美) 직접 평화협상을 제의한 이래 군사정전위원회로부터 북한군 철수,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임의 설치, 체코 및 폴란드 중립국감독위원회 대표단 축출, DMZ 유지 및 관리 임무 포기 선언, NLL 무단 침범 등을 단행한 것은 정전협정 사문화(死文化) 전략이자 대미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정지작업 차원이었다.
그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잠정협정, 불가침 조약 체결 등을 요구하였고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자 2005년 7월 평화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들고 나왔다. 그러다 2007년 2·13 합의 이후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핵 폐기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불능화 문제만 가지고 씨름하게 되자 북한은 굳이 평화체제 얘기를 꺼낼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 2009년 북핵 폐기가 핵심인 '그랜드 바겐' 얘기가 나오자 또다시 평화체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세 가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첫째,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에 핵을 개발하게 되었으므로 이를 제거해야 핵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를 설파하기 위함이다. 둘째,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종식은 미국과 북한 간의 평화협정 체결과 제반 조치를 통해 한·미동맹을 '재조정'해야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셋째, 앞으로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게 될 때 핵문제와 평화협정 문제를 동시에 제기해 두 문제 간의 '화학반응'을 유도함으로써 핵문제의 초점을 흐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북핵 폐기에 대한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포럼'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동시에 한·미·일 3국은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공존하듯 동북아에서 동맹과 다자안보체제가 공존하는 미래 비전을 중국과 공유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의 평화체제 공세에 대처할 수 있고, 북핵 폐기를 위한 중국의 진정한 협력을 기대할 수 있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통해 노리는 것
입력 : 2010.02.09 22:11 / 수정 : 2010.02.10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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