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쟁이나 내부 폭동 등으로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 군대를 지휘할 최후의 ‘지휘소’로 백두산에 위치한 김정일의 초대소(별장)가 임시 사령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캐나다 토론토에 본부를 둔 중국계 국제군사전문잡지 칸와(漢和)디펜스 리뷰의 분석이다. 하지만 유사시 마지막 항전을 위해 준비한 최고전시사령부는 백두산이 아닌 자강도 강계 지역에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최고위 탈북자는 “백두산 지역에 김정일 별장이 두 곳 있지만 그것이 군사시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확언했다. 백두산 별장은 ‘삼지연’과 ‘포태’ 두 군데에 있다. 이 별장에는 김정일 휴식시설 외에 주요 당·정·군(黨·政·軍) 핵심 간부들이 머무를 수 있는 특각(特閣)이 만들어져 있으며 간부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헬기 착륙장과 비행장이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일가가 자주 찾는 곳이기 때문에 지하통로나 대피소와 같은 안전 장치는 마련돼 있지만 그것은 김정일 별장이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시설이다.
- ▲ 김정일 위원장이 ‘근위 서울류경수 제105땅크(탱크)사단’ 관하 구분대(대대급 이하 부대)를 시찰하고 있다며 조선 중앙통신이 지난 1월 5일 보도한 장면.
- 백두산 초대소가 전시최고사령부의 기능을 하려면 기본적인 전시 인프라와 함께 중국과 면밀하게 교류 할 수 있는 입지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백두산 지역은 전쟁을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주요 요건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 군부 출신의 한 탈북자는 “백두산 지역은 교통이 불편한 데다 한번 고립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군사적으로 볼 때 동해안보다 평양시가 있는 서해안이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기 때문에 최고지도부가 동쪽에 위치할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본적인 전력과 통신 등 기초 인프라가 없는 첩첩산중의 백두산 지역은 중국군과 접촉이 불가능한 데다 군대를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백두산에 최고 전시사령부가 들어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평양 곳곳 김정일 전용 지하도로
현재 북한 전역에는 김정일 개인 별장이 24곳 있다. 이 별장에는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지하통로와 지하대피소가 만들어져 있다. 대피소는 웬만한 포격에도 끄떡없는 요새이지만 김정일이 머무는 시간은 최대 64시간으로 한정돼 있다고 한다. 대피소와 지하통로는 별장과 떨어진 곳까지 이어져 김정일의 동선(動線) 노출을 막아준다. 김정일이 국내에서 현지지도를 나갈 때에는 반드시 지하대피소가 있는 곳을 택한다. 따라서 별장이 있는 근처가 김정일의 방문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26호저택(김정일이 주로 기거하는 곳)은 북한의 주요 핵심 부서들이 밀집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저택 지하에는 김정일과 그 가족들이 대피할 수 있는 대형 대피소가 만들어져있다. 이 대피소부터 연결된 지하 도로는 평양과 인근 지역인 평남 평성시 사이에 있는 국사봉(400고지)에 위치한 전시최고사령부까지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20㎞에 이른다고 한다. 김정일과 그 측근들만 대피할 수 있는 거대한 지하도로인 것이다. 이 공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한 고위탈북자는 “1970년 초 평양에 세계에서 가장 깊은 지하철(80~ 120m)을 건설할 때 이미 그 옆에서 터널공사를 함께 진행했다”고 밝혔다.
미사일 공격에도 끄떡없는 특별 벙커
평양 지하철은 너무 깊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하철 역에는 구석구석마다 지하 은신처가 만들어져 유사시 거대한 방공호 역할을 하게 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전체 평양 주민들은 지하철 방공호로 들어가도록 돼 있는데 전문가들은 “전시에 지하철 방공호로 들어갈 경우 오히려 떼죽음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1호 지하도로(김정일 전용 지하도로)’의 환기를 위해 평양시 지하철 환풍구를 돌릴 경우, 지하철 방공호의 산소 공급이 불충분해져 순식간에 수만 명의 숨통을 막는 지옥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양 출신의 한 탈북자는 “평양에서 훈련을 위해 시민들이 지하철로 대피할 때면 항상 초긴장 상태에 이른다”고 말했다. 정전 등으로 환풍기가 멈추면 무슨 날벼락을 맞을지 모르기 때문이란 것이다.
- ▲ 캐나다의 군사 싱크탱크 칸와(漢和)정보센터가 입수한 백두산 초대소 위성사진. / photo 漢和防務評論(한화방무평론) 교도=연합뉴스
- 김정일 전용 지하도로는 평양 지하철보다 더 깊은 200m 깊이로 건설돼 있으며 주요 환풍시설은 평양 지하철과 연계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하터널은 사회안전성 산하 건설부대가 동원돼 완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하터널을 건설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환풍시설인데 평양 시내 1호 지하도로 환풍시설은 평양 지하철과 연계시켜 ‘지하도로’의 존재를 감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평양시 중구역 저택에서 빠져나와 지하로 20㎞를 달려 내리는 종착점은 임시최고전시사령부다. 여기에는 미사일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특별 벙커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 그 옆에는 군(軍) 최고지휘관들이 머무를 수 있는 별도의 벙커도 있다고 한다. 이 전시사령부는 평양시가 위태로울 경우 1차로 머무르는 관문이다. 이곳에는 호위사령부 야전지휘소와 인민군 호위총국 탱크사단 지하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거리 터널은 환풍구가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평양시를 제외한 장거리 터널은 존재하기 힘들다고 한다. 또 자칫 지하수나 터널 붕괴와 같은 사고 위험 때문에 지나치게 긴 터널은 북한의 기술력으로 지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평양시 터널은 국가가 전력을 다해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그 외의 지역에는 장거리 터널이 필요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최후의 보루는 자강도 강계?
평양시 인근에 위치한 임시사령부가 위태로울 경우 2차 저지선은 평북 태천에 만들어진 임시사령부가 된다. 태천 군사 거점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지만 핵시설 관련 주요 비밀기지들이 이 지역에 밀집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여기서도 인민군이 밀릴 경우 자강도 강계시 인근에 있는 임시전시사령부가 마지막 항전지의 기능을 하게 된다.
자강도 출신의 한 탈북자는 “자강도에는 군수공장들이 밀집돼 있고 각종 군사시설이 많아 전쟁의 마지막 보루로 충분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강도에는 각종 군사시설이 많아 일종의 지하세계가 형성될 정도”라며 “모든 것이 땅속에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항전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6·25 전쟁 때 북한군이 유엔군에 밀려 북쪽으로 후퇴한 후 1950년 12월 21일 전시체제하에서 노동당 제3차 전원회의를 가진 곳이 바로 강계 인근의 장강군 농촌 지역이었다. 서울과 평양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쫓겨갈 당시 김일성은 “다시 과거처럼 백두산 지역에서 유격대 활동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마지막 항전을 위해 진지를 구축할 것”을 지시했다. 이곳이 오늘날 전시사령부가 된 것이다.
강계시 바로 위에 있는 만포시는 6·25 전쟁 때 중공군 주력부대가 진입한 곳으로 대규모 부대의 진입이 가능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수풍발전소의 풍부한 전력을 사용할 수 있고 각종 군사시설이 있는 데다 고산이 즐비하기 때문에 게릴라전을 포함한 마지막 항전을 준비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평성 인근에 있는 지하벙커처럼 이곳에 미사일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시설을 갖추게 되면 중국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까지 버틸 수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북한정권이 전쟁이나 내부 폭동 등으로 김정일이 후퇴할 경우 최후의 항전지는 백두산 지역이 아닌 자강도 강계 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강철환 조선일보 북중문제연구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