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교육 강화하고 외부감사제도 개선해야”
15일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공인회계사들의 조직적 분식회계 사건은 전문직 엘리트 계층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철저한 감사를 통해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해야 할 회계사가 돈을 받고 장부조작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회계사들의 윤리교육 강화와 함께 허점투성이인 현행 외부감사 제도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A사의 분식회계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에 따르면 국내 10위권의 대형 회계법인 ‘화인’ 소속의 베테랑 회계사들은 재무제표에까지 직접 손을 대는 등 분식회계의 전 과정을 앞장서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2008년 5월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A사에서 1억1천만원의 뒷돈과 함께 “상장폐지를 면할 수 있도록 감사보고서의 의견을 바꿔달라”는 청탁을 받자 곧바로 장부조작에 나섰다고 검찰은 밝혔다.
백모(44) 이사를 비롯한 회계사 4명은 각종 계약서를 위조하는 등의 수법으로 A사의 당기순손실 314억을 ‘0원’으로 꾸며 넣은 허위 재무제표를 직접 만든 뒤 이를 근거로 당초 ‘의견거절’이라고 적었던 감사보고서도 ‘한정의견’으로 바꿔줬다.
이들의 감사보고서 조작 덕분에 A사의 상장폐지가 10개월이나 늦어지는 사이 코스닥 시장에서는 이 회사 주식 7억6천535만주(1천569억원어치)가 거래됐고, 이 중 상당액이 일반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인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 경영을 감시해 주주의 권익 보호에 앞장서야 할 외부감사인들이 돈의 유혹에 굴복해 선의의 투자자들을 울린 셈이다.
범행 과정에서는 화인 소속 회계사 4명 외에 다른 법인의 회계사 1명, 변호사 1명도 가담해 관련 계약서와 법률 의견서 등을 허위로 만들어준 것으로 드러나 전문직 고소득층의 도덕 불감증이 심각한 상태임을 실감케 했다.
이처럼 조직적 분식회계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들과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의 윤리의식 부재 탓도 있지만 현행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부감사 제도는 감사대상 회사의 개인 투자자들이나 채권자 등의 이해 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서비스지만 실제로 회계법인에 돈을 주고 의뢰를 하는 쪽은 서비스 이용자가 아니라 감사를 받는 회사라는 모순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회계사 입장에서 일감을 얻으려면 투자자보다는 오히려 감사 대상인 회사 측의 눈치를 더 볼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언제든지 이번 사건과 같은 회계부정 사건이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최진영 회계서비스1국장은 “감사의 질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책이 세계적인 고민거리”라며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회계법인 등록제’를 실시해 일정한 수준의 시스템과 자격을 갖춘 회계법인만 금융감독기구에 등록해 상장기업을 감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품질관리 감리’를 실시하고 있으나 강제력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개선요구 통보에 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