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연임 여성 부총통… ‘대만’과 ‘중국’은 전혀 다른 국가 |
입력: 2010.02.19 00:00 |
언론기관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전 중 중국, 대만 주권 불인정…홍콩처럼 취급 한국 드라마 ‘명성황후’ 매우 즐겨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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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秀蓮 전 대만 부총통은 유준상 회장과의 특별 대담이 끝난 뒤 선물을 교환했다. 선물 교환에 앞서 유 회장은 자신이 쓴 ‘한국의 의원 외교’라는 책자 속에 지난 2004년 대만 방문 당시 천수이벤 총통과 현 마잉주 총통과 각각 찍었던 사진을 보여 주면서 양국간의 우호 증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유허준 기자 pos317@namdonews.com | | [呂秀蓮 대만 전 부총통·유준상 회장 특별 대담]
뤼쉬롄(呂秀蓮) 전 대만 부총통은 18일 유준상 남도일보 회장과의 특별대담에서 대만과 중국간의 경제협정 및 대만 정치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여 부총통은 대만 최초로 연임을 한 여성 부총통으로 대만에서는 영향력 있는 여성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그는 주간지와 인터넷 신문을 운영하면서 대만의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 회장=퇴임 후 주간지와 인터넷 신문 등 대만 언론기관을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지난해 지방신문인 남도일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언론기관의 역할과 운영에 대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있습니다. 부총통이 언론기관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습니까?
뤼 전 부총통=현재 ‘Formosa Weekly’와 인터넷 신문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호에 마잉주 현 총통과 천수이벤 전 총통과의 인터뷰한 내용을 게재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 이후 신문과 주간지의 사정이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천수이벤 총통이 퇴임 이후 기소가 되면서 민진당을 후원했던 기업들로부터 모금이 불가능해져 개인적으로 돈을 내어 운영하기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유 회장=지난 2009년 12월 5일 대만 보궐선거(3곳)에서 민진당이 승리를 했습니다. 1986년 민진당 창당 이래 지방선거에서 거둔 최고의 성과이자 국민당과 마잉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임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오는 6월에 지방선거를 치르며 대만은 연말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대만의 지방선거에서 핫 이슈는 무엇이며 최근에 이루어진 행정구역 통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뤼 전 부총통=대만이 행정구역을 통합하면서 5개의 큰 행정구역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매우 경솔한 결정이었습니다. 행정구역 통합에 있어서 과정과 내용에 대해 정부는 국민들에게 상세히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잉주 총통의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국민당의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유 회장=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전 총리 일가 부패 사건을 수사해온 천충밍(陳總明) 검찰총장이 19일 수사와 관련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기자회견을 통해 수사 개입 중단을 촉구하면서 파문이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천 총장은 사의 표명 후 심야 기자회견을 열어 각계가 부당한 수단으로 검찰수사에 개입하지 말라고 정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민진당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 사건에 대해 민진당은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향후 정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까?
뤼 전 부총통=천충밍 총장은 천수이벤 총통이 제청하고 입법원장과 그 당시 야당인 국민당과 신민당이 추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천 총장의 지시로 특별 검사팀이 민진당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민진당 인사가 기소됐습니다. 그 당시 특별 검사팀이 조직된 주된 목적은 현직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조사한다는데 목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뒤에는 현직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조사보다는 오히려 퇴임한 민진당 정권의 관리들을 기소하다보니 당초에 설립목적과는 아주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천 총장의 후임으로 다른 사람이 천거될텐데 천 총장보다 좋은 분이 올지는 의문입니다.
유 회장=대만의 외환 보유고는 중국,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입니다. 지난 달 27일 대만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대만 경제가 4.81%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호조되는 경제상황에 발맞춰 대만 IT계의 설비투자 확대 움직임도 활발해 지고 있습니다. 올해 대만기업의 투자금액(대만 경제부 공업국 통계)은 1조4천억 대만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IT강국이라고 명명되는 한국보다 한수 위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대만 IT산업이 발전한 큰 원동력은 무엇인가?
뤼 전 부총통=대만 IT산업의 발전은 국민당의 계엄통치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초기에 미국으로 간 유학생들이 미국의 자유와 민주를 보고 대만의 국민당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보요원들이 정부를 비판한 사람들에 대해 보고를 했고 정부를 비판했던 사람들은 귀국하지 못하고 미국의 실리콘밸리 등 IT업계에서 종사했습니다. 1987년에 계엄령이 해제되고 1990년부터 정부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던 사람들이 대만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대만 IT산업의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고 정부들도 이러한 인력들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IT산업이 발전하면서 IT산업과 관련된 다른 과학기술도 발전하게 됐고 대만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유 회장=현재 중국과 경제협정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1일 10만명의 대만 국민이 중국과의 경제협정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했습니다. 대만과 중국과의 경제협정으로 중국의 인력과 자본이 유입돼 대만의 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보는 견해와 일각에서는 경제적 이익은 크지 않고 대만경제가 중국 경제에 더욱 예속돼 일자리만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부총통은 대만과 중국과의 경제협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뤼 전 부총통=중국이 대만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WTO 회원국이지만 다른나라와 FTA를 체결함에 있어서 매우 어렵고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중국은 대만을 홍콩과 마카오처럼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민정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매우 반대하고 있습니다. FTA는 나라와 나라가 체결하는데 중국은 기업 대 기업으로 체결하려고 합니다. 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물론 중국과 경제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일부 산업들에게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 섬유, 철강은 대부분 제품들을 중국에 수출하기에 관세가 면제되면 크게 이윤이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잉주 총통에게 많은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값싼 중국의 중소기업 제품들이 유입되면 대만의 중소기업들과 전통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살 길이 없어집니다. 예를 들면 대만의 차가 가격이 비싸지만 품질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대만의 차를 중국에서 환영하고 많이 받아 들였지만 나중에는 중국이 대만에 관련 차의 브랜드를 등록한 뒤 비슷한 차를 만들어 값싸게 공급해서 대만만 다시 타격을 입기도 했습니다.
유 회장=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남북간의 대치로 인해 안보에 대해 항상 긴장을 해야 합니다. 통일의 기초단계인 인적교류와 경제교류도 한정돼 이뤄지고 있기에 통일이 언제될 지는 아직도 미지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이 있기에 국민 대다수가 하루빨리 평화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만과 중국과의 통일에 대해 대만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며 향후 대만과 중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습니까?
뤼 전 부총통=양안관계와 남북한의 관계는 전혀 성질이 다릅니다. 한국은 원래 하나의 국가였지만 한국전쟁 때문에 3·8선이 생겼고 남북한이 분단이 됐습니다. 하지만 대만은 1895년 청일전쟁으로 청나라가 대만을 일본에 할양을 해줌으로서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며 현재는 전혀 다른 국가입니다. 일본은 그 당시에 대만의 석탄매장량이 아주 풍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본은 청나라에게 대만을 영원히 일본에게 할양을 해줄 것을 요구했고, 1895년 4월 17일 대만은 더 이상 본국의 소속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후로 일본의 통치를 50년 받은 대만은 본국을 증오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1951년 샌프라시스코 협약에 따르면 ‘일본은 대만을 무조건 포기하겠다’고 언급했지 ‘대만을 중국에 돌려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95년 3월 23일 대만 국민들이 총통을 직접 선출함으로서 대만은 공식적으로 독립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대만의 직접 선거는 중국에게 매우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대만이 직접 선거를 하게 되면 앞으로 중국 국민들도 국가주석의 직접선거를 요구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공산당 정권이 붕괴될 수 있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차례나 대만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게 된 것입니다. 유 회장=지난 2009년 1월에 (사)대한인라인롤러연맹의 회장으로 취임했고 그해 중국 하이닝에서 개최된 ‘2009 세계롤러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종합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대회에서 대만의 성칭량(Sung, Ching-Yang, 1992.10.18) 선수가 T300, 500, 1000, 3000 계주(이상 트랙)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42.195km 마라톤 1위, 로드 T200 2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선수로 부상했고, 저 또한 성칭량 선수의 활약을 매우 인상 깊게 지켜 봤습니다. 대만과 한국의 중심으로 인라인 롤러 종목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부총통께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뤼 전 부총통=대만의 인라인 스케이팅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만에 돌아가면 대만의 성칭량 선수가 누구인지 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인라인 스케이트에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유 회장=끝으로 요즘 ‘한류’라 해서 일본과 중국 및 동남아 문화권에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대중음악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총통은 한국의 드라마 또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는지 또는 좋아하는 배우가 있습니까?
뤼 전 부총통=대장금이 대만에서 많은 인기가 있었습니다. 아쉽지만 선거기간이라서 대장금을 보지 못했지만 한국 드라마 중 ‘명성황후’는 매우 즐겨봤습니다. 명성황후는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았지만 명성황후가 한국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드라마가 진실된 내용이라면 매우 존경할 만한 여성 지도자입니다. 성공한 남자 뒤에는 위대한 여자가 있지만 성공한 여자 뒤에는 여러 명의 남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성공한 남자 뒤에는 어머니와 아내처럼 위대한 여자 2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7년에 가장 파워가 있었던 인물에 대해 혹시 아십니까. 그 해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사람은 독일의 메켈 총리였습니다. 그 이유는 통일독일의 총리이자 EU의 의장이였기 때문입니다. 그해에는 전 세계에서 큰 재앙이나 큰 전쟁도 없었습니다. 여성이 나라와 전 세계를 다스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재미난 예로 아이슬란드는 한동안 여성 지도자가 이끌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남성 지도자가 당선이 돼 TV에 나왔을 때 아이가 엄마에게 ‘왜 대통령이 남자야’라고 물은 적 있었습니다. 이는 환경이 생각을 바꿀 수도 있으며 여성도 충분히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통역 필수연(대만대표부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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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유허준기자> pos317@namdo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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