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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달 기지 포기 이후

화이트보스 2010. 2. 26. 17:30

미국의 달 기지 포기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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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25 22:11

복거일 소설가·경제평론가

외계 진출의 꿈 돈과 기술 문제로 일단 좌초됐지만
인류는 또 우주로 갈 것… 우리도 같은 운명

지난 2월 1일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별자리 사업(Constellation Program)'의 폐기를 선언했다. 2004년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선언했던 이 사업은 2020년까지 달에 기지를 세우려 했다. 이 조치는 외계 탐사의 꿈이 냉혹한 현실에 일단 좌초했음을 뜻한다.

19세기 말엽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가 로켓 우주선을 제안하고 20세기 초엽에 로켓이 실제로 개발되자, 작가들의 상상력은 큰 자극을 받았고 외계(外界)의 탐험과 식민(植民)을 다룬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엄청나게 큰 우주선, 불모의 행성을 지구처럼 만드는 지구화(terraforming), 은하계 전체를 아우르는 은하계 제국(galactic empire)과 같은 웅장한 주제들이 과학소설의 핵심을 이루었다. 이런 작품들은 인류의 꿈들 가운데 가장 장엄하고 낙관적인 것이었다. 외계 진출의 꿈에 비기면, 고대 문명들이 만들어낸 신화(神話)들은 원시적이고 초라하다.

1969년 6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닿자, 외계 진출의 꿈은 이내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한 세대 뒤엔 화성(火星)에 사람의 발길이 닿으리라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선언했고, 모두 그 말을 믿었다.

반어적(反語的)으로, 외계의 꿈을 깨뜨린 것은 성공적 외계 탐험이었다. 사람들이 무중력 상태에 오래 머물자 몸이 전해질과 뼈를 빠르게 잃었다. 이것은 긴 외계 여행에선 대책 없는 문제다.

멀고 어려운 외계 탐사에서 사람이 할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혹독한 외계에선 기계들과 로봇들이 무슨 일이든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잘할 수 있다. 성공적인 화성 무인 탐사에서 이 점이 증명되었다.

궁극적 장애는 물론 별들 사이의 먼 거리다. 아득한 성간(星間) 공간을 넘기에는 사람의 목숨이 너무 짧다. 큰 우주선을 추진할 길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태양계 안에서도 연료를 실은 우주선은 비실용적이어서, 아주 얇은 돛에 햇살을 받아 움직이는 햇살돛(solar sail)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런 사정은 외계 탐사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것을 뜻한다. '별자리 사업'은 바로 이 사실에 부딪혀 좌초(坐礁)했다. 엄청난 비용이 들지만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는 외계 탐사는 정부가 추진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 정부마다 빚더미에 눌린다. 1969년의 어느 여름밤 먹먹한 가슴으로 달을 올려다보면서 외계로 뻗어가는 인류를 그려본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서글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계 탐험의 꿈이 깨진 것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대안은 현실적이다. 현재의 발사 기술에 대한 대안을 찾고 로봇에 의한 과학적 임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민간 분야와의 협력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외계 진출 계획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도 '별자리 계획'에 참여할 예정이었고 달 탐험이 외계 진출 사업의 핵심이 되리라는 가정 아래 계획을 세웠다. 보다 근본적으로, 외계 진출은 온 인류의 일이고 외계 탐사에서의 좌절은 어느 것이든 인류의 좌절이다. 외계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이 일깨워주듯, 외계에선 국경이 보이지 않는다. 존 단의 얘기를 바꾸면, "하늘로 솟구치는 우주선을 보면, 국적을 묻지 마라. 그것은 당신 자신의 꿈을 실었다."

작년에 인공위성을 실은 작은 로켓을 발사함으로써, 우리도 늦게나마 외계 진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아쉽게도, 그 로켓은 제대로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실패는 우리의 외계 탐사를 막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변경'이라 불리는 외계로 진출하는 것은 인류의 운명이고 우리는 그런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치올코프스키의 말대로, "지구는 사람 정신의 요람이지만, 사람은 요람에 머물 수 없다."

"노력해서 별까지(per ardua ad astra)." 원래 아일랜드 멀바니 가문의 좌우명(座右銘)이었고 이제는 영국 공군의 좌우명인 이 힘찬 구호는 온갖 어려움을 뚫고 외계로 나아갈 인류의 운명을 산뜻하게 보여준다. 외나로도에서 발사된 로켓이 힘차게 솟구치는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