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건설하던 시대는 지났다
政爭피할 지혜 짜내 국가 목표 집중해야
정치는 세상에서 자기만큼 가장 잘난 사람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다. 그런 자존심 또는 그런 착각 없이는 정치의 궂은일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표(票)를 사정할 때 머슴의 얼굴로 다가왔다가 자기 볼일만 마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인의 얼굴로 되돌아가는 변신도 보통 사람이 따라 하고 싶다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강하고 잘난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우리 안에 약하고 못난 짐승을 집어넣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는 정도를 넘어서서 자기보다 강하고 잘난 것들을 다스리는 자리에 오르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수십년 세월이 흐른 뒤 약하고 못난 대장이 이끌던 그 시절이 자기네 황금시대였다고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걸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케다(池田勇人·1899~1965)는 1960년 7월부터 1964년 12월까지 일본 총리를 지냈다. 그의 전임 총리 기시(岸信介)에겐 '수십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 준재(俊才)'라는 별명이 따라다녔고, 그의 후임 총리 사토(佐藤榮作)의 전기 제목이 '비범한 범인(凡人)'인 데서 드러나듯 두 사람 모두 한가락하는 정치인이었다. 더구나 친형제 사이인 기시와 사토가 전후 일본 총리를 도맡아 배출하다시피 한 도쿄대학 출신으로 짱짱한 인맥(人脈)을 딛고 있었던 데 비해 이케다는 교토대학을 나와 지방의 세무서장을 전전하던 변두리 관료 출신이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약점은 파벌로 꾸려가는 일본식 정당 정치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단명(短命)으로 끝날 정권의 특색을 골고루 갖춘 셈이다.
그러나 요즘 일본정치사 교과서들은 하나같이 이케다 총리의 재임 시기를 다룬 장(章)의 제목을 '자민당 황금시대의 개막'으로 달아놓았다. 정치적으로 허약한 이케다가 자민당 황금시대, 나아가 일본의 황금시대를 연 열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실상 이케다 정권의 국정(國政) 지침이었던 '저자세(低姿勢) 정치'다. 사전에는 '저자세'라는 단어의 뜻을 '상대의 위세에 꿀려 비위를 맞추려는 태도'로 풀어놓고 있다. 이케다는 당내(黨內)의 정적(政敵)과 경쟁자들에게 무조건 허리를 낮췄다. 야당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국민을 대할 때는 더 고개를 숙였다. 장관 시절 "가난한 사람은 보리밥을 먹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가 불신임 공세에 몰리기도 했던 실언(失言) 습관도 총리가 되면서 싹 사라졌다. 이케다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가며 정쟁(政爭)을 피해 벌어들인 시간과 노력을 국민소득 배증(倍增) 정책이라는 단일 목표에 쏟아부었다. 그의 전임 기시가 미·일안보조약 개정에, 후임 사토가 미국이 점령하고 있던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이란 거대(巨大) 외교정책에 몰두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이 평범하고 개성 없는 이케다 정권 4년 반 동안 일본은 고도성장의 고속도로를 내달아 세계 제2 경제대국의 문턱을 밟았다. 이케다는 50년대 중반 장관으로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빠듯한 출장비 때문에 허름한 호텔 방에서 비서와 함께 싸구려 위스키로 목을 축이며 객고(客苦)를 달래던 옛일을 자주 입에 올렸다고 한다. 그가 1961년 워싱턴을 다시 찾아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저의 이번 방문은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라는 구절을 굳이 집어넣은 것도 그때의 일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케다의 당내 정적과 경쟁자를 향한, 야당을 향한, 국민을 향한 저자세는 때론 '관용과 인내'라는 점잖은 표현으로 옷을 갈아입긴 했어도 그가 1964년 10월 25일 도쿄올림픽 폐막 다음 날 정계은퇴를 발표하던 순간까지 변함이 없었다. 그를 국회의원으로, 이어 장관으로 발탁하고 평생 뒤를 봐준 정치적 스승인 전 총리 요시다(吉田茂)가 보다 못해 '총리의 지나친 저자세는 국민들 눈에 정권을 약하게 비치게 만들 것'이라는 걱정의 편지를 보냈는데도 이케다는 정치에 있어서만은 한번 굽혔던 허리를 다시 펴려 하지 않았다. 정쟁을 피해 경제에 몰두할 분위기를 만든 그의 이런 자세가 아니었더라면 '세계를 떠받치는 세 기둥은 이제 미국과 유럽과 일본'이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전해 듣고 패전국가·전범국가(戰犯國家)의 한(恨)에 찌든 일본 국민이 어깨를 들썩거린 날이 그렇게 빨리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싸우면서 건설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제와 정면 승부할 때 정치 전선(戰線)을 또 하나 벌이는 것도 지혜로운 일은 못 된다. 자신을 낮추는 정치에는 겸손과 관용과 인내와 포용의 뜻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약한 듯하지만 사실은 저항을 최소화하는 능률의 정치다. '가슴에 맺히는 말은 서로 적게 했으면 좋겠다'는 대통령의 한마디가 살벌한 우리 정치를 비집고 봄기운이 스밀 틈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순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