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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100만·박사 300만원"… 논문대필 활개

화이트보스 2010. 3. 3. 16:24

석사 100만·박사 300만원"… 논문대필 활개

입력 : 2010.03.03 04:16

30여개 인터넷카페서 거래… 의뢰 10일만에 논문 도착
"읽어보면 통과안될 짜깁기"

'토목공학과 박사 논문(을 대신 써줄 분)이 필요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이 없네요. 주제는 수질오염총량관리(TMDL), 예상금액은 300만원 정도입니다.'

지난달 2일 한 포털 사이트에서 '논문 대행'을 검색해 찾은 P지식거래 사이트에서 발견한 글이다. 이 사이트에만 학·석·박사 논문을 대필해달라는 글이 54개나 떠 있었다. 사이트 맨 아래엔 전화로 의뢰할 수 있는 고객센터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논문을 남이 써주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학문의 양심을 파는 불법행위가 인터넷의 중개 사이트를 통해 사실상 공개적으로 성행하고 있었다.

◆"끝까지 애프터서비스"

취재팀이 지난달 5일 오전 11시쯤 경영학과 학사 논문 대필자를 찾는다는 글을 P사이트에 올려 보았다. 첫 제안이 날아오는 데 5시간이 안 걸렸다. '지방 국립대 공학사, 국립대 교육학 석사, 지방 국립대 박사 수료'란 학력 소개와 함께 '저렴한 가격과 최고의 품질로 보답하겠다'는 친절한 안내까지 달렸다. 일주일 사이 추가로 4건의 제안이 더 날아왔다. 가격은 12만원부터 20만원까지였다.

취재팀은 그중 "가격 흥정이 가능하다"고 한 김모씨에게 논문 대행을 의뢰하기로 하고 P사이트로 전화해 연락처를 알아냈다. 취재팀은 P사이트측에 김씨가 믿을 만하냐고 묻자 담당자는 "대필작업은 기업 연구소나 대학 연구원들이 투잡(two job)형식으로 일하기에 믿어도 된다"고 안심시켰다. 기자가 "혹시 모르니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다"고 하자 담당자는 "계약서를 원하면 작성해주는데, 관례상 작성하지 않는다"며 불편해했다.

2월 9일 오전 10시 30분 김씨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의뢰받은) 논문을 쓰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며 막 깨어난 목소리로 받았다. 흥정 끝에 20만2000원으로 합의했다. 2000원은 '부가세'라고 했는데, P사이트측에 2만원을 수수료로 주면서 세금까지 내줘야 한다고 했다.

취재팀이 "논문 대필은 불법이 아니냐"며 걱정하자 그는 "논문 완성 과정에 의뢰자의 의견이 반영되니 100% 대행이 아니고 법적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주제 선정조차 못했다는 취재팀에 그는 30분 만에 2개의 논제를 보내주기도 했다.

1차 논문은 당초 약속한 2월 17일 오후 2시에 이메일로 왔고, 최종 논문은 20일 오전 8시 37분에 도착했다. 김씨는 맘에 안들면 1년이고 10년이고, 무한 애프터서비스를 해주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김씨가 보내온 논문을 중앙대 산업·창업대학원 박재환 교수에게 분석을 부탁했다. 박 교수는 "짜깁기의 전형"이라며 "지도교수가 제대로 읽어본다면 절대 통과시킬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대학원생이 주고객

인터넷상에서 논문 대행의 시장 가격은 학사가 20만~30만원, 석사는 100만원, 박사는 300만원 정도에 형성돼 있다. 포털 사이트에 논문 대행을 목적으로 개설된 카페만 30여개가 넘었다. 논문 대행이 예전엔 개별적으로 은밀히 진행됐다면 요즘은 3~4명의 전문가들이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 업체와 제휴한 뒤 본격 '수주'에 나서고 있다.

논문 대행 사이트인 P사이트에 학위논문을 대신 써주겠다는 회원들의‘입찰’글들이 올라와 있다.
기업형으로 커져버린 대행업체도 등장했다. 여러 개의 '소규모 모임'을 확보해 경영·법학·교육 등 각 분야별로 고객들의 주문을 받은 뒤 수수료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A논문 대행업체 대표는 "다른 대행 업체의 우수한 프리랜서를 스카우트하기도 한다"며 "업계에는 이미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논문 대행업은 특히 조기 퇴직 추세로 2막 인생을 꿈꾸는 직장인 대학원생들의 증가와 맞물려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퇴직 후 대학 강사를 노리는 박모씨(47)는 요즘 경기지역 모 사립대 야간대학원 박사 과정을 다니고 있다. 수업은 첫 학기만 '눈도장'찍느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갔고 이후에는 거의 출석을 안했다. 교수들도 사정을 감안해준다. 박씨는 "논문 고민이 컸는데 대행업체에 의뢰하려 한다"며 "어차피 대학원은 학위를 형식적으로 주기 때문에 대필을 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모 대학 벤처전문대학원 석사 과정이라는 윤모씨는 자신의 신분까지 밝히면서 논문 대행 사이트에 글을 올려 대행자를 찾기도 했다. '논문 1 차 심사 후 교수님 지적 내용과 컨설팅받은 내용을 함께 첨부하니, 여기에 맞춰 수정해달라'는 의뢰였다. 그가 밝힌 소속 학교, 학과, 지도교수의 이름은 확인결과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불법성이 있는데도 포털업체들은 광고 수익을 위해 논문대행업체를 스폰서 링크 상단에 버젓이 올려놓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대학원지원과 역시 "민원이 접수되면 그때그때 감사에 나설 수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자체 조사하기엔 힘들다"고 밝혔다.

서울대 법대 이상원 교수는 "논문 대필이 국립대에서 이뤄지면 '위계(僞計)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사립대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가 적용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