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병리학자 양기화의 ‘광우병 사태’ 500일 기록 “이념과 과학을 혼동한 학자들과 ‘PD수첩’떠올리면 지금도 기가 막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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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혼자서 중얼거리지 않았다. ‘PD수첩’ 명예훼손 소송 재판정에도 섰다. 이념과 과학이 뒤엉킨 진흙탕 싸움판에서 상처 입은 ‘의사 양기화’의 광우병 사태 참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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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예’라고 하려면 땀을 흘리고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비록 그 말이 죽음을 뜻하더라도 아니라고 하기는 쉽다. 아니라고 하면 조용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살아가면서 죽기만 기다리면 된다. 이것이 비겁한 자의 역할이다.” 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위원(56·의학박사)은 가톨릭대 의대 다닐 적 연극동아리에서 조명을 들었다. 본과 1학년 때 공연한 작품 ‘안티고네’의 한 대목이 지금도 생생하다. 극중 크레온의 대사가 가슴패기를 때렸다. 크레온은 국법을 어긴 안티고네를 옥에 가둔 뒤 죽이라고 명하면서 “아니라고 말하기는 쉽다”고 말한다. 안티고네는 조카이면서 아들의 약혼녀. 대중이 인륜을 앞세워 사면을 요구했는데도 크레온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멋대로 법을 어기거나 왜곡하는 이는 내 집안사람이라도 용서할 수 없다. 지도자는 사소한 문제라도 그것이 옳든, 심지어 옳지 않든 국법에 복종해야 한다.” 신탁(神託)을 받아 나중에 조카를 석방하겠다는 게 크레온의 속셈이었으나 안티고네는 감옥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는다. ‘안티고네’는 이름난 그리스 비극.
폭풍 속으로 그는 크레온처럼 행동했다.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숨어서 중얼거리지 않았다. 나서서 뭔가를 해야 했다. “정부가 잘못했다고 비판하기는 쉬웠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예’라고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욕먹을 걸 뻔히 알았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과학적 사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2008년 여름, 그는 폭풍 속으로 들어갔다. 뭇사람에 맞서 “정부 말이 옳다”고 했다. 진보가 뭔지, 보수가 뭔지도 잘 몰랐다. 그저 팔을 걷어붙이고 과학과 이념의 혼돈을 정리하려고 했다. “폭풍 속으로 휘말렸어요. 솔직히 광풍을 예상하지는 못했습니다.” 폭풍은 상처를 남겼다. 악성 덧글이 그의 블로그를 도배했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무서웠다. “길 가다 칼 맞는 수 있으니 가면 쓰고 다니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니던 직장에서도 잘렸다. 6개월을 집에서 놀았다. 의대생인 차남도 “미국산 쇠고기 먹어도 되느냐?” “아버지가 틀린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아들 녀석 둘이 모두 의대를 다녀요. 큰애는 정치 성향이 없어요. 둘째는 ‘보수적 진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그 녀석하곤 몇 번 붙었죠. 결국은 과학으로 설득했습니다.” 야화(野火)가 광화문을 점령했다. MBC ‘PD수첩’이 불을 질렀다. 뿔난 민심은 ‘명박산성’ 앞에서 외쳤다. “너나 먹어라.” 그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2008년 5월2일 농림수산식품부, 보건복지가족부가 정부종합청사에서 마련한 ‘끝장토론회’자리에 앉으면서 폭풍 속으로 들어갔다. 4월부터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의 광우병 관련 자문에 응하던 터였다. 5월7일엔 국회 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말했다. 조인스닷컴 블로그(‘눈초의 블로그’)에 광우병 공포의 오류를 밝히는 글도 썼다. “인터넷 괴담에 휩쓸린 사람들에게 전문가로서 진실을 알렸어요. 전문가 아닌 사람이 전문가로 행세하면서 턱없는 얘기가 나돌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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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에 대한 괴담들의 진실은?”이라는 포스팅을 읽은 ‘중앙일보’가 그를 만났다. 기사는 사회면 톱으로 실렸다. 그날 블로그엔 800개 넘는 덧글이 달렸다. “미친 소 너나 드세요” 같은 반응이 많았다. 처음엔 악플에 일일이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욕설을 퍼부은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한 것.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정치적 성향을 묻는 사람도 많았다. 블로그는 이념과 과학이 뒤엉킨 싸움판이었다. “초기엔 95%가 악플이었어요. 공손하게 댓글을 달았죠. 이 주장은 반대 주장이 이렇다면서 관련 논문을 소개했어요. 그런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더군요. ‘SRM(특정위험물질)까지 처먹어라’ 같은 덧글을 읽은 뒤엔 참다 참다 에잇….” 그는 광우병과 관련해 60건의 포스팅을 올렸다. 블로그 조회 수를 다 더하면 100만 클릭이 넘는다. 뭇사람에게 공공의 적으로 몰려 공격받으면서 파워 블로거로 뜬 것이다. 2008년 7월7일 올린 ‘오역 소동’이란 제목의 글은 24만 클릭을 기록했다. “꾸준히 글을 올리자 ‘이 아저씨 말이 맞는 구석도 있다’ ‘이 사람 의견이 맞는 것 같다’는 덧글이 달렸어요. 지지하는 반응이 늘더니 악플이 전체 덧글의 30%가량으로 줄었습니다. 나중엔 덧글 자체가 줄고 극렬분자만 남더군요. 막연한 공포를 퍼뜨리는 집단을 적어도 인터넷 공간에선 잠재운 셈이죠.”
괘씸죄 ▼ 왜 폭풍 속으로 들어갔습니까? “과학의 팩트가 그거였어요.” ▼ 괜스레 나섰다고 후회한 적 없나요? “없습니다.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지만 나서기로 한 뒤론 최선을 다했죠.” 그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말한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SBS ‘시시비비’, KTV ‘100분 토론’ 등이 패널로 출연해달라고 불렀으나 토론에 참석하지 못했다. 의사협회 주수호 당시 회장이 출연을 막아서다. “전국 방송을 통해 광우병 괴담을 과학적으로 해명할 기회가 무산됐죠. 결국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만 토론회에 참석해 vCJD(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 이른바 인간광우병) 위험이 부풀려졌어요.” 정부가 광우병 논란과 관련해 수차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으나 의사협회는 거절했다. 개혁 성향의 집행부가 이듬해 회장 선거 때 젊은 의사 표를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이 따라붙었다. 의사협회는 당시 이런 성명을 내놓았다. “미국은 광우병 안전지대가 아니며, 한국도 피해를 볼 수 있어 광우병 공포에 노출돼 있는 실정이다. 광우병이 사람에게 전파돼 vCJD를 일으킨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미국과의 협상과정에서 너무 성급하게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국민 건강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식품 안전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부라면 사전 예방 원칙에 따라 유해한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폭풍 속으로 들어간 지 한 달이 지난 2008년 6월, 그는 의사협회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의사협회 안팎에선 “유능한 인재가 소신을 피력하다 정치적으로 희생됐다” “양기화 박사만한 전문가가 없는데…”라는 말이 나돌았다. “괘씸죄였어요. 정부가 주최한 토론회에 동의 없이 참석한 게 집행부를 자극한 거죠. 제가 스트레스가 심해 토론회 참석을 기피한다면서 의사협회가 저 대신 다른 사람을 토론회에 내보낸 적도 있답니다. 토론회 참석 요청이 들어왔다는 말을 전달받지도 못했고요. 욕먹을 각오는 했지만 실직은 상상도 못했죠. 막상 직장에서 쫓겨나니 마음이 어수선하더군요.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내 표정도 어두워졌고요.” 물론 의사협회의 설명은 다르다. 객관적 기준에 따라 해임했다는 것. 의사협회 간부들은 2008년 7월9일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에 참가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의견을 바꾼다. “청와대가 의사협회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의사협회가 정권의 눈엣가시가 됐다”는 말이 나돈 뒤다. 의료전문지 ‘메디컬투데이’는 의사협회의 이 같은 표변을 ‘철없는 회장님’이란 표현으로 비꼬았다. 정치와 권력, 이념과 과학이 뒤엉킨 오락가락 소동이었다 |
증인으로 서다
그는 지난해 11월4일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정책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PD수첩 제작진 재판에 증인으로 섰다. 검찰은 12월2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조능희 CP(책임프로듀서), 김보슬 PD, 김은희 작가에게 징역 3년, 이춘근 PD, 송일준 PD에겐 징역 2년을 구형했다. “피고인들이 취재 과정에서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곡했고, 담당 공무원을 매국노에 비유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1심 선고공판은 1월20일 열린다. 재판의 쟁점은 오보 여부가 아니라 PD수첩이 고의로 피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했느냐다. 정책 비판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PD수첩 측은 주장한다. “검찰에 출두해 4시간 넘게 참고인 조사를 받았어요. PD수첩 제작진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을 여지도 적잖다고 해요. 보도는 엉터리더라도 명예훼손은 아닐 수 있다는 거죠.” 2008년 5월2일 청계광장에서 열린 첫 촛불문화제엔 1만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4월29일 PD수첩이 방영한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가 방아쇠 구실을 한 측면이 있다. PD수첩 보도의 핵심은 크게 넷이다.
1. 미국 시민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가 기립불능 소를 도축하는 과정에서 한 가혹행위를 촬영한 장면. 2. 버지니아에서 사망한 아레사 빈슨이 vCJD에 걸린 것 같다는 내용. 3. 한국인 대부분의 프리온 단백질유전자 코돈129가 MM형이어서 vCJD에 걸릴 가능성이 백인보다 몇 배나 높다는 내용. 4. 한번 감염되면 vCJD에 걸려 모두 사망한다는 내용
1→2→3→4로 이어진 얼개는 시청자에게 광우병의 위험을 알리는 데 유용했으나 방영 직후부터 번역을 잘못했다는 주장이 나왔으며 황우석 전 서울대 석좌교수 논문조작을 밝히는 데 기여한 BRIC(생물학연구정보센터) 사이트에도 PD수첩 보도가 과학적 진실과 다르다는 의견이 올랐다. “잘 모르겠지만, 기자는 팩트를 찾는 능력을 훈련받고, PD는 팩트를 전달하는 능력을 훈련받는 것 같아요. PD수첩 보도는 팩트는 엉터리지만 구성은 탁월했습니다. 잘못된 사실을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공포를 부추겼어요. PD수첩에 나온 주저앉는 소는 젖소예요. 젖소는 우유를 통해 미네랄 성분이 빠져나가 주저앉는 증상을 자주 보인다고 합니다. PD수첩에서 번역자로 일한 정지민씨가 젖소로 번역했는데, PD수첩은 ‘광우병 걸린 소’라고 단정했어요. PD수첩도 나중에 ‘광우병 걸린 소’라고 말한 부분은 잘못됐다고 시인했죠.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도 vCJD가 아니라 베르니케 뇌병증으로 밝혀졌고요.” “PD수첩도 방송 시점엔 빈슨의 사인을 몰랐을 거다”라고 기자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다르게 답했다. “몰랐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왜곡한 측면이 있어요. KBS 기자와 함께 치매 관련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50분짜리 2회 분량이었는데, 미국에서 주로 취재했어요.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라는 단행본을 냈을 때라서 책 홍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도움말, 섭외, 통역, 번역을 해줬습니다. 미시간, 미네소타, 노스캐롤라이나, 캘리포니아를 누비고 다녔어요. 인터뷰한 내용을 번역해 시트를 만들었는데 영어 발음이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 대목이 몇 군데 있더군요. 내용상 꼭 들어가야 하는데 번역이 불확실하다고 했더니 방송엔 못 내보낸다고 말하더군요. 자막 번역이 틀리면 프로그램 전체의 신뢰가 깨진다는 거였어요. 그런데 PD수첩은 번역가가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잘못된 번역을 그대로 내보냈습니다. 의도적으로 오역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의도가 없었다면 취재의 ABC조차 안 지킨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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