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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잘되면 충신 잘못되면 역사의 간신”

화이트보스 2010. 3. 7. 21:17

대통령이 잘되면 충신 잘못되면 역사의 간신”

2010.03.07 02:10 입력

청와대 스핀닥터, 이동관 홍보수석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청와대 이동관(사진) 홍보수석이 이명박(MB) 대통령에게 합류한 건 경선이 한창이던 2007년 7월 1일이었다.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같은 네거티브 공세가 거칠어지면서 MB의 지지도가 내리막길을 걸을 때 그는 공보특보를 맡았다. 이후 지금까지 2년8개월 동안 ‘이명박의 입’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요즘 거센 도전과 대담한 응전의 한복판에 서 있다. 세종시 국민투표를 암시한 ‘대통령 중대 결심 임박’ 발언에다 TK(대구·경북) 비하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야당과 친박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서상기 의원은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은 누구든 책임 있고 신중하게 처신해야 하는데, 이런 발언이 바로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익명을 요청한 친이계의 재선 의원도 “참모의 실수는 대통령에게 직접 부담이 가기 때문에 적절치 않은 처신이었다”고 지적했다.

홍보수석은 대통령의 말을 관리한다. 말을 통해 대통령을 대변하고 말로써 공세를 막아내기도 한다. 대통령의 참모 중에서도 유독 바람을 많이 타는 이유다.

이 수석의 주군은 CEO 출신 대통령이다. MB는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둔다. 여의도 정치에 자기 세력을 특별히 쌓지 않는 MB의 스타일에다 친이·친박이 각을 세우고 있는 살얼음판 정국이 이 수석을 정치적으로 고독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말을 관리하는 데는 특별한 기술이 요구된다는 이 수석의 스핀닥터(spin doctor)론이 거센 도전을 불러오고 대담한 대응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핀은 회전하다, 돌리다란 뜻이다. 스핀닥터는 정치홍보에서 기술을 부려 정책과 정치행동의 정당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이 수석은 최근 사석에서 ‘한국형 스핀닥터론’을 폈다. “미국의 경우 스핀닥터는 홍보전략을 정교하게 짜서 대통령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만 연구하는 전문가이지만 우리는 다르다. 스핀닥터는 관전자일 뿐 아니라 게이머 역할도 해야 한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난 게임하는 사람이다. 이슈 파이팅의 주체로서 진검승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차피 한국에서 대통령과 참모는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대통령이 잘되면 충신이 되고, 잘 못되면 역사의 간신으로 남는 것이다.”

그는 때때로 파이터로 변신한다. 장막 뒤의 참모로 머물지 않고 무대 위로 뛰어나온다.

대표적인 게 설 연휴를 앞두고 불거진 ‘강도론’ 공방이다. “집 안에 있는 한 사람이 갑자기 마음이 변해 강도로 돌변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을 정면 공격했다. 그는 강도론을 ‘박근혜 의원의 실언 파문’으로 규정한 뒤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나중에야 원론적 언급이지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얘기한 것은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이 수석이 정치권에서 통용되는 ‘박근혜 전 대표’라는 호칭을 안 쓰고 ‘박근혜 의원’이라는 말을 쓴 점, 박 전 대표의 ‘정식 사과’를 요구한 점 등은 둘의 정치적 비중을 비교할 때 대담한 행태였다.

박 전 대표 본인뿐 아니라 친박계의 분노가 컸던 건 이 때문이었다. 반면 친이 진영의 핵심은 이 수석에게 “의원 10명도 못하는 일을 해냈다. 속 시원하다”고 격려했다고 한다.

게이머로서 이 수석의 모습은 또 있다. 지난해 PD수첩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외국에서 일어난 일이면 경영진이 국민한테 사죄하고 총사퇴해야 되는 일” “음주운전하는 사람에게 차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6월 19일)며 MBC를 정면 공격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명박 독재자’ 발언 땐 “국민화합에 앞장서고 국론을 올바르게 이끌어주셔야 할 전직 국가원수가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오히려 분열시키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6월 12일)이라고 맞받아쳤다.
대체로 검찰 수사나 전직 대통령 이슈 같은 민감한 사안은 청와대보다 여당에서 발표했다.

그런 만큼 청와대 홍보수석의 게이머 같은 발언은 정치권을 자극했다. 그럴수록 공방은 거칠어졌다. 번번이 그를 구해준 건 이 대통령이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처음엔 말 실수처럼 비쳐졌지만 대부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결론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전했다.

교체론을 촉발시킨 TK 비하설도 그렇다. 그는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산행에서 TK 언론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 닷새 후 MB는 대구를 방문해 “왜 (TK는) 만날 피해의식만 갖고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희한하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홍보수석이 먼저 길을 내고 대통령이 걸어가는 그런 모양새다. “현재로선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이 대통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국민투표 카드가 물 건너갔다고 볼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수석은 평소 “미학과 사생관을 갖고 대통령을 모신다”는 말을 자주 한다. 미학과 사생관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이 일은 성공하는 대통령을 만드는 것 이외엔 퇴로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 모든 걸 걸고 하는 거죠. 다만 말실수나 하는 경솔한 이미지로 비쳐질까 그게 걱정이에요.”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공보수석을 했던 윤여준 전 의원은 “참모들은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걸 자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에게 바로 부담이 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참모의 발언은 세 종류가 있다. 오버를 해서 말할 때, 계산을 해서 흘릴 때, 그리고 진심을 전달해 여론을 떠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도마뱀도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팔다리를 자르는 지혜를 발휘하듯이 결과가 안 좋을 땐 비서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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