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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대통령이 나서니 범인 금방 잡은 경찰

화이트보스 2010. 3. 13. 10:38

또 대통령이 나서니 범인 금방 잡은 경찰

  •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입력 : 2010.03.12 23:12

김길태 사건을 보면서 다시금 경찰 본연의 임무가 무엇이고 근무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국민들은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지난해 3월에 있었던 경기도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두 사건엔 대통령이 진두지휘를 하면 범인은 금방 잡힌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찰은 공(功)을 세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경찰이 진짜 봐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일산 사건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일산 경찰서를 방문하여 질책한 지 하루 만에 용의자를 체포하였고, 이번에는 이틀이 걸렸다. 마치 대통령이 나서서 채근하고 독려하면 금방 범인이 잡히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흐름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는 듯하다. 이는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건들은 이렇게 신속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매우 위험한 인식을 낳을 수 있다.

지금 경찰은 용의자를 체포하고 유력한 증거를 확보했다. 그러고도 초동수사 잘못이나 김길태 체포 시 허둥대는 모습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경찰 스스로의 의욕과 끈기로 이번 사건을 해결했더라면 분위기는 상당히 달랐을 것으로 생각한다.

범죄 사건이 '대통령 독려→신속 해결'식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경찰은 안이하고 윗사람의 눈치나 보는 조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경찰에 불행한 일이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나서서 질책을 하니 경찰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듯 움직이며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생각한다. 왜 이런 인상을 국민들에게 자꾸 심어주는지 알 수가 없다.

이번 사건과 같이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언론이 연일 크게 보도하는 경우에는 경찰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통령의 관심과 질책성 발언까지 연일 나오면 경찰 수장(首長) 이하 전 경찰관들이 열 일을 제쳐두고 이 문제에 혼신의 힘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경찰만이 아니라 다른 공무원 조직 모두의 생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떤 결과가 오게 될지 경찰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경찰 지휘부가 경찰을 지휘할 때 위의 권력 눈치를 보는 것과 부하들이나 국민을 살피는 것 중 과연 어느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으면 한다. 권력은 유한(有限)하지만,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나 경찰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경찰은 그 무게감을 산(山)처럼 느껴야 한다.

경찰은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경찰'과 같은 뜬구름 잡기 식 헛구호를 청장이 바뀔 때마다 떼었다 붙였다 하느라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흉악 범죄 척결' 등의 구체적인 구호와 실천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경찰청장은 믿을 수 있는 대(對)범죄전략을 제시하면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보여야 한다. 아동 성폭행과 같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를 어떻게 척결할 것인지, 경찰력은 어떻게 동원하고 배치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다시는 없어야겠지만 유사 사건이 재발할 경우 대통령이 아닌 경찰청장이 나서서 경찰을 무섭게 독려해 범인을 잡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국민이 경찰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최선을 다한다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과 대통령, 경찰 모두에게 최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