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헬스케어

당뇨병 환자에게 폭탄주 권하는 직장 동료분들…

화이트보스 2010. 3. 17. 10:58

당뇨병 환자에게 폭탄주 권하는 직장 동료분들…

한 잔쯤은 괜찮다고?
고혈당 지속돼 병 악화… 목숨 갉아먹는 지름길
국내 환자 80%가 식이요법 못 지켜
나홀로 밋밋한 당뇨식 먹는 처지 이해해야

당뇨병 환자는 평생 '밋밋한 당뇨식'을 먹으며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 산해진미가 눈 앞에 있어도 그림의 떡 보듯하며 식사 요법을 지켜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뇨식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식이요법을 지시한 당뇨병 환자 중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환자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당뇨식을 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한다"고 전했다.

"목숨 갉아먹는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당뇨병 환자인 최모(41)씨는 출근 전 아침 한 끼만 당뇨식을 먹는다. 그는 "나도 식이요법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평소 접대 자리가 많아 도저히 당뇨식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거래처 접대 상대방이 술이 오르면 '한잔은 괜찮다'며 술을 강권하는데 목숨을 갉아먹는 줄 알지만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여의도에서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무형(36)씨는 "점심 때 사무실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저칼로리, 저염식을 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가 먹을 만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없다. 당뇨식 도시락을 싸 다니면서 처량하게 혼자 밥 먹는 것도 하루이틀"이라고 말했다. 이런 애환은 직장인만의 일이 아니다. 주부 이경숙(64)씨도 "매일 내 당뇨식과 가족 식사를 따로 준비하기는 너무 벅차고, 가족에게 맛없는 당뇨식을 매일 먹으라고 강요하기 미안해 그냥 내가 일반 식사를 먹게 된다"고 말했다.

▲ 최병형씨(가운데)처럼 혈당 수치가 높은 환자들은 회식 자리에서도 술과 기름진 안주를 삼가고 채소 등을 위주로 한 식이요법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당뇨병 환자들이 식이요법을 철저히 지키기 어려운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사정이 이러니, 당뇨병 환자의 '의지 박약'만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뇨병 환자들은 독하게 '고행길'을 선택해야 한다. 다음 2가지 실험이 이유를 말해준다.

당뇨병 환자, 일반인과 회식 같이 해보니

당뇨병 환자가 일반인과 똑같이 회식을 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8일 강북삼성병원 직원 5명(당뇨병 1명, 당뇨병 직전 단계인 내당능장애 1명, 정상인 3명)을 삼겹살 집에 모이게 해 회식을 시킨 뒤 실시간으로 혈당 변화를 알아봤다.

당뇨병인 권영구(44)씨는 삼겹살은 먹지 않고 소주만 2병 마셨다. '2차 자리'로 옮겨서는 맥주 1000㏄와 소시지, 튀긴 감자 등의 안주를 먹었다. 술자리가 파한 오후 11시 해물 라면, 튀김, 어묵 등을 사먹었다. 회식 전 120㎎/dL이던 다음날 새벽 권씨의 혈당은 최고 276㎎/dL에 달했다. 권씨는 실험 이전에도 업무상 매주 2~3회 이런 회식을 했다.

박철영 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이 정도 혈당 수준이면 핏속의 당분이 혈관 벽을 심하게 손상시키기 시작한다. 특히 권씨처럼 무리한 회식으로 혈당의 변동폭이 커지면 당뇨병 합병증이 더 잘생기고 사망률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내당능장애인 최병형(47)씨는 권씨가 먹은 회식 분량에 삼겹살까지 곁들였다. 최씨의 혈당은 회식 후 2시간이 지나도 140㎎/dL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고혈당 상태가 새벽까지 지속됐다. 그러다 다음날 오전 8시 정상치인 96㎎/dL로 떨어졌다. 박 교수는 "술을 마시면 체내 포도당 합성이 방해돼 일시적으로 혈당이 떨어진다. 이 때 혈당 체크를 하고는 '술 마셨는데 혈당이 괜찮네'하고 방심하는 내당능장애 환자가 흔하다. 이런 습관을 바로잡지 않으면 반드시 당뇨병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혈당 조절이 안 되는 당뇨병 환자의 3분의 2는 술자리 때문이다. 술을 한 번 마시면 혈당 이상의 여파는 3일 이상 간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당뇨병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뇨식, 약보다 더 좋은 '치료제'

한편, 안철우 교수팀은 올 6~10월 당뇨병 환자가 당뇨식을 따를 때 식후 혈당 조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연구팀은 강남세브란스병원의 당뇨병 환자 중 482명을 대상으로 한 끼는 자신이 먹고 싶어하는 일반식을 먹게 하고, 한 끼는 병원 구내식당에서 판매하는 당뇨식을 먹게 했다. 각각 식사 2시간 후 혈당을 잰 뒤 평균을 비교했다. 그 결과, 일반식 섭취 후 식후 혈당은 228.09㎎/dL였지만 당뇨식 섭취 후는 209.27㎎/dL로 상당한 차이를 나타냈다.

안 교수는 "단 한 끼의 당뇨식만으로도 혈당이 크게 내려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당뇨식을 규칙적으로 하면 뚜렷한 혈당 저하 효과가 반드시 나타난다"며 "식사를 하면 1~2시간 후에 혈당이 가장 많이 올라가는데, 이 시기에 올라간 혈당이 여러 염증 물질을 만들어내 각종 심혈관 질환들을 일으키므로, 당뇨병 환자는 어떤 유혹과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당뇨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배지영 헬스조선 기자 baejy@chosun.com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 lks@chosun.com
  • 2009.12.22 16:0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