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성공으로 '3D영화' 시장 창출
엄청난 제작비용 부담등 반대 불구
자기자본투자 초강수로 폭스 설득
유주희기자 ginger@sed.co.kr
지난해 12월 개봉한 3차원 입체(3D) 영화 '아바타'도 25일(현지시간) 타이타닉의 전세계 흥행기록을 넘어섰지만, 평론가들은 '나를 졸게 한 영화'라고 악평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아바타의 성공은 이제 단순히 영화적 완성도로만 가늠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 특집기사를 통해 캐머런 감독에게 '또다시 세상의 왕이 됐다'(King of the world, again)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또다시 왕이 될 수 있었던 건 새 시장을 내다 본 안목과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인 뚝심이었다.
아바타 이전에도 3D영화는 있었다. 하지만 관객들이 굳이 불편한 3D안경과 2배나 더 비싼 영화표 값을 감수하면서까지 극장으로 달려가게 한 건 아바타가 처음이다. 심지어 타이타닉이 수 개월 걸려 세운 전세계 10억 관객 기록도 개봉 17일 만에 깼다.
하지만 캐머런 감독은 아바타의 개봉 전까지만 해도 푸대접을 받았다. 2000년대 초, 타이타닉의 제작사인 20세기폭스는 캐머런 감독이 4억 달러(약 4,600억원ㆍ공식 순제작비는 2억3,700만 달러이지만 추정치는 3억 달러가 넘는다)의 제작비가 필요한 아바타의 시나리오를 들고 가자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망설였다.
2억 달러를 들인 타이타닉만 해도 엄청난 모험이었는데, 또다시 요행을 바라기는 힘든 법이었다. 당시 캐머런 감독은 "남들이 절대 무시 못할 영화를 만들겠다"는 고집으로 폭스를 설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가 오랜 심사숙고에 빠지자,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그는 직접 3D용 카메라 개발에 나섰다. 그의 1989년작 SF영화 '심연'(The Abyss) 해저용 카메라를 개발했던 사업가 빈센트 페이스를 다시 찾아 2D와 3D 이미지를 동시에 잡아낼 수 있는 카메라 장치 개발을 의뢰한 것.
여기에만 1,200만 달러(약 138억원)이 들어갔다. 대부분 캐머런 감독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그렇게 그는 헐리우드 영화인들의 제1수칙, "자기 돈은 쏟아붓지 마라"를 과감히 무시했다.
캐머런 감독이 이처럼 과감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경험을 통해 3D의 시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타이타닉의 성공 이후 엄청난 부를 거머쥐면서 "이제 좀더 재밌는 걸 해보자"고 마음먹게 됐고, 2000년대 초 '고스트 오브 어비스'(Ghosts of the abyss)를 시작으로 수 편의 해저 관련 3D 영화 또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캐머런 감독의 자기자본투자는 폭스를 설복시켰다. 2005년 폭스는 캐머런 감독에게 1,000만 달러로 '증거물'을 제출해오게 했다. '슈렉' 등 3D 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인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젠버그 공동사장이 캐머런 감독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2005년 10월 캐머런 감독은 폭스의 임원 네 명에게 시험 촬영분을 보여줄 수 있었다.
캐머런 감독은 "내가 촬영해 온 필름을 보자 임원진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며 "그들의 머릿속에도 내가 몇 달씩이나 말해 온 게 뭔지 그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폭스는 아바타의 흥행이 신통치 않을 경우 캐머런 감독이 더 낮은 비율의 수익을 가져가게 될 것이라는 조건을 내세우며 계약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하지만 엄청난 제작비용은 폭스의 임원진들이 밤잠을 뒤척이게 만들었다. 결국 캐머런 감독은 초강수를 택했다. 앞서 찍어 둔 필름을 들고 이전에 함께 해저 다큐멘터리 두 편을 찍은 적이 있는 월트디즈니를 찾은 것. 놀란 폭스는 바로 백기를 들었다.
폭스는 제작비용을 분담할 제작사를 찾아냈다. 어지간한 블록버스터 수 편을 만들 만한 금액을 배팅하라고 설득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지만, 폭스의 짐 지아노풀로스 공동사장은 "아바타를 놓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2006년 10월, 캐머런 감독은 폭스와 계약을 맺었다. 폭스 측은 "꼬리 달린 파란 거인들이 아직 와 닿진 않지만 당신을 믿는다"며 캐머런 감독을 격려했다. 촬영은 캘리포니아 주 플라야 비스타의 오래된 비행기 격납고에서 진행됐다.
촬영장에선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골룸을 탄생시킨 모션캡처 수트(motion-capture suits)를 입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고, 작업실에선 스탭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프로그램을 통해 카메라로 찍은 배우들의 얼굴과 눈동자 움직임을 디지털화했다.
곧 "캐머런 감독이 플라야 비스타에서 대단한 걸 찍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스티븐 스필버그, 리들리 스콧, 고어 버빈스키('캐리비안의 해적' 감독) 등 내로라 하는 유명 감독들이 '성지순례'를 하러 들를 정도였다.
마침내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며 "3D 영화의 가능성을 업계에 보여주고 싶다"던 캐머런 감독의 의도가 적중했다. 그는 '흥행이 안될 경우의 적은 수익'을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3D 붐을 일으켰다.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로봇'을 제작한 존 데이비스는 1963년작인 '아르고 황금 탐험대'(Jason and the Argonauts)를 3D로 리메이크하고 싶다고 밝혔다. 마이클 베이와 J.J 에이브럼스 감독도 각각 자신들의 전작인'트랜스포머'와 '스타트렉'을 3D로 다시 찍고 싶다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캐머런 감독과 3D 카메라를 만들었던 사업가 페이스는 "아바타의 개봉 이후 카메라 대여 의뢰 요청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카메라 대여에는 영화 한 편당 140만~300만 달러(약 34억원)에 이를 정도로 고가다. 페이스에 따르면 광고업계에서도 3D 카메라에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지만 이제 사람들이 3D를 '상업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감격했다. 3D 영화 스크린을 제작하는 리얼디(RealD)의 마이클 루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1년 반 동안 5,000개의 3D 스크린을 더 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내 스크린 수는 3만8,000개로, 이중 3,600개만이 3D 상영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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