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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4>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화이트보스 2010. 3. 22. 19:32
[고종석 기획연재 여자들] <4>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1000년도 전에… 어쩌면 최초의 소설가일지 모르는 무라사키 부인을 위해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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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 이야기>는 히카루 겐지(光源氏)라는 황자(皇子)와 그 주위 사람들의 4대 70년에 걸친 일상을 묘사한 이야기이다. 그림은 <겐지 이야기>의 내용을 소재로 한 일본 전통화. 한길사 제공

프랑스 로베르 라퐁 출판사의 <여성 저명인사 사전>(1992)에서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대략 974~1014)를 찾아보니 생애가 60여 행으로 압축돼 있다. 1951년 이전에 태어난 여성 3,000명 가량의 생애를 932면에 담고 있는 이 사전으로선 그리 박한 대우가 아니다.

편저자가 더 너그러웠다 해도 더 길게 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무라사키 부인의 생애가 그리 상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역시 그 생애가 자세히 밝혀지지 않은 그리스 시인 사포(기원전 620~기원전 565)도 무라사키와 비슷한 분량을 배당 받았다. 말하자면 무라사키는 이 사전에 이름을 올린 여성 저명인사들의 평균보다 사뭇 나은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새 저자 사전>(1994)은 무라사키에게 고작 한 페이지를 내 주었다. 글줄이나 썼다는 고금동서의 선남선녀(김부식, 김만중, 김소월, 김동인, 김수영 같은 한국 문인들도 보인다)들 가운데 1951년 이전에 태어난 이들의 생애를 세 권에 모은 이 사전은 무라사키에게 앞의 사전보다 배려를 덜 한 듯싶다.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작가도 때론 서너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적잖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무라사키를 무시했다기보다, 그녀의 생애에 대한 정보가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봐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같은 출판사의 6권짜리 <새 작품 사전>(1994)이 <겐지 이야기>(겐지모노가타리: 源氏物語)에 고작 한 페이지 반 정도밖에 내주지 않은 것은 뜻밖이다. 그 문헌학적 가치나 예술적 됨됨이에서 <겐지 이야기>에 훨씬 못 미치는 작품들도 이 사전의 두세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예사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것은 정보 부족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겐지 이야기>는 현대 일본어로 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어와 영어를 비롯한 몇몇 유럽어와 한국어(2007)로도 완역되었고, 이 작품에 대한 연구도 두툼히 쌓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 애호'가 널리 퍼진 나라에서 나온 사전이 <겐지 이야기>를 이리 푸대접한 게 놀랍다. 편집자들의 게으름이나 '대항 편견'의 소산이 아닌가 짐작된다.

<겐지 이야기>의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는 교토의 소귀족(小貴族) 가문(후지와라 가[家] 일파)에서 태어났다. '무라사키 시부키'는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몇몇 연구자들은 그녀의 본명이 후지와라 다카코였으리라 짐작하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헤이안 시대 일본에서 부부는 별거하는 것이 관례였고 아이는 모계 쪽 가족 틈에서 자랐다. 그러나 무라사키는 유년기에 어머니를 여읜 탓에 아버지 밑에서 컸다. 교양 있는 궁중관료였던 그녀의 아버지 후지와라 노 다메토키는 딸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래서 당시의 관행과 달리 딸에게 고전 한문교육을 시켰다.

무라사키의 20대 삶은 순탄치 않았다. 스무살 차이 나는 남편(그녀의 사촌이었다)의 바람기(라는 개념이 헤이안 시대 일본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처 자식들과의 갈등으로 삶의 고뇌가 깊었다.

스물 서너 살에 과부가 되었는데, 이것이 외려 그녀의 삶에는 약이 되었다. 청상과부이자 궁인으로서 그녀는 당대 궁정생활을 관찰하며 자신의 교양 속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길어 올렸다.

무려 54책, 3부로 이뤄진 <겐지 이야기>는 무라사키 문학의 순금 부분이다. <겐지 이야기>는 히카루 겐지(光源氏)라는 황자(皇子)와 그 주위 사람들의 4대 70년에 걸친 일상을 일종의 불교철학적 배경 위에서 묘사한 이야기다.

1004년 쯤에 탈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애심리와 삶의 번뇌를 뛰어나게 묘사하고 있는 <겐지 이야기>는 문학적 가치 못지않은 역사학적 가치를 지닌 세태ㆍ심리소설이다.

무라사키는 당초 이 이야기를 궁중의 귀족 여성들에게 읽히려 썼다. 500명 안팎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도, 그들 각자에게 거의 이름이 없다는 것이 눈에 띈다. 헤이안 시대엔 남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결례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신분이나 계급, 의상, 친인척 관계 등으로 불린다.

무라사키는 1014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년이 그렇듯 몰년도 정확하지는 않다. <겐지 이야기> 외에 <무라사키 시키부 일기> <무라사키 시키부집(集) 등을 유고로 남겼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일본 문학사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작가로서, 많은 유럽인들을 매혹했다. 몇몇 유럽 작가들은 그녀의 생애를 소설화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1000번의 가을, 궁인 무라사키 부인의 삶>이라는 낭만적 제목을 지녔다. 이탈리아 작가 가브리엘라 마그리니가 쓴 이 전기소설은 프랑스어 번역판에서 <교토부인>이라는 제목을 얻었다.

무라사키와 <겐지 이야기>는 왜 중요한가? 관점에 따라서 <겐지 이야기>를 역사상 최초의 소설로, 다시 말해 무라사키 부인을 최초의 소설가로 볼 여지가 넓기 때문이다. 물론 적지 않은 문학사가들은 이를 부인한다. <겐지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플롯이라 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겐지 이야기>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은, 실제의 삶에서처럼, 그저 세월에 따라 늙어갈 뿐이다. 이런 '약점'을 지적하는 유럽인들은 소설의 기원을 프랑수아 라블레나 세르반테스 같은 16세기 유럽인의 작품에서 찾는다.

그러나 소설과 이야기의 구분은 매우 작위적이다. 우리가 '이야기'라고 부르는 신화들도 흔히 플롯을 갖추고 있다. 또 20세기의 이런저런 아방가르드 소설들에는 플롯 자체가 없다. 아니, 20세기 소설만이 아니다. 그들이 고전으로 치는 18세기 유럽소설들 가운데도, 그들의 눈에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로 비칠 작품들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한국어로도 번역된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의 삶과 견해> 같은 작품에 <겐지 이야기>을 넘어서는 플롯이랄 만한 것이 있는가?

<겐지 이야기>에 최초의 소설 자리를 주지 않으려는 인색함은, "모든 (근대적인) 것의 효시는 유럽에서 생겨났다"고 여기는 유럽중심주의의 한 증상인 듯하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리오리엔트>를 읽은 독자라면, 이 유럽중심주의가 얼마나 거짓스러운지를 잘 알 것이다.

프랑크의 지루한 동서 경제비교를 거론할 것도 없이, 사실은 우리가 잘 아는 바 '근대적'인 것들은 거의 동아시아에서 처음 나왔다. 화약이 그렇고 나침반이 그렇고 종이가 그렇고 금속활자가 그렇다.

무라사키 부인은 <겐지 이야기>에서 세심하게 성격(인물)들을 창조하고 배열했다. 그리고 전편을 통틀어서 그 성격들에 일관성을 부여했다. 이것이야말로 (근대)소설의 특징 아닌가?

<겐지 이야기>가 설령 소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 작품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은 아니다. 언어학자들과 역사학자들에게 <겐지 이야기>는 자료의 화수분이다. 언어학자들은 <겐지 이야기>를 통해 현대 일본어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법을 지닌 헤이안시대의 일본어를 천착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특히 미시사 연구자들은(소설가들도 마찬가진데), '비 오는 날의 여인 품평회'나 '로쿠조인(六條院: 히카루 겐지의 대저택. 네 계절에 따라 공간배치를 달리했다)에서의 사랑' 같은 1000년 전 교토 주변의 세태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 중세의 사계(四季)에도 일본인들은 지금의 우리들처럼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뻐하고 설워하고 고뇌했던 것이다.

세상에서 일본인들을 우습게 아는 국민은 한국인밖에 없다는 우스개가 있다. 거기 일말의 진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 옛날 삼국시대에 중국의 선진문물을 일본에 전해주었다는 사실 하나에 어쭙잖은 자부심을 드러내며, 일본 문화를 우습게 아는 것이다. 즉 '경제일본'은 대단해도 '문화일본'은 대단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한국에는 많다.

그러나 일본인은 이미 1300년 전에, 제 언어를 섞어서, 제 역사를 기록했던 민족이다(<고사기(古事記)>). 그리고 이미 1000년 전에 중국 고전언어(한문)가 아니라 자신들의 언어로 세상의 자잘한 이야기(小說: 연애나 결혼관, 패션, 놀이, 화장)를 기록했던 민족이다(<겐지 이야기>).

일본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을 앞서기 시작한 것이 메이지유신 이후부터라 보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신화다. 시문학과 공연예술에서도, '전통 일본'은 '전통 한국'을 앞섰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전통 중국'에 비할 수야 없겠으나.

나는 그것이 크게 애석하지 않다. 나는 한국인이면서 동아시아인이면서 호모사피엔스니까. 팔만대장경이나 훈민정음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수많은 고전 한시들도,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유적들도 <겐지 이야기>처럼 결국은 내 조상의 손길에서 나온 것이니까.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면서 일본인이면서 중국인이면서 그리스인이니까. 고마워요, 경애하는 무라사키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