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대한민국 국군의 사기는 어떤가? 천안함 사건으로 군의 사기는 말이 아니다. 자조감(自嘲感)이 팽만해 있다. 나폴레옹은 말했다. “물량이 1이라면 정신은 3이다”고. 그렇다. 병사들이 사기 충천(衝天)한 정신력으로 잘 무장하고 있으면 세 배 아니라 그 이상의 적도 섬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이 파괴되고 사기가 무너지면 아무리 크고 강대해 보여도 자멸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군은 적과 싸우지 않고도 진 셈이다.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 지난 7일 국군수도병원에서 두 시간여 동안 계속된 천안함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생사의 경계를 넘어 귀환한 57명의 천안함 수병들은 함장을 제외하곤 전원이 환자복 차림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그랬을 것이다. 전선에는 ‘총알받이’라는 것이 있다. 이날 회견장의 천안함 수병들은 ‘여론받이’에 불과했다. 왜 군 지휘부가 먹어야 할 욕을 최전선에서 목숨 걸고 지켰던 이들이 뒤집어써야 하는가? 살아온 게 죄인가?
# “군대의 생명은 군기(軍紀)다. 군기를 날 선 상태로 유지하거나 강화하지 못하는 지휘관은 잠재적인 살인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맹장이었던 조지 패튼이 한 말이다. 그런데 패튼은 군기가 복장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늘 기마장교용 부츠를 신고 군인 정복을 입은 상태에서 별 세 개가 번쩍번쩍 빛나는 유광 헬멧을 착용했다. 참모들이 곳곳에 저격병 투성이인데 유광 헬멧만은 벗으라고 조언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아가 그는 복장이 엄정하지 못한 병사는 전투에서도 승리하지 못한다며 언제나 헬멧과 각반은 물론 심지어 전투 중에도 넥타이를 매게 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군인은 군인다워야 한다. 군인이 공개석상에 나올 때 환자복을 입고 나온다는 것은 스스로 나는 더 이상 군인이 아님을 방증하는 것이다.
#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둔 1944년 2월부터 6월까지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26개 사단과 24개 비행장, 5개 함대, 그리고 수많은 보급소와 병원 등을 일일이 방문했다. 아이젠하워는 만나는 병사마다 손을 부여잡고 “여러분이 이 전쟁에서 승리할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이 전장에 나갈 병사들에게 중요감을 심어주었고 군의 사기를 높였음은 물론이다.
#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살아 돌아온 수병들을 국방장관이나 군 수뇌부가 직접 찾아가 위로하고 그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불어넣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저 그들을 병동에 가두고 외부와 차단시키는 데만 혈안이 됐을 뿐이다. 그러다가 열사나흘 만에 그들을 환자복 입혀 텔레비전 앞에 세워놓았다. 한마디로 난센스였다. 물론 언론도 책임이 있다. 온갖 설과 추측을 여과 없이 실어나르지 않았는가. 심지어 “고 한주호 준위가 사망한 지점이 다른 곳이다”는 식의 방송보도는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가.
# 군인들은 매일 정량의 밥과 부식을 먹는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먹어야 하는 것은 사기다. 사기를 먹지 않으면 군대가 아니다. 군인의 진짜 밥인 사기를 제대로 먹여 보살핀 병사가 잘 싸우는 군인이 된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군에 사기가 아니라 모욕을 먹이고 있다. 더 늦기 전에 “군에 사기를 배식하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