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함 함장을 그렇게 대우해선 안 된다. 해전에서 패배한 함장도 그렇게 다루지 않는다.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은 두 차례 증언대에 섰다. 첫 번째는 침몰 다음 날이다. 의심과 분노가 거셌을 때다. 그는 “살아 돌아와 면목 없다”고 했다. 고개를 떨군 채 나온 힘없는 목소리였다. 그 속엔 살아남은 지휘관의 고뇌와 슬픔이 담겼다. 하지만 그것은 역설적인 절규였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폭발음과 함께 배는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함미(艦尾) 쪽은 급속히 가라앉았다. 함장의 직감은 “뭐에 한 방 맞았다”는 것이다. 그는 구조를 하면서도 한 방을 날린 적의 2차 공격을 경계했다. 우리 고속정이 다가올 때도 그랬다. “적선(敵船)일지 모르니 머리를 숙여라”고 명령했다. 그는 마지막에 배에서 내렸다. 생존 장병은 58명이었다.
그는 지난주 생존 장병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두 번째 증언이다. 그만은 전투 복장이었다. 부하 장교와 수병들은 환자복이었다. 환자복 이벤트는 지휘부 누구의 작품일까. 당시의 위급함을 확인하는 효과를 겨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림은 낭패와 초라함의 인상을 준다. 함장은 권위와 명예의 상징이다. 배 안의 함장 자리는 해군참모총장도 앉지 않는다. 최고통수권자(대통령)에게만 양보한다. 그만큼 함장의 위상은 특별나다. 함장의 역량이 선체와 장병의 운명을 결정지어서다. 바다를 지배했던 일류 선진국일수록 해군 문화를 인정한다. 선진국 사회는 제복(MIU) 세계의 전통과 관습을 존경한다. 이미지와 사기를 관리해준다. 환자복 부하들 사이에 앉은 함장의 회견 장면은 그 사회의 지도자들에겐 상상할 수 없다.
장병들의 전우애는 감동적이다. 구조 과정에서 그랬다. 그리고 실종 동료의 가족들을 눈물로 얼싸안았다. 회견은 억측과 낭설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그러나 소문과 낭설을 생산하는 세력은 이를 외면한다. 여기에 편승하는 정치인도 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짜맞추기 회견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한 생존 장병 가족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함장의 증언은 실감난다. 익명을 부탁한 예비역 해군제독은 이렇게 분석한다. “함장이 느낀 ‘한 방’의 정체는 어뢰나 기뢰다. 그가 의심한 ‘적’은 북한이다. 그런 판단은 상식이다. 그 직감은 훈련과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그 판단, 직감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함장의 증언은 위기 대응의 출발점이다. 사건 원인을 예단 말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맞다. 하지만 그런 식의 청와대 주문이 너무 잦다. 군의 전문적 판단, 경험, 사기도 고려해야 한다. 참모들의 대통령 보좌에도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그 속에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의 소신과 침착함이 돋보인다.”
그 예비역 제독은 청와대 외교안보, 공보수석실의 미숙함과 실수를 지적한다. 침몰 그날 밤 청와대 브리핑은 함장의 보고 내용을 거의 생략했다. 그 대신 “북한의 특이 동향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때문에 북한과 무관하다는 설이 쉽게 퍼졌다. 그 대신 내부 폭발설, 금속 피로설이 등장했다. 일부 인터넷 매체, 일부 언론은 확산에 앞장섰다.
그렇다면 그날 밤 청와대의 정보와 대외 언어 관리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 두 가지 정보 판단을 동시에 소개했어야 했다. 외부 공격으로 생각했다는 함장의 판단을 먼저 브리핑한 뒤, 전반적으론 북한의 특이 동향 없음을 함께 순차적으로 말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다수 국민은 함장의 생각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면서, 단정하지도 않고 의혹에도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산전수전을 겪었다. 이런 일의 판정에 노련하다.
함장의 증언은 한참 동안 소홀히 다뤄졌다. 국민과 공유가 되지 않았다. 그것이 여론 혼선과 억측 확산의 주요 요인이다. 그 우선 책임은 청와대 관련 참모진의 어설픈 초기 대응에 있다.
중앙일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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