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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런 결단을…“가슴에 묻겠다. 수색 중단해 달라”

화이트보스 2010. 4. 17. 10:01

누가 이런 결단을…“가슴에 묻겠다. 수색 중단해 달라”

가족 대표들 ‘숙연한’ 결정…‘인명구조’→‘함미이동’에 이어 3번째 요청

지난 3일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 기자실. 이정국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들어섰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렸다. 무겁지만 결연한 목소리로 “잠수요원의 또 다른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선체 내부에 대한 진입을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수중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해군 수중폭파팀(UDT) 소속 한주호 준위가 순직한 데 이어 수색작업을 돕고 귀항하던 쌍끌이 어선 금양98호가 2일 불의의 사고로 침몰하면서 내린 결단이었다.

▲ “고인을 추모합니다”
16일 경북 구미의 금오공고 금오탑 앞에 차려진 고 김선명 상병 분향소에서 김 상병의 후배인 재학생들이 조문하고 있다. 금오공고는 천안함 침몰사고로 순국한 고 김선명 상병의 모교다.
연합뉴스

▲ “선배님 고이 잠드소서”
16일 천안함 전사자 신선중 중사가 졸업한 울산시 남구 신정동 울산공업고등학교 3학년 2반 로봇제어전기과의 후배 학생들이 신 중사를 애도하며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희생자 가족들의 이 같은 결단은 이후 결정적인 고비에 두 차례나 더 있었다. 단장의 아픔을 억누르며 수습의 통로를 연 것이다.

☞[사진]꼭 기억하겠습니다…천안함 순직 장병들

 결정적인 계기는 실종자 수색작업에 무리하게 투입된 한 준위가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숨지면서다. 이어 3일 함미에서 발견된 남기훈 상사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오면서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접었다. 가족들은 애끓는 심정을 뒤로한 채 “애꿎은 잠수사들이 또다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처음에 “내 아들만은 살려야 한다.”고 통곡하며 반대한 20여 실종 장병 가족들도 결국 마음을 돌렸다. 가족들은 찢어지는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인명구조작업을 중단하고 인양작업에 돌입해 달라.”고 군에 요청했다.

 군과 인양업체가 12일 천안함 함미를 침몰 장소에서 백령도 동남쪽 4.6㎞ 지점으로 이동시킨 것도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 가능했다. 이날 기상이 악화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자 민간 인양업체 직원들은 “크레인이 피항을 해야 하는데 이미 함미와 연결해 놓은 쇠사슬이 있어 쇠사슬을 끊거나 아니면 함미를 이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가족들은 긴급회의를 갖고 “부분적인 유실위험이 있지만 일단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이에 따라 수심 45m 해저에 가라앉아 있던 함미가 수심 25m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인양 작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잠수사들의 수중 작업시간이 길어지고, 잠수사들의 사고예방 효과도 컸다.

 실종자 가족들은 14일 또 한번의 결단을 내렸다. 가족들은 “폭발지점으로 추정되는 절단면 부근에 있던 장병들의 귀환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피폭지점에 있던 미발견 실종장병을 ‘산화자’로 처리키로 결정했다. 특히 실종자 가운데 일부를 찾지 못하더라도 군에 추가적인 수색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함미 이동 결정에 이어 이틀 만에 잠수사들의 안전을 위해 또다시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국민들은 가족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희생자 가족들의 결단에 무한한 경의를 표했다. 주부 송강민(51)씨는 “처음에 구조작업 중단을 요청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름이 쫙 돋았다.”면서 “희망의 끈을 놓기 어려웠을 텐데, 정말 어려운 결단을 했다.”고 가족들을 위로했다. 박정근(49)씨도 “천안함 장병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영웅”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한편 천안함 함미부분에서 시신을 찾지 못한 승조원 가족들은 16일 희생자 수색작업 중단을 요청했다.

 해군2함대사령부는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희생자 가족 8명이 더 이상 수색하지 말아달라고 군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군은 이 날 오전 함미를 인양한 백령도 인근과 침몰 해역 주변의 수색작업을 중단했다. 가족들의 이 결단은 함수와 함미에서 찾지 못한 전사자는 모두 산화자로 처리하자는 가족들의 합의에 따라 이뤄졌다.

 아직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이창기 원사의 형 성기(46)씨는 “동생과 조카가 오늘 오전 9시쯤 함미에 들어가 찾아봤는데 못 찾았다고 했다.”면서 “그 정도 찾아봤는데 못 찾았으면 함미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씨는 “이번 요청은 함미에 대한 수색 중단을 요청한 것이다.지금으로서는 (실종자가) 함수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현용 맹수열 이민영 기자 junghy7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