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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행복하시기를…

화이트보스 2010. 5. 6. 10:05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행복하시기를…
입력: 2010.05.05 00:00

최혁 <편집국 부국장>
부모님을 잃으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기자는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 두 분 다 연로하시고 중병을 앓고 계시지만 곁에 계시니 너무 좋다. 아버지는 암으로 투병 중인데 허리 디스크 증상까지 겹쳐 힘들어 하시고 어머니는 20여 년 동안 지녀온 허리 디스크 증상에다 최근에는 파킨슨병 초기 증상까지 나타나 치료를 받고 있다.
두 분만 생활하시기에 점심때면 서둘러 부모님 댁에 들러 보는 것이 일과가 됐다. 두 분 모두 걷는 것이 불편하시기에 택시를 타고 가기에 어중간한 거리에 있는 마켓이나 은행에 들려 함께 일을 보곤 한다. 부축할 때면, 느껴지는 앙상한 팔에 마음이 아프다. 눈에 띠게 허리가 구부정해지고 걸음걸이도 느려져버린 어머니의 뒷모습에 가슴이 아리곤 한다.
의지가 강하신 아버지는 “아프더라도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 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허리의 통증이 워낙 심하시기에 “사는 게 힘들구나” 라고 심경의 일단을 내비친다. 얼마나 아프시면 저럴까 싶어 마음이 후벼지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는 아프시더라도 두 분 모두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여름, 어머니를 모시고 수의를 맞추러 충장로에 간적이 있다. 며칠 뒤 옷가게에서 두 분의 수의를 건네받을 때 기분이 묘했다. 서글펐다. 차안에서 어머니가 나직하게 “갈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됐다”라고 말을 건넸다.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머니 몰래 훔치며 운전을 하던 기억이 난다.
모두들 그러하겠지만 기자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도 크다. 아버지는 엄하셨지만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아껴주고 사랑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주셨다. 바위같은 아버지와 바다같은 어머니시다.
몇 해 전 미국에서 지낼 때 어머니께서 보내온 짐을 건네받은 적이 있다. 미역과 건어물, 고춧가루 등이었는데 멸치가 들어있는 비닐 백을 열면서 처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깜작 놀라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처는 머리와 배속의 창자가 떼어내진 멸치를 한줌 쥐어 내밀었다. 그리고 이렇게 울먹였다.
“허리가 그리 아픈 어머니가 자식들 편하게 먹으라고 멸치를 이렇게 다듬어 보냈네요. 하루 종일 걸렸을 텐데…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해서 그래요. 이 것 모두 어머니가 아픈 몸을 끌고 시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셨을 텐데… 어머니는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저희는 우리 생각만 하고 사네요…”
아버지는 지금도 다 큰 아들들을 호되게 나무라시는 편이다. 부모님 댁 청소를 도와준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을 나설 때,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나가 배웅을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떤 사람에게든 예의를 다 갖춰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조카들에게 용돈을 건네줄 때도 흰 종이에 돈을 싸 간단한 글을 적은 뒤 봉투에 넣어주지 않으면 꾸지람을 받는다.
급한 일이 아닌데도 택시를 타면 매우 못마땅해 하신다. 아들들이 바빠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없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혼자서 병원에 가신다. 절약이 몸에 배어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허투로 돈을 쓰면 불편해 하신다. 그러면서도 며느리의 생일에는 제주도에 있는 1류 호텔에 예약을 해놓고 아들 내외 왕복 비행기 표와 여행경비를 내놓으시는 멋쟁이시기도 하다.
80을 넘기신 나이에도 아버지는 지금도 매일 3시간 정도는 책상에 앉아 일을 보신다. 청년시절부터 쓰셨다던 일기는 지금까지 단 하루를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는 영어와 일어, 그리고 한문을 혼용해 일기를 쓰시는데 쌓여 있는 일기가 몇 박스 분량이다. 매일 신문에서 주요 뉴스나 상식을 오린 뒤 스크랩해 보관하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곤 한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아버지였지만 친구 분들이 모두 세상을 뜨신 뒤로는 적적해 하셔 요즘 아버지의 고스톱 상대는 자연 아들들의 몫이 됐다. 고스톱 매너도 본받고(?) 싶은 부분이다.무리하게 고를 외치다 몽땅 뒤집어 쓰면 “용감하구나” 웃음을 띠며 격려해주고, 쓰리고를 당하셔도 “그렇게 하니까 쓰리고가 되는구나, 대단하다” 라며 오히려 북돋아 주신다.
며칠 뒤면 어버이 날이다. 큰 나무처럼 그늘을 만들어 주고, 변함없이 가르침과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이 오랫동안 곁에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